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으로 치닫는 ‘洪의 막말’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4 11:20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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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막말, 보수층 결집·대권 아닌 당권 장악 의도” 분석

 

“막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진실이다. 모든 사람이 말 못하는 것을 홍준표가 할 뿐이다. 그걸 정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할 뿐이다. 사람들이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홍 후보가 이야기하니 ‘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둘러서 편하게 하면 먹히겠는가. 우리 남편은 다 계산해서 말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부인 이순삼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 후보의 막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홍 후보가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속된 표현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는 얘기다. 홍 후보의 막말이 교묘하게 짜인 ‘이슈 메이킹’이란 셈이다.

 

홍 후보의 별명은 ‘홍럼프(홍준표+트럼프)’다.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홍보수단으로 막말을 썼던 것을 차용하면서 붙여졌다. 진보진영에 대한 막말에 보수층이 카타르시스를 느껴 단기간에 결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략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양강 구도를 형성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에 맞설 ‘스트롱맨’ 전략으로 막말을 활용하고 있다. ‘박근혜 파면’ 이후 구심점을 잃은 보수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선거 구도를 전환시키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란 평가도 나온다.

 


洪, ‘文·安=좌파 패거리’ 묶는 데 주력

 

홍 후보는 막말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선거 구도를 설정해 나가고 있다.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의 이념 스펙트럼을 보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진보에, 문 후보가 중도진보에 속한다. 안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중도보수에, 홍 후보는 보수에 포함된다. 홍 후보의 최대 고민은 안 후보가 중도보수를 장악해 자신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홍 후보는 이런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문 후보와 안 후보를 ‘좌파 패거리’로 묶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철 지난 색깔론까지 동원하며 두 후보를 무차별 폭격하는 형국이다. 홍 후보는 울산 남창시장 유세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걸 북한과 상의할 것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대북정책에 한해 한국의 대통령은 문 후보가 아니라 김정은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실질적인 대통령은 박지원 대표가 된다. 사실상 친북좌파인 박 대표가 안철수 후보 대신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두 후보를 ‘친북 인사’로 낙인찍어 보수 표심을 결집하는 동시에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보수층의 안 후보 지지 추세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홍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좌파 두 사람, 얼치기 좌파 한 사람, 우파 한 사람이 경쟁하는 구도”라며 “이번 대선은 결국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좌우 대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치기 좌파는 안 후보를 지칭한다.

 

홍 후보는 지역감정 조장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대구 유세에서 “좌파 셋에 우파 하나가 나왔는데, 선거에 못 이기면 정말 우리는 낙동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서는 “호남은 두 사람이 나눠 먹게 돼 있으니 영남이 결집하면 대선에서 이긴다”며 영남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홍 후보의 막말 퍼레이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홍 후보가 한 방송사의 모바일 영상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홍 후보는 YTN의 모바일 콘텐츠 ‘대선 안드로메다’에 출연해 ‘집에서 설거지를 하느냐’는 질문에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인데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에게 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빨래와 설거지를 “절대 안 한다. 하면 안 된다”며 “전기밥솥도 열 줄 모른다. 라면도 못 끓인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경상도는 뭐 그렇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홍 후보는 대선후보 토론에서 “스트롱맨이라서 세게 보이려고 그렇게 얘기했다. 실제로 설거지 다 한다”고 해명했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법이다.

 

그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성완종 리스트’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0.1%도 가능성이 없지만, 유죄가 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품격 없는 막말에 보수층조차 외면

 

홍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사체” “춘향인 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었다”고 극언했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게는 “TK(대구·경북)는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 후보의 막말 행보는 보수층 결집 효과를 볼지는 몰라도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홍 후보가 ‘대권보다는 당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0% 안팎의 보수층 지지를 흡수해 당권 장악에 나서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홍 후보의 과거 전력을 보면 그의 막말은 ‘홍준표 본색’이자 구태정치의 재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후보가 직접 상대 후보를 겨냥해 색깔론을 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홍 후보가 색깔론이란 ‘낡은 레코드’를 다시 틀며 보수 표를 결집시켜 보려 하지만 품격 없는 그의 말에 보수층조차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기존의 이념·지역 구도가 무너진 이번 대선판에 시대착오적인 선거전략을 들고나와 건전 보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막말 정치는 호응하는 보수층과 거부감을 느끼는 진보층을 갈라지게 만든다.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막말 정치와 작별을 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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