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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낭자들 우승 뒤 감춰진 ‘골프 대디’들의 애환

하반신 마비돼 휠체어 타고, 암 투병 와중에도 자식에게 헌신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3(Sun) 15:23:47 |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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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롯데스카이힐 제주 컨트리클럽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롯데 렌터카 여자오픈 최종일 경기. 여유 있게 첫 우승을 거둔 이정은(21·토니모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지난해 우승 없이 신인상을 받았던 이정은은 순간적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아버지 이정호씨(53)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우승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고는 눈시울을 적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25t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다 30m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접한 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이정은은 집안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6학년 때 골프를 접었다. 그러다가 중2 때 학교 클럽활동을 하면서 다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이정은은 경비를 아끼느라 연습라운드도 제대로 뛸 수 없었다. 하지만  고교 시절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아버지는 손으로 조작이 가능한 장애인용 승합차를 구입해 대회 때마다 딸의 기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작 대회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휠체어로 다니는 게 쉽지 않은 데다 딸에게 부담을 줄까봐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사실 이정은은 누구나 탐낼 만한 대형 선수였다. 그는 2015년 7월 열린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 2개(개인 및 단체전)를 딴 뒤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KLPA 시드전에서 30위에 올라 지난해 KLPGA투어 풀시드를 확보했다. 다만, 대형 신인치고는 우승이 없었다.

 

벙크샷을 하고 있는 이정은 선수 © KLPGA 제공


‘휠체어 타고 기사 노릇’ 이정은 아버지

 

이정은의 매니지먼트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2015년 기아차 한국여자오픈에서 있었던 일이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아버지는 딸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르막 언덕길이 나타났다. 골프대행사를 운영하는 김정수 크라우닝 대표가 이를 보고 휠체어를 밀어줬다. 이정호씨는 이를 잊지 않고 이정은의 매니지먼트를 맡겼다.

 

비단 이정은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골프 대디’나 ‘골프 맘’들은 나름대로 애환을 갖고 있다. 4월10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였던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한 유소연(27·메디힐)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유창희씨는 건설 사업으로 한때 잘나갔다. 하지만 IMF 때 부도를 맞고 세월을 술로 달래다 덜컥 대장암에 걸렸다.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유소연의 경기력에 지장을 줄까봐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그 사실을 딸에게 알리지 않았다. 지금은 건강을 되찾고 스크린골프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하는 노승열의 아버지 노구현씨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볼 새가 없었다. 노승열이 미국 진출 2년 만에 취리히클래식에서 우승했지만 정작 그는 아들 곁에 없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에도 아들과 투어를 다니다가 병세가 악화돼 병마(病魔)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협 상무를 지낸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후 캐디도 마다하지 않고 늘 함께했지만 가장 감격적인 순간에 아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2005년 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버디 킴’ 김주연의 아버지 김용진씨도 폐암과 싸우면서 딸의 두 번째 우승을 못 보고 56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2004년 레이크사이드 여자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둔 김소희의 아버지 김주영씨는 딸의 우승 소식을 접한 뒤 1년 만인 53세 때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주부골퍼가 된 KLPGA투어 임지나의 아버지도 간암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다. 야구선수 출신과 결혼한 한희원의 아버지 한영관씨는 고려대 야구선수 출신으로 건강이 무기였으나 심장병 수술을 두 차례나 받을 만큼 쇠약했다. 지금은 건강이 회복돼 리틀야구단 회장을 맡고 있다. LPGA에서 활약하다가 지금은 SBS골프채널 해설을 맡고 있는 박지은의 아버지 박수남 삼원가든 회장도 심장병과 전립선암으로 10년 가까이 고생을 했다.

 

역시 LPGA투어에서 승수를 올린 ‘작은 거인’ 장정의 아버지 장석중씨는 딸 뒷바라지를 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달팽이관 이상으로 균형감각을 잃었다가 한국에 와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2015년 8월3일 ‘골프여제’ 박인비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확정지은 뒤 아버지와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트레스 시달리면서도 자녀에 ‘올인’

 

국내 프로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를 배운다. 아빠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에 입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딸의 뒷바라지를 할 수밖에 없다. 좋아서 시작한 골프가 자식으로 인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로 변한 것이다. 특히 골프는 단체운동과 달리 부모 중 한 사람이 전담해서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김미현의 경우 LPGA투어 시절 가족이 모두 달라붙어 차로 이동하며 함께 생활했다.

 

미국 투어를 뛰는 선수들의 부모는 특히 더 힘들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길도 낯설지만 10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20kg이 넘는 골프백을 메고 3~4일씩 필드를 누벼야 하는 골프 대디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트레스의 주범으로는 자식의 기량과 함께 경제적인 문제가 꼽힌다. 국내 여자대회 우승상금이 최소 1억원이고 스폰서 계약금도 억대를 넘기고 있지만 이는 일부 정상급 선수들의 얘기다. 지난해 KLPGA투어 상금랭킹 100위의 상금수입은 약 2000만원이다. 세미프로, 정회원 테스트, 3부·2부 투어, 정규투어 시드전 통과까지 ‘바늘구멍을 뚫은 낙타’가 됐지만, 통장 잔고는 깨진 독에 물 붓기다.

 

8년을 공들여야 프로골퍼 자격증을 딴다. 또 8년을 우승도 하면서 늘 상위권에 들어야 본전을 찾을 수 있다. 1부 정규투어 시드를 유지해야 ‘손익분기점’을 겨우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까보면 골프 대디들의 스트레스 지표가 금방 튀어나온다. 골프 대디들의 투병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공을 들인 만큼 성적이라도 좋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겠지만,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선수나 아버지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자녀에게 ‘올인’하는 경우는 더 심각하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비단 대디만 있는 게 아니다. ‘맘’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배상문 선수다. 어머니 시옥희씨는 골프 대디 열 몫을 혼자 감당하는 열혈 ‘골프 엄마’다. 남자도 쉽지 않은 무거운 백을 메고 거의 모든 대회에 캐디로 나섰다. 프로가 된 배상문과 어머니 시씨는 필드에서 자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배상문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어머니는 힘겨웠던 백을 내려놨다.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인비(29·KB금융그룹)의 아버지 박건규씨도 초기에는 백을 멨다. 박인비가 LPGA 2부투어에서 뛸 때인 2006년에는 회사 경영을 잠시 친구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캐디는 기본이고 운전사, 매니저, 요리사 등 1인 다역을 하면서 딸의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골프 대디의 사전적 정의는 ‘골프선수인 자식을 따라다니며 극성스럽게 뒷바라지하는 한국의 아버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식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골프 대디들. 이제 우리는 골프 대디를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들을 길러낸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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