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재미없고 어렵다는 편견 깨고 싶다”
  • 김은샘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1 16:08
  • 호수 14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오페라 70주년 기념작 《라 트라비아타》 주역 맡은 ‘한국의 비올레타’ 소프라노 김희정씨

 

2017년은 한국 오페라 탄생 70주년의 해다. 70주년을 맞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4월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라 트라비아타》는 1948년 명동 시공관에서 《춘희(동백 아가씨)》라는 이름으로 초연됐다. 한국에서 공연된 최초의 오페라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라 트라비아타》는 1840년대 프랑스 파리 사교계 매춘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 소설 《동백아가씨》를 오페라로 만든 베르디의 걸작이다.

 

이번 무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김희정씨가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고, 세계적인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봉을 잡아 공연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라 트라비아타》는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며 4월9일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비올레타를 맡아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를 책임진 김희정씨를 4월11일 만났다.

 

소프라노 김희정씨 © 김희정 제공

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막 마쳤는데.

 

감회가 더 남다르다. 감독님께서 연극·국악 무대를 주로 연출하셨던 분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색다른 면을 무대에서 표현했다. 특히 이번 무대는 영상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오페라 서곡에 동백꽃이 날리는 장면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등 무대 전반에 영상을 사용했다.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여기에 영상과 조명이 더해져 삼박자가 잘 맞았다. 관객들 반응도 매우 좋았다.

 

 

수많은 오페라 작품 중에서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보통 오페라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지 않나. 《라 트라비아타》는 신분의 차이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친숙하다. 공감이 되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사회상으로도 밀접한 부분이 있다. 또 파티가 펼쳐지는 등 무대가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점도 꼽을 수 있겠다.

 

 

비올레타 역을 가장 많이 맡았다. 김희정이 연기하는 비올레타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성악가는 몸이 ‘헤비’하다. 나도 귀국 후 처음 오페라를 할 때만 해도 체격이 있는 편이었다. 지금은 다른 성악가에 비해 왜소한 편이다. 연약한 비올레타를 표현하기에 좋다. 그리고 오페라 가수들 대부분은 연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나는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액팅을 신경 쓴다. 이제는 많이 성숙해져서 비올레타 역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비올레타 역이 자연스럽겠다.

 

당연히 여러 번 할수록 편하다. 성악가에게 발성은 매우 중요하다. 발성을 잘 잡아가면 연륜이 쌓이면서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내가 테크니컬한 곡들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은 발성을 보존해 왔기 때문이다. 비올레타는 소프라노 파트의 리리코·스핀토·드라마티코·콜로라투라 특성을 모두 발휘해야 하는 배역이다. 감정 변화도 다양하다. 이런 테크니컬을 모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의 주역을 맡아왔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배역이나 공연이 있나.

 

역시 《라 트라비아타》다. 소프라노라면 한 번쯤 하고 싶은 공연이다. 하고 싶어 하지만 감히 손을 못 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주역이라고 해서 분량이 다 똑같지 않다. 어떤 작품은 한 막에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라 트라비아타》는 비올레타에게 집중된 오페라다. 3분의 2를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리골레타》의 질다 역도 꼽을 수 있겠다.

 

 

배역을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감정이입이 돼야 한다. 내가 빠져들지 못하면 관객도 빠져들 수 없다.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이 돼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몰입이 수월해지는 것 같다. 그 역할이 더 이해가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이태리어를 공부했어도 가사 의미를 놓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파악이 된다. 이해가 되고 몸에 스며드니까 연기로 연결된다. 관객에게도 더욱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전부 신경 쓰려면 고충이 있겠다.

 

주역배우가 되려면 당연한 일이다. 그 역할처럼 인생을 살아야 하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인물에 내가 겹쳐져 표현되는 거다.

 

 

국내에선 클래식이 일부 마니아층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관객에게 공감되지 않는 오페라를 한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페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다. 특히 행사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면 전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크로스오버’를 시작하게 됐다. 오페라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을 깨고 싶다. 굉장히 슬픈 일이다. 이는 오페라를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긴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희정씨

오페라의 대중적인 확산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게 있나.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래·연기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다. 좋은 공연에 관객이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최선을 다하면 관객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도 이 노력을 이어 갈 것이다.

 

 

다른 장르와 비교할 수 없는 오페라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잘 만든 오페라는 어떤 장르보다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겠지만, 오페라는 제작에 더욱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이 오페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제작자들도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

 

가수와 제작진 모두 노력해야 한다. 영화나 뮤지컬은 관객들이 보고 작품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는 잘 모른다. 따라서 잘 만들어지지 않은 오페라를 접하게 되면 ‘오페라는 별로’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그러면 다시는 찾지 않게 된다. 제대로 된 오페라를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제작에 공을 들이는 게 대중화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크로스오버를 언급했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가.

 

장르를 넘나든다는 뜻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반은 클래식이지만, 그 외의 장르도 전부 아우를 수 있는 게 크로스오버다. 크로스오버를 하는 이유는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기 위해서다. 내 창법으로 트로트를 부르면 색다른 형태의 음악이 된다. 이런 점들을 추구하는 거다. 사실 성악가가 하는 크로스오버 무대는 많지 않다. 나는 이를 병행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특별히 관심이 가는 장르가 있나.

 

많은 작품을 다양하게 해 보고 싶다. 나만의 새로운 오페라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뮤지컬도 하고 싶다. 하지만 뮤지컬은 워낙 배우층이 젊고, 요즘은 아이돌도 많이 출연하고 있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떤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나.

 

오페라 가수로서 ‘비올레타 김희정’ 같은 나만의 타이틀을 갖고 싶다. 스스로의 정상에 서고 싶다고 할까. 크로스오버 가수로는 ‘한국의 사라 브라이트만’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성악을 해 왔던 것에 정점을 찍고 싶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