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상 票心(표심) 잡아야 당선된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7 09:46
  • 호수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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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 유권자 1000만 명 처음 돌파…유권자 4명 중 1명

작가 은희경이 1958년 개띠 동갑내기 4명의 인생유전을 그린 장편소설 《마이너리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는 일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의 숙명(宿命)이었다. 우리의 인생(人生)은 죽죽 뻗어 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 들었다.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어쨌거나 가족을 부양했고, 그런 틈틈이 겸연쩍어하면서도 모르는 척 자질구레한 죄를 저질렀다.”

‘58년 개띠’라는 말이 있다. 12간지를 잘 모르는 사람도 ‘58년 개띠’라는 관용어는 잘 알고 있다. 1958년에 태어난 사람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1958년은 본격적인 베이비붐(baby boom·출생률이 다른 시기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하는 것)이 시작된 첫해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80만 명대에 머물렀던 출생인구가 1958년을 기점으로 90만 명대로 급상승했다. 그 이후부터 출생인구가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여 진정한 베이비붐 세대를 이끈 연령대로 대표되고 있다. 4·19세대와 386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도 불리는 58년 출생자들은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화에 앞장섰고 군부독재 시대에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58년생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 때마다 세대를 넘어섰다. 30세가 되던 1987년에는 6월 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참여했다. 40대에 첫 진입한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인해 조기퇴직과 정리해고의 아픔을 맛봐야 했으며 50대에 접어든 2007년에는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정치권에도 58년생 정치인들이 많다. 우선 2013년 4월30일 정년연장법안 처리를 주도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당시 새누리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이 58년 개띠다. 자유한국당의 이정현·심재철 의원,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 등이 58년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도 58년 개띠다.

5월9일 열리는 ‘장미대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6월 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참여했던 30대가 이제 60대가 됐다. 1987년 6월14일 명동성당에 모인 시민들(왼쪽)과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판결을 앞두고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인근에 모인 시민들 모습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캐스팅보트는 40대가 쥐고 있다”

이런 58년생이 올해로 60대에 접어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장미대선’이 치러지는 올해엔 60대 이상 유권자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2월말 기준 전국 19세 이상 주민등록인구 4239만228명 중 24.14%인 1023만5951명이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 명을 초과한 것은 역대 대선 중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60대 이상 인구 비중은 20.8%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중이 3.34%포인트 증가해, 이제 유권자 4명 중 1명은 60대 이상이라는 분석이 가능하게 됐다. 40대는 가장 많은 인구수를 보였지만 비중은 낮아졌고, 50대 인구 비중은 소폭 상승했다. 40대는 877만9846명으로 전체의 20.7%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21.8%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1.1%포인트 비중이 낮아졌다. 또 지난 대선에서 19.2%를 차지했던 50대는 이번에 845만4764명으로 집계돼 19.9%로 소폭 비중을 늘렸다.


60대 이상 장년층 유권자의 증가는 대선 표심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선거 판세를 진단할 때는 지역과 이념, 세대별 성향을 골고루 따지게 된다. 특히 2000년대가 되면서 지역 성향보다는 세대별 성향이 투표에 상당히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올해부터는 여론조사 공표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지난 2월 열린 전체회의에서 여론조사 업체들이 ‘60대’와 ‘70대 이상’을 구분해 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여론조사 회사들은 지금까지는 ‘60대 이상’으로만 공표해 왔다.

여전히 선거의 캐스팅보트는 40대가 쥐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단일세대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60대 이상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경우, 대선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도 사실이다. 2012년 치러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60대 이상 유권자에게서 72.3%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이는 곧 당선으로 이어졌다. 반면 27.5%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던 문재인 후보는 역대 야권 후보 중 최다득표를 하고도 패배의 쓴잔을 들 수밖에 없었다.

3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사거리에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 시사저널 고성준


안철수, 60대 이상 표심 얻고 비상할까

그렇다면 대선에서 이들 60대 이상의 선택은 어느 후보일까. 19대 대선은 사실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2파전으로 치러지는 양상이다. 5년 전 단일화 과정에서 매듭짓지 못한 승부를 겨루게 되는 셈이다.

현재까지 60대 이상의 표심은 안 후보를 향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4월10일 조사한 5자 대결 설문조사에 따르면, 문 후보는 19~29세에서 44.9%, 30대에서 58.1%, 40대에서 53.4%로 절반이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안 후보는 같은 조사에서 19~29세 25.0%, 30대 21.1%, 40대 30.3%의 지지율을 얻으며 문 후보에 큰 차이로 뒤졌다.

하지만 60대 이상 유권자로 고개를 돌리면 상황이 뒤집힌다. 리얼미터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안 후보의 60대 이상 지지율은 47.0%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19.3%)뿐만 아니라 문 후보(20.5%)에까지 2배 이상 앞서고 있다. 단일 세대만으로는 4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60대 이상의 지지성향이 전반적으로 비슷하다고 봤을 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4월12일 발표된 JTBC-한국리서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안 후보는 60대 이상에서 51.3%의 지지를 얻으며 18.1%에 그친 문 후보를 크게 앞섰다. 무선전화 비율이 100%인 데일리안-알앤써치 조사에서도 안 후보는 60세 이상 지지율 45.9%을 기록하며 문 후보(21.1%)를 제쳤다.

3월12일 청와대에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사저 앞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문 후보가 20, 30, 40대에서 앞섰지만 안 후보는 50, 60대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동층(浮動層)으로 이탈한 ‘숨은 표’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선거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60대 이상의 보수적 유권자들은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비토 정서가 강한 데다 ‘전략적 투표 성향’도 있다. 이 때문에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안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안 후보 측은 여러 정책을 통해 20, 30대 유권자들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문 후보의 ‘텃밭’인 청년세대의 표를 뺏어올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승기가 넘어올 것이란 의미다. 적지만 문 후보의 20, 30대 지지율이 빠지면서 안 후보로 옮겨가는 현상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과도한 우클릭’이란 신호만 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젊은 층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불안함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반대 목소리를 가장 높였던 세대가 60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토론회에서도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적폐세력과 손잡겠다는 것이냐”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안 후보는 “상대 후보를 지지하면 적폐세력이냐”라며 반격에 나섰다.

반면 문 후보는 ‘문재인 비토 정서’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번 대선은 사실상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 구도로 치러지는 형국이다. 문 후보는 2012년 대선 당시에도 ‘확장성’을 약점으로 지적받았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는 49% 정도를 득표했지만, 2%를 더 득표하지 못하면서 패배했다. 양자 구도로 간다면 문 후보는 이 부족한 2%를 가져와야 한다. ‘대세론’은 이미 의미 없고, 사실상 뒤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총력전을 펼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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