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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에르도안, 국민 눈·귀 막아 독재 연장한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개헌 통해 일당 장기집권 시도

강성운 독일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1(Fri) 17:11:53 |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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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치러진 터키 개헌 투표가 4월9일 종료됐다. 국외 선거권자는 약 300만 명으로 전체 5%를 차지한다. 터키에서는 개헌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해외 유권자의 표가 터키의 운명을 결정짓는 깜짝 변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독일에는 전체 국외 선거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14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터키의 개헌 국민투표 소식은 독일에서도 연일 뉴스에 올랐다. 시사저널은 독일에 거주 중인 두 명의 터키계 청년과 만났다. 터키의 젊은 세대는 2015년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게지 공원 시위’를 통해 터키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특히 해외에 머무는 터키 청년은 SNS를 이용해 터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리고 세계 곳곳으로 반(反)에르도안 대통령 시위를 확산시켰다. 에르도안은 이를 위험요소로 인식하고 2015년 하반기부터 부쩍 재외 터키인 SNS 단속에 나섰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개헌 국민투표를 일주일 앞둔 4월9일 개헌 찬성 집회를 찾아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AP 연합


개헌투표 안 하는 독일의 터키 2세들

 

선거 다음 날인 4월10일 독일 쾰른대학교 캠퍼스에서 아달레트 귈(가명)을 만났다. 터키 앙카라 근교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넘어왔다. 선거권은 없지만 이번 개헌투표를 누구보다 관심 깊게 지켜봤다.

 

독일에서 이번 투표의 참여율은 48.6%로 2015년 총선의 41%에 비해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터키의 국가 시스템을 결정짓는 일이니만큼 많은 이들이 투표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귈은 “주변의 선거권이 있는 젊은 이민 2세들 대부분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내가 터키에 가서 살 것도 아닌데 왜 투표를 하느냐”고 되묻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내 터키계 유권자는 장년층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투표를 독려하고 함께 투표소로 향한다. 터키 사정에 어두운 자녀들에게 “개헌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또 다른 터키계 학생 A씨는 “나는 터키어도 모르는데 아버지가 ‘예’에 투표하라고 성화였다”고 털어놓았다.

 

개헌 찬성론자들은 주로 “삼권분립을 이루기 위해” “터키가 외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에르도안을 무조건 믿으니까” 등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에르도안이 주장하는 개헌은 오히려 삼권분립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크다. 개헌이 이뤄지면 우선 국무총리직이 없어지고 대통령이 국정수행의 전권을 갖는다. 부통령, 장관도 의회의 동의 없이 임명할 수 있으며 장관직을 신설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다. 의회를 해산할 수도, 특별한 절차 없이 법령을 발동시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판·검사 임명위원을 직접 선정함으로써 사법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헌이 이뤄지면 터키는 사실상 일당 독재에 가까운 체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개헌 정국으로 터키의 민주주의는 혹독한 역풍을 맞고 있다.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귈렌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만으로 여러 대학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교수와 학생들은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를 보도한 언론사 역시 곧장 강제로 폐쇄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SNS 플랫폼 중 하나인 트위터도 지난해 터키에서 서비스가 금지됐다.

 

 

언론 장악한 에르도안, 민주주의 위기 초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민심은 오히려 에르도안을 향하고 있다. 에르도안과 AKP(정의개발당)에 유리하도록 검열된 뉴스만 접하기 때문이다. 귈은 “터키에 있는 지인들과 전화를 하면 ‘터키에는 별일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뉴스를 보면 터키가 큰 위기에 처한 것 같다”며 그가 겪는 뉴스의 온도차를 설명하기도 했다.

 

에르도안의 통제하에 있는 언론은 나아가 EU(유럽연합)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다. “터키가 강해지자 EU가 우리를 시기하고 견제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방송마다 “EU는 터키가 리비아나 시리아 등과 같이 망하길 바라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EU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고 국가 혼란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3월25일 스위스 베른의 ‘터키 반정부 집회’에 등장한 에르도안 처형 현수막 © EPA 연합


에르도안 정부는 독일 및 네덜란드와의 외교 갈등을 유도해 터키 국민들이 음모론을 더욱 굳게 믿도록 만들기도 했다. 귈은 “유럽 국가들이 터키 장관들의 개헌 선거운동을 막았는데 이것은 최악의 수였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많은 터키 국민들이 ‘유럽은 터키를 싫어하고 견제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설득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귈은 결국 국민투표로 개헌이 성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터키 현지에서 에르도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그는 터키 현대사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터키가 1923년 공화국으로 건국한 이래 네 차례나 쿠데타를 통해 정권이 교체됐기 때문에, 터키 국민은 무엇보다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에르도안의 재임 중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했다. 에르도안이 총리로 취임한 2003년 이후 15년간 터키의 국민소득은 50%가량 급성장했다. 또한 그는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고 인프라 구조도 개선시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대학졸업자 비율은 그의 임기 중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터키인들은 에르도안이 집권하는 한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헨릭 뮐러 도르트문트 기술대학 경제저널리즘학과 교수는 “에르도안의 경제정책은 장기적 투자 중심에서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남미식 모델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공공지출 급증, 금리 인하 등 단기 경제부양책이 정책의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뮐러 교수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터키 경제에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EU와 날 선 대립을 불사하고 개헌을 감행하면서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터키를 떠나고 있으며 수출은 감소하고 있다. 터키 화폐 리라화의 가치도 급감했다. 더구나 개발도상국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빚을 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상태다. 한마디로 그의 성공 신화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귈은 “개헌이 무산돼도 에르도안과 AKP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쿠르드족 갈등 격화, 귈렌 운동 탄압, 북아프리카 난민 등 인위적으로 ‘안보 불안’을 만들어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2015년 터키 총선 당시에도 AKP는 이른바 ‘안보 장사’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대선 정국을 맞이한 우리에게도 이는 상당히 익숙한 풍경이다. 귈은 마지막으로 “터키와 한국 모두의 행운을 빌자”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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