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 ‘미확인 정치물체’가 프랑스에 뜨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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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신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선 결선 진출하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앙 마르슈’(전진)라는 정치 결사체를 발족한 게 1년 전인 지난해 4월6일이었다. 당시 마크롱은 올랑드 정권의 경제장관 출신으로 대선 출마도 확실하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1년 뒤인 2017년 4월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1년 만에 새로운 후보를 대통령 결선 투표로 밀어 올렸다. 1977년에 태어난 39세의 마크롱은 지금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포지션을 잡았다. 결선에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와 만나게 됐고 현 시점에서 프랑스 정치 구도를 고려할 때 당선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4월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로 올라선 중도 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 ​ ⓒ UPI 연합

 

“오늘 게스트는 미확인 정치물체입니다”


프랑스 TV ‘프랑스2’의 앵커는 그를 방송에 초대하면서 “1970년대에는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화제가 됐지만 오늘의 게스트는 미확인 정치물체입니다”라고 소개했다. 4% 지지율을 기록해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된 올랑드의 불출마, 아내와 두 자녀를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해 공금으로 임금을 챙겨줬다는 의혹을 사게 된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의 지지율 추락 등이 일으킨 나비효과의 최대 수혜자가 마크롱이었다. 

마크롱은 한 번도 선거에 나선 적이 없다. 이번 대선이 그가 후보로 나선 첫 선거였다. 정치적 경험이 적고 어리다는 건 그동안 프랑스 정치에서 부정적인 요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험이 존중되어 온 프랑스 정치 전통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마크론은 국립행정학원 (ENA)를 졸업한 뒤 회계검사원에서 근무했고 로스차일드계 은행에서 일하며 기업인수를 담당했다. 2012년 미국 제약회사인 화이자 산하의 기업 인수를 놓고 스위스의 네슬레, 프랑스의 다농이 붙었을 때 프랑스 기업이 아닌 네슬레가 승리를 거둔 배경에는 마크롱의 조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그의 능력은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특히 프랑스의 우파가 그를 원했지만 마크롱은 오히려 좌파를 선택했다. 사회당 올랑드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는 우리의 청와대에 해당하는 엘리제궁으로 들어갔다.

르피가로의 편집위원들이 쓴 ‘에마뉘엘 마크롱, 왕이 되고 싶은 은행가’라는 책에 따르면 마크롱은 올랑드 정부 경제장관 시절 파리 제1대학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7년에는 하원 의원, 2020년에는 단체장을 지내고 2021년에는 경선에 출마하지만 너무 어린 게 문제라 2027년 대선에 대비한다는 식의 생각으로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정치권의 먹이 사슬에 얽히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거다. 위험을 감수하고 일순간에 집중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정치적 거물로 성장하는 상식적인 과정을 그는 거부하고 있었다. 정치권에 오래 머물수록 좋은 정치는 없다는 ‘정치 불신의 인식’을 그는 갖고 있었고, 많은 프랑스 국민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마크롱 후보와 함께 프랑스 대선 결선에 진출한 극우 성향의 후보 마린 르펜 ⓒ EPA 연합​

프랑스 내에서는 그가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와 닮았다고 본다. 외무부 소속이던 그는 1992년 외무부 장관을 지냈고 2005년 6월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 역시 마크롱처럼 단 한 번도 선거를 거치지 않은 채 장관과 총리 자리를 지냈다. 그는 의회를 ‘구태’로 여겼고 의원들을 믿지 않았다. 그 역시 대선을 꿈꿨고 손에 잡을 듯 했지만, 결국 그를 대신해 대선에 나선 사람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구태로 지목했던 의원들의 협조를 얻지 못해서였다. 반면 마크롱의 상황은 드 빌팽과는 다르다. 과거와 달리 의회가 기득권의 상징이 되면서 대중 역시 의회에 불신을 내비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크롱은 드 빌팽보다 유리한 상황을 맞았다. 


야당 의원 맨투맨 설득 끝에 만들어 낸 ‘마크롱법’

마크롱이 단순히 외부에서 평론가처럼 보내고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정치력도 증명했다. 우리네 ‘김영란법’처럼 프랑스에도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법에는 발의자나 통과에 노력한 사람의 이름이 붙는다. 지금 프랑스에는 ‘마크롱법’이 있다. 경제 장관 시절에 만든 법인데 대표적인 내용이 국제관광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1년 내내 일요일 및 야간 영업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나왔을 때만 해도 통과가 어려울 거라는 게 지배적인 예상이었다.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흐름과 반대 방향이었고, 그래서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의 정책과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크롱은 야당 의원을 하나 둘 설득해 결국 2024회 수정이라는 기록을 만들며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마크롱의 정치력과 추진력이 증명된 때였다. 

과연 프랑스는 30대 대통령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까. 결선 투표는 5월7일 열린다. 4월23일 실시된 2개의 여론조사에서는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의 지지율을 64%와 62%로 예상했다. 마크롱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지만 르펜은 그리 쉽지 않은 상대가 될 수 있다.

여론조사업체 ‘비아보이스’ 대표인 프랑수아 미케마르티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새로운 선거전이 시작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르펜은 상위 계층 엘리트의 마크롱과 대중 속 후보로서 자신과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해 결선 투표에 임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마크롱을 속속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르펜 진영은 마크롱을 ‘실패한 올랑드의 후계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당과 거리를 둔 마크롱이지만 올랑드와는 가까운 사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눈 기존 프랑스 정치권을 대신해 프랑스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후보는 르펜 뿐이라는 메시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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