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스탠딩 토론했나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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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 구도 속에선 고른 정책 검증 어려움…미국의 일대일 매치 방식 더 적합하단 평가도

 

“앉아서 하는 토론과 뭐가 다르냐” 

“체력 검증하자는 것도 아니고 ‘스탠딩’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특정 후보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면서 오히려 후보 정책 및자질에 대한 공정한 검증에 실패했다.”

 

대통령 후보 토론 사상 최초로 이뤄진 ‘스탠딩 토론’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4월19일 밤 10시부터 120분간 생방송된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 얘기다. 

 

스탠딩 토론은 모든 후보자가 각자의 연설대에 서서 원고 없이 자유주제로 상호 토론하는 방식이다. 시간총량제를 도입해 정해진 시간 내에서 후보들 간에 자유롭게 발언을 하고 질문을 한다. 그 가운데 후보 간 정책적 선명성과 방향성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낼 것으로 기대됐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이 날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는 26.4%의 시청률(닐슨코리아)을 기록했다. 4월13일 ‘SBS 대선후보 토론’ 시청률의 2배 이상이다. 하지만 내용면에선 기대 이하의 토론회였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였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대선 후보 간 검증을 하는 과정이 주로 기조연설, 정견발표 등 준비된 원고를 읽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날선’ 후보자 검증이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스탠딩 토론은 이런 배경에서 도입된 것이다. ‘진짜’ 검증을 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4월19일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대선 후보들. ⓒ 국회사진기자단

한국에서 이번 대선에서 처음 도입한 스탠딩 토론을 통상 ‘미국식 토론’으로 부르는 것은 미국에서 그 형식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대선 후보 스탠딩 토론은 어떻게 이뤄질까. 

 

미국에선 선거를 앞두고 가장 큰 두 개의 정당에서 배출한 대선 후보가 ‘스탠딩 토론’으로 맞붙는다. 이는 후보를 검증하기 위한 필수코스로 꼽힌다. 오로지 서로 다른 정당의 두 후보와 모더레이터(사회자)만이 토론회에서 발언할 수 있다. 다만 모더레이터의 역할을 프로그램 오프닝과 공통질문을 던지는 등 최소한에 그친다. 경우에 따라 토론장에 패널로 나온 관객들로부터 질문을 받기도 한다. 패널 관객은 사전에 신중하게 선별된다. 

 

 

미국선 모두 발언 없이 내내 주도권 토론

 

토론회에서 논의되는 주제는 당대 가장 뜨거운 이슈로 구성된다. 후보들은 사전에 준비된 원고 없이 메모지와 필기구만 가지고 토론에 임하게 된다. 사전에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시각이 있는지가 대번에 드러나는 구조다. 

 

또 모두 발언이나 마무리 발언 없이 내내 주도권 토론을 벌인다. 90분간 진행되는 공동 기자회견 방식 토론(1․3차 토론회)에서 두 후보는 사회자가 제시하는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상호 질의응답을 했으며, 타운홀 방식 토론(2차 토론회)에선 두 후보가 무대에 서서 시민들에게 질문을 받고 답변했다.

 

이런 토론회에선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타격으로 되돌아온다. 돌발 질문에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잘못된 답변을 늘어놓다간 화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이기는 게임보단 지는 게임이 되기 쉬운 판이다. 지난해 미국 공화당 경선후보 토론회에서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이런 실수로 곤혹을 치뤘다. 자신의 핵심공약을 까먹고 결국 “죄송합니다. 아이고(Oops)”라고 말했다. 이 일로 그는 전 국민적 조롱거리가 됐다.

 

순간적인 표정도 그대로 카메라에 잡힌다. 오랜 시간 서서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크다. 가만히 자기 자리에만 서 있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향해 제스처를 하며 분위기를 이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매 순간이 유권자들의 심판대에 올라 있는 셈이다. 두 후보가 주고 받는 질문 공방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후보의 정책적 색채와 국정 운영 철학이 드러난다. 스탠딩 방식이 후보자 간 즉흥적 질의응답 진행되는 만큼 정책공방 자질 검증에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난해 9월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미국 대선 후보 1차 TV 토론회. 스탠딩 방식으로 이뤄진 이날 토론은 84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본 TV 프로그램으로 기록됐다. ⓒ AP연합

스탠딩 방식, 한국서도 통할까?

 

하지만 미국처럼 양자 구도에 적합하지 우리나라처럼 다자구도엔 효과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4월19일 KBS 토론회는 그런 한계를 가장 여실히 드러내보였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주도권 없이 난상토론이 벌어진 가운데 정책 검증이 아닌 후보자들 간 말꼬리 잡기식 ‘마구잡이’ 토론이 이뤄졌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일단 토론자가 5명이나 된다. 각자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있기 때문에 나름의 선택과 집중을 하는데, 문제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른 배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정 두 후보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 두 후보 간 검증은 이뤄지지만 나머지 세 후보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다.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후보 혼자 시간이 남아도는 현상도 나타났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여러 주자들이 한꺼번에 말을 하다보면 말들이 맞물려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무엇보다 지지율이 앞선 특정 후보에 대한 여타 후보들의 공격이 집중되면서 일대다 매치의 상황도 종종 연출됐다. 스탠딩 토론이 본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보여주기식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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