‘피용 스캔들’ 올랑드 작품인가?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11:42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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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대선후보 피용, 세비 스캔들 음모 배후로 올랑드 지목

 

세비(歲費) 횡령 의혹으로 검찰에 기소된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공화당 대선후보가 반격에 나섰다. 단순히 자신을 둘러싼 횡령 등의 혐의를 부정하고 무고를 호소하는 차원이 아니다. 현재의 스캔들이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인 자신을 죽이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피용은 살아 있는 권력인 프랑수아 올랑드 현직 대통령을 그 ‘설계자’로 지목했다.

 

최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 바둑 격언이다. 다 잡은 대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피용의 마지막 전략이기도 하다. 피용은 이번 파문 초기부터 사건의 본질을 ‘제도권에 의한 쿠데타’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음모설’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그럼에도 사태가 호전되지 않자 급기야 3월23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정치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검은 캐비닛(cabinet noir)’ 즉 비선조직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방송 이튿날 출간 예정이었던 한 책의 내용을 언급했다.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대선후보(오른쪽 사진)가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을 퍼뜨린 배후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둘 사이에 팽팽한 기싸움이 오가고 있다. © EPA 연합

《보보광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ienvenue place Beauvau)》라는 제목의 이 책은 프랑스 주간지 ‘르 캬나르 앙세네’ 소속 기자 3명이 공동 집필한 것으로, 경찰과 검찰을 비롯한 사법기관들의 정보 유출에 대한 의혹을 담고 있다. 방송에서 피용은 “책 내용에 따르면 검찰과 재판부에서 권력의 정점으로 연결되는 비선이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고도 못 박았다. 보보광장은 총리관저를 끼고 있는 골목으로, 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인 엘리제궁과 가깝다.

 

피용의 날 선 공격에 엘리제궁은 즉각적으로 반박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켜야 할 품위와 책임이 있는데 피용은 이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책의 저자들 역시 “피용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들의 책에선 의혹을 제기했을 뿐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피용의 강공은 결과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시간여의 방송 이후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피용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28%에 불과했다. 한 가닥 희망이라면 지지층 결집에 부분적으로 성공했다는 정도였다.

 

 

올랑드 “피용이 도를 넘어섰다” 비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번 스캔들의 설계자라는 피용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올랑드의 별명 중 하나는 ‘페페르(pépère)’다. 조용한 성품의 뚱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선량한 이웃 아저씨 같은 이미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계 입문 과정을 보면 그저 ‘조용한 사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미테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그는,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활약한 정치인이었다. 미테랑 캠프에선 청년위원장으로 현장을 누볐으며, 이후 지방선거에서 우파의 리더였던 자크 시라크에 맞서기도 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무명의 신인 올랑드는 혈혈단신으로 선거판에 뛰어들어 정치 9단 시라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올랑드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1983년 ‘카통(Caton) 스캔들’이다. 일각에서 ‘대표적 정치 공작’이라고 정의하는 이 사건은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우파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정치소설 작가 앙드레 베르코프를 앞세워 우파를 비판하는 책 《탈환(De la  reconquête)》을 출간한 사건이다. 이 책은  베르코프 이름이 아닌 ‘카통’이라는 필명으로 출간됐는데, 그 때문에 작가의 정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때 스스로 카통이라고 밝히며  목소리를 변조하고 라디오 인터뷰 등에 나가 우파를 비판했던 사람이 바로 올랑드였다. 프랑스 우파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꾸민 정치공작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올랑드는 당시 엘리제궁의 주요 당직자로서 피에르 모루아와 막스 갈로 대변인을 연속해서 보좌했다.

 

 

“올랑드作”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올랑드 대통령이 이번 스캔들의 배후로 거론되는 것은 비단 이러한 전력(前歷)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유독 올랑드 집권 이후 프랑스 정가(政街)에선 이전에 볼 수 없던 광경들이 종종 벌어졌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의 밤샘 조사가 대표적 사례다.

 

2014년 7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대선자금 불법 수수 의혹으로 경찰 부패감찰단에 소환돼 구금상태로 15시간 이상 조사를 받았다. 그 전에 시라크, 지스카르 데스탱 등 기소된 전임 대통령들이나 정치권의 유력 인사 중 사르코지처럼 대놓고 망신을 당한 사례는 없었다. 계파나 당파는 달라도 체면은 세워주던 프랑스 정가의 불문율에 금이 가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올랑드 대통령은 사르코지의 숨통만 조일 뿐 정작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 정치적 탄압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함보다 올랑드 대통령이 이후 재선에 도전할 때 상대인 우파진영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경쟁자가 바로 사르코지였기 때문에 살려둔 것이라는 얘기가 정가에 파다했다.

 

그러나 올랑드의 계획과는 달리 우파의 대권 후보는 사르코지가 아닌 프랑수아 피용에게 돌아갔다. 출마 선언과 동시에 대세론을 타던 피용은 1월 세비 횡령 의혹이 보도된 후 곧장 검찰수사가 급물살을 타자 이 모든 게 ‘올랑드 작품’이라고 반격하고 있는 것이다.

 

피용 스캔들의 설계자가 누구인가를 떠나 대선 정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때 대세였던 피용의 지지율은 현재 17%까지 내려앉은 상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가족 허위 취업과 세금 횡령 등 치명적인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피용이 최후의 수단으로 올랑드를 붙들고 늘어지며 음모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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