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라지만 김정은엔 ‘죽음의 그림자’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8 12:55
  • 호수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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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정부·전문가들 “대북 선제타격, 즉각적이고 전격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

 

지난 4월13일 오전 평양 시내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리 도열한 군중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등장했다. 오른손에 가위를 집어든 그는 붉은색 긴 천의 한가운데를 싹둑 잘랐다. 자신의 특별지시로 건설된 초고층 뉴타운인 여명거리 준공식 이벤트였다. 건설공사를 책임진 김정은의 최측근 마원춘 국무위 설계국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김정은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테이프 커팅을 하는 그의 모습은 외신기자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이런 장면은 예상 밖이었다. 여명거리는 김정은의 야심작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절대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은 건설·건축에 유난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리더십을 과시하고 북한의 경제난을 바라보는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돌려보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최고 75층 주상복합 건물까지 들어선 여명거리를 두고 북한은 “대북 제재 속에서도 일떠선(세워진) 건축물”이라고 주장하며 ‘제재 무용론’을 제기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이자 선대(先代) 수령인 김일성(1994년 7월 사망) 출생 105주년을 맞는 4월15일까지 여명거리를 완공하라고 지시했고, 기한 이틀 전 준공식을 가졌다. 특유의 웃는 표정으로 ‘여유로움’을 연출해야 할 자리였지만 그렇지 못했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점차 악화되고 있다. 데이브 벤험 미국 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은 4월9일(현지 시각) “서태평양에서 존재감과 준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칼빈슨 항공모함(사진)을 북쪽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 EPA 연합

 

김정은, 여명거리 준공식서 무뚝뚝한 표정

 

이를 두고 최근 북한을 둘러싼 긴장된 국면이 그대로 김정은의 얼굴에 투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그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그리고 북한 이슈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등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심경을 복잡하게 얽히도록 했다는 얘기다. 대북 정보분석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는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는 영상을 편집하거나 수백 장의 사진 중 몇 장을 골라 김정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며 “하지만 외신기자의 망원렌즈에는 있는 그대로의 표정이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른바 ‘태양절’로 떠받드는 김일성 생일을 맞아 유력 외신기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그래놓고는 “놀라운 취재거리가 있다”며 기자들의 관심을 쏠리게 한 뒤 여명거리 준공식이란 깜짝쇼를 벌였다.

 

김정은의 마음을 이토록 심란하게 만든 건 ‘선제타격’이나 ‘참수작전’ 같은 단어일 것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정권의 잇단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에 국제사회는 인내의 한계를 드러내왔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1월20일 출범 이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압박 수위를 한껏 높여왔다. 그렇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이 도발적 행보를 지속하면서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4월 위기설’과 함께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관측이 잇따르자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이 직접 나섰다. 일각에선 ‘김정은 망명설’까지 나돌았다. 국민들이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모습마저 보이자 이례적으로 당국이 진화(鎭火)작업을 펼친 것이다. 외교부와 국방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대북 선제타격설(說)을 “찌라시(사설정보지의 속칭)나 괴담 수준”이라고 공식 해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부, 선제타격설에 “찌라시나 괴담 수준”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북 선제타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는 꼬리를 물고 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을 보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4월6~7일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 문제 해법 논의에 실패한 뒤로 트럼프의 북한 다루기가 급격히 거칠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직접적이고 수위도 높은 게 특징이다. 4월12일 미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전임자인) 오바마와는 다르다. (오바마 정부는) 4개월 동안이나 모술(이라크 니나와주의 주도)을 치겠다고 언급해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줬다”며 “모술은 일주일이면 될 일인데 수개월 동안이나 싸웠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에 대해 “그는 잘못하고 있다.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대북 압박에 협력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임을 피력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12일 기자회견에서 북·중 무역과 관련해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줄 것을 시진핑에게 요청한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회담한 후 “중국이 좋은 무역거래를 하는 게 북한 문제에 있어 미국을 돕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냥 혼자 갈 것”이라면서 “하지만 홀로 가는 것은 다른 많은 국가들과 함께 가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을 통해 대북 압박이나 북핵 문제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전인 3월17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은 매우 나쁘게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갖고 놀았다. 중국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언급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훨씬 구체적이면서 부정적인 쪽으로 옮겨갔다는 평가다.

 

4월7일(현지 시각)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포터’가 지중해 동부해상에서 시리아 공군기지를 향해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 AP 연합

 

군사력 앞세워 전방위 압박

 

미국의 군사적 대응 행보도 심상치 않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월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참여했다가 돌아간 미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는 항로를 바꿔 다시 한반도 주변 해역에 투입됐다. 여기에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와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MH-60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등 70여 대의 항공 전력이 편제돼 있다. 어지간한 국가의 공군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칼빈슨호의 투입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자 중동 지역에서 ‘항구적 자유’라는 작전명을 가진 대(對)테러전을 펼쳤고, 당시 칼빈슨호는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CVN 65)와 함께 첫 타격 임무를 맡았다. 칼빈슨호 전단을 구성하는 구축함과 순양함은 개전 초 최대 사거리 2500km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이용해 적의 지상 핵심 지휘시설이나 전략적 요충지를 파괴한다. 이 때문에 토마호크 미사일은 미국의 ‘개전 신호탄’이라 불리기도 한다.

 

칼빈슨호의 한반도 투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4월12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추가 행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같은 날 미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매우 강력한 함대(칼빈슨호 전단)를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유사시 북한에 대해 잠수함을 이용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그는 “우리는 항공모함보다 강력한, 매우 강한 잠수함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과의 4월12일 통화에서 “김정은에게 ‘미국이 항공모함뿐 아니라 핵잠수함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주라”고 말한 사실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6일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측을 응징하기 위해 공군기지를 폭격한 것도 북한으로서는 무척 신경이 곤두서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유세 기간 중 시리아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바사르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숨지는 참상이 벌어지자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퍼붓는 전격적인 타격을 펼쳤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예쁜 아이들이 아버지의 품에서 죽는 것을 보고 나는 즉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불렀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는 단순히 시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과 이를 방관하는 중국 당국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4월6일(현지 시각) 시리아 공군기지에 대한 미군의 미사일 공격이 이루어진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AP 연합

 

 

中, 北·美 양측에 자제 강조

 

중국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미국 양측에 자제를 강조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4월13일 “무력으로 조선반도의 현 상황을 풀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 도발을 하면 누구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심 북한 김정은의 막무가내식 도발 행보에 속앓이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대북 압박에 나서 달라고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수세적인 모습만 보일 수 없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미국의 선제타격 위협론을 부각시키며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노동신문은 4월11일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을 여러 차례 실행해 보려 했지만, 막대한 희생이란 답이 나오자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북 타격 시 북한의 응전에 따른 피해 문제를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선제타격 계획 자체를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촉구했다. 북한 외무성 산하 기구인 군축 및 평화연구소도 4월13일 담화에서 “미국으로 인해 조선반도에는 언제 어느 시각에 핵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움쩍하기만 하면 무자비한 보복 타격으로 복수의 핵 불벼락을 드세게 내리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압도적 군사력을 내세워 전례 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 트럼프의 뚝심에 대응전략이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이 즉각적이고 전격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쪽으로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입장이 모인다. 하지만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추가도발은 중대변수가 될 수 있다. 취임 초 군사력까지 동원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려던 구상이 도전받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김일성 출생 기념일인 4월15일부터 북한군 창건 85주년인 4월25일은 김정은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도발의 파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점일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15일 무수단 미사일 한 발을 쐈고, 같은 달 23일에는 북극성으로 불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을 감행했다. 이어 28일에도 무수단 2발을 쏘아 올렸다.

 

미 항모 칼빈슨호는 적국 최고지도자에 대한 참수작전도 맡아왔다. 미 해군부대 네이비실(Navy SEAL)이 2011년 사살한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을 처리한 것도 칼빈슨호다. 추종세력들의 결집 등을 우려해 매장 등의 방법을 쓰지 않고 아라비아해에 떠 있던 칼빈슨호 갑판에서 수장(水葬)한 것이다. 토마호크 미사일로 포문을 열고 마무리까지 담당하는 저승사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평양을 한눈에 들여다보고 있는 칼빈슨호가 김정은에게 눈엣가시이자 악몽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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