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아닌 PD 중심 드라마 업계 패러다임 바꿔라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4 10:31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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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의 자살 사건으로 다시금 열악한 방송 제작 현실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그 해법은 무엇일까. 때마침 시사저널은 바로 직전 호(1435호 특집Ⅱ ‘방송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 나영석’ 참조)에서 방송사가 아닌 PD 중심으로 방송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나영석 사단’을 특집으로 집중 조명한 바 있다. 방송계의 변화를 이끌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 소식이 뉴스로 전해졌다. 드라마가 종영한 바로 다음 날인 10월26일 새벽 강남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이 문제는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4월17일 고(故)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가 SNS에 글을 올리면서 이 사안은 온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공적 사안으로 다시금 떠올랐다.

 

‘즐거움의 ‘끝’이 없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대기업 CJ, 그들이 사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씨는 자신의 형이 “현장에서 과도한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며 “형이 남긴 녹음파일·카톡 대화 내용에는 수시로 가해지는 욕과 비난이 가득했다”고 폭로했다. 또 “형의 생사가 확인되기 직전, 회사 선임은 부모님을 찾아와 이한빛 PD의 근무가 얼마나 불성실했는지를 무려 한 시간에 걸쳐 주장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비정상적이지만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풍토

 

‘방송사의 갑질’을 암시하는 듯한 글들은 즉각적으로 대중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한빛 PD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4월18일 연 기자간담회에서는 이 PD가 총 55일 동안의 촬영기간 중 이틀밖에 쉬지 못했고, 중도에 해고된 계약직의 계약금 일부를 받아내는 업무까지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이 PD의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 같은 혹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드러내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사안이 일파만파 커지자 CJ E&M 측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했고, 이번 사안에 대한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해서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질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사실 이번 사안은 드라마 업계에서는 꽤 고질적인 것이다. 55일 동안 이틀밖에 쉬지 못하고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며 현장에서 쪽잠을 자는 노동 강도가 살인적이라는 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 업계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일로 치부되어 왔다. 그래서 이번 사안이 터졌을 때도 항간에서는 심지어 ‘그렇다고 그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나’라며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드라마 PD들의 경우, 그 노동하는 방식은 여느 직장인들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게 되면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하지만, 끝나고 나면 다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휴지기를 갖는다. 그 휴지기 동안은 출퇴근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래서 이처럼 집중적으로 노동을 쏟아내는 방식이 어느 정도 용인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감안해서 이해하려고 해도 이것이 비정상적인 노동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제작 현장에는 PD만 있는 게 아니다. 조명이나 음향 같은 스태프들도 있고, 그들 같은 경우엔 프리랜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송국에 소속된 PD들처럼 드라마가 끝났다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업무적 특수성이 이러한 노동 강도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드라마 업계에서는 PD는 물론이고, 작가·스태프·배우들까지 매주 내보내야 할 드라마 분량을 소화하기 위해 링거투혼을 벌이는 게 마치 무용담처럼 회자되곤 한다. 때때로 촬영 도중 현장에서 도망치는 배우가 생기기도 하고, 쪽대본을 쓰는 작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차도로 뛰어들고 싶었던 그 극렬한 스트레스를 얘기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노동을 감수하게 된 걸까.

 

4월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tvN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여기서 이 PD의 모친 김혜영씨가 CJ E&M 규탄 발언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민중의 소리 제공

편성 쥐고 있는 방송사가 ‘슈퍼 갑’ 군림

 

그 모든 노동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 방송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드라마 제작은 방송사가 직접 하기보다는 외주제작을 통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외주제작사들은 방송사의 편성을 따내야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편성을 쉽게 줄 리 만무하고, 워낙 외주제작사들 간의 경쟁도 심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거의 사전제작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편성을 받고 제작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른바 ‘실시간 드라마’가 나오는 건 이런 경쟁적 환경 속에서 편성을 쥐고 있는 ‘슈퍼 갑’ 방송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는 심지어 시청률이 떨어지는 드라마의 경우,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의 방향성을 틀기도 하고, 무리하게 연장을 하거나 축소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사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드라마를 외주제작사의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편성시간에 맞추기를 원한다. 결국 방송사의 한마디는 쉽게 던져지지만 그것을 따르기 위해 현장은 지옥이 되는 셈이다. 방송사는 심지어 애초에 결정됐던 드라마의 폐지를 일방적으로 내놓기도 한다. 최근 SBS의 일일드라마 폐지 결정은 미리 1년 치 계약을 하고 준비해 온 외주 스태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폐지 결정은 사실상 실업 상태가 되는 그들에게는 생계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고 이한빛 PD의 사건이 비롯된 《혼술남녀》의 경우는 외주제작이 아니라 tvN에서 자체 제작된 드라마다. 상대적으로 조율이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문제가 터진 건 초반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면서 드라마에 대한 전면 재조정에 들어간 데서 비롯됐다. 즉 사전에 찍어놓은 초반 분량이 대거 재촬영에 들어갔고,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촬영·조명·장비팀 같은 외주업체가 대거 교체되면서 업무량이 폭증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체제작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사가 시청률에 따라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거나 재촬영하는 것을 마치 당연한 관행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100% 사전제작제’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드라마 사전제작에 대한 요구는 제작진과 배우 측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실제 최근 들어 중국의 사전 심의를 받기 위해 중국 측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드라마들이 대거 100% 사전제작을 했지만, 그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태양의 후예》 한 편만 성공했을 뿐, 《함부로 애틋하게》 《화랑》 《사임당, 빛의 일기》 같은 일련의 100% 사전제작 드라마들은 모두 완성도와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었다. 시의성이 맞지 않는다는 점은 사전제작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었다. 이 시기 《피고인》이나 《김과장》 같은 비교적 현 시의성에 맞춰 빠르게 제작된 드라마들이 좋은 성적을 가져가면서 100% 사전제작에 대한 회의가 생겨났다. 즉 이번 사안으로 다시금 100% 사전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드라마 제작의 노동 현실은 상당히 좋아질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가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그 부담은 다시 그 드라마를 제작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나영석 사단’을 통해 찾아보는 해법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때마침 지난 호 시사저널이 기획특집으로 다룬 ‘나영석 사단’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다. 같은 tvN이지만 《혼술남녀》의 제작진이 겪은 현실과 일련의 성공작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나영석 사단의 제작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의 느낌을 준다. 가장 큰 이유는 예능과 드라마의 제작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드라마는 여전히 작가와 PD, 그리고 배우와 스태프로 이어지는 위계질서 속에서 만들어진다. 반면 예능은 다르다. 특히 나영석 사단이 움직이는 인력 시스템을 보면 다 함께 고민하고 다 함께 아이디어를 내놓는 수평적인 소통 시스템이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나영석 사단도 결코 약하지 않은 노동 강도로 일한다. 하지만 제작진이 느끼는 소속감과 자존감은, 그들이 느끼는 노동 강도를 저 드라마 제작의 현실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게 한다.

 

3월2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영석 사단의 경우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신원호 PD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성공시킨 그 시스템은 나영석 사단이 해 온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영석 사단의 일부가 이 드라마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 창작 시스템은 현재 드라마 업계가 새로운 제작 시스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집단 창작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수직적 위계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하는 수평적 구조여야 가능한 시스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노동 강도가 특히 문제가 되는 지점은 분량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방송사가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지만, 좀체 바꾸려 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10회를 넘기지 않고 대신 시즌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나영석 사단은 철저한 시즌제로 가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렇듯 방송사 주도로 이뤄지는 드라마 제작 형태가 이젠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신 외국의 스튜디오형 제작 시스템처럼 실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PD들이 주도권을 잡고 가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어떻게 하면 최적의 상태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 이것이 현 드라마 제작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선적으로 방송 업계가 모두 공감해야 할 지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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