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동굴과 이케아의 이질적 동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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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11) 경기 광명시] 무미건조한 도시에서 혁신을 일궈낸 광명시의 도전

 

광명시민들에게는 조금 민망한 고백이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에게 경기도 광명시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향할 때,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음을 일깨워주는 이름 정도였다. 특별한 매력이나 이렇다 할 관광지도 없었던 광명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즈음이었다. 버려졌던 폐광이 ‘광명동굴’로서 새 출발하게 됐음을 알린 게 그 해 여름이었고, 같은 해 연말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스웨덴의 가구기업 ‘이케아’가 우리나라에 진출하는 첫 발판으로서 광명시를 낙점했다.

 

2011년 당시에는 우려도 많았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던 이 두 프로젝트들이 지금은 광명시를 대표하는 이슈메이커가 됐다. 특히 작년 8월 광복절 연휴기간동안, ‘광명동굴’와 ‘이케아 광명점’이 유명 네비게이션 어플들의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다. 

 

광명동굴 일원에 위치한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눈에 띄는 외관으로, 광명동굴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 사진=김지나 제공

 

지난 봄, 그 명성을 확인하러 필자는 직접 광명동굴을 찾았다. 거의 도착했을 때 즈음, 하늘 높이 솟아오른 꽃분홍색의 화려한 굴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이라는 건물이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초콜릿공장’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옆에는 폐품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있었고, 작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전시’로 유명해진 기획전시관에는 또다른 미디어아트 전시가 한창이었다. 흔한 동굴관광지 정도를 상상했던 필자의 예상과 달리, 광명동굴은 ‘재생’과 ‘빛’을 소재로 한 테마파크로 진화 중인 듯했다.

 

 

사람들이 몰릴 시간대를 피해 평일 아침 일찍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관광객과 일반 시민들, 그리고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이들로 광명동굴은 이미 북적댔다. 광명동굴 측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광명동굴을 찾았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박 상품’인 셈이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광명동굴의 내부는 중국 장가계의 유명한 황룡동굴과 같은 곳에 비하면 그 웅장함이나 화려함이 뒤떨어진다. 대기업에서 만든 테마파크들처럼 능숙한 기술과 세련된 아이템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명동굴은 매력적인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이곳이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는 역사의 켜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일테다.

 

 

 

광명동굴에 생동감 불어넣은 역사의 숨결

 

광명동굴을 단지 광산으로서의 기능이 다한, 지나간 시절의 산업유산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람들이 징용을 피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와 광부가 되었고, 한국전쟁이 치러지는 동안에는 피난민들의 소중한 안식처였다. 광명동굴은 우리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들을 목격한 증인인 셈이다. 광명동굴의 성공을 논할 때면 이 개발사업을 뚝심 있게 추진한 광명시 공무원들의 공을 치하하곤 한다. 하지만 이 장소가 수십 년간 겪었던 역사의 순간들이 빚어내는 아우라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성공은 없었을 거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광명동굴 내에는 동굴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에 얽힌 오랜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 사진=김지나 제공

 

광명동굴에서 차로 불과 1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이케아 광명점이 있다. 직선거리로는 1.5km에 불과한 거리다. 이케아가 생긴 이후, 중소 가구업체들이 타격을 크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무한경쟁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중소기업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뤄둘까 한다. 왜 사람들이 중소업체가 아닌 이케아를 찾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싼 가격에 괜찮은 디자인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원초적인 장점 외에, 이케아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케아에는 소위 ‘공룡’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데, 사실 이것만큼 이케아의 실체를 왜곡시키는 표현도 없다. 이케아와 중소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몸집이나 가격의 문제만이 아니다.

 

광명시 일직동에 위치한 이케아 광명점. 주말이면 이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 사진=김지나 제공

 

‘이케아’ 입점으로 또 한 겹 색채를 더하다

 

 

이케아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놨다. 이케아가 무서운 것은, 가구도 유행 따라 쉽게 바꾸는 소비품이라는 ‘가치관’을 소비자의 머릿속에 심어줬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까지 눈으로 보여준다. 집 크기에 따라, 공간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인테리어하면 좋을지 실물로 보여주고, 바로 그 자리에서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경험을 판다’는 이야기는 이제 진부하다. 이케아는 경험의 연속적인 과정을 팔고 있었다. 필자에게 조금 여유가 있었더라면, 아마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인테리어 소품들을 쇼핑카트에 한아름 담아 나왔을지 모른다.

 

이케아 광명점 덕분에 광명시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선진적인 도시가 됐다. 도약을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 혁신이 외부의 거대 자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그로 인한 변화에 적응하고 동화되기도 하면서 광명시의 내공도 한층 더 탄탄해질 것이 분명하다.

 

‘광명동굴’과 ‘이케아 광명점’은 태생부터 개발과정까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광명동굴이 도시가 가진 자원을 발굴하고 재해석한 전략이었다면, 이케아 광명점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대기업의 철학과 노하우를 도시 내에 그대로 이식한 결과다. 하지만 이 이질적인 장소들의 어색한 동거는 미묘한 균형감을 이루고 있었다. 광명동굴이 보여주는 지역의 역사적 깊이감도 중요하고, 일개 중소도시가 스스로 생각해내기 어려운 참신한 문화적 시도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도시의 혁신을 이루는 일은 결국 이 두 가지 전략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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