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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사라지고 돈때만 묻은 《미인도》

한국의 미술문화 왜곡이 낳은 상징적 사건 ‘천경자ㆍ이우환 위작 스캔들’

김윤섭 미술 평론가(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6(Sat) 11:30:00 |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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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안팎이 또 한 번 들썩이고 있다. 오랜 기간 위작(僞作) 시비 중이던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전격적으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천 화백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위작 여부에 대한 공방이 일단락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첨예하다. 4월19일 26년 만에 국현의 과천관 소장품전을 통해 얼굴을 내민 《미인도》는 이름표 없이 방탄유리를 두른 채였다. 모양새는 마치 ‘한국의 모나리자’가 된 듯하다.

 

그동안 온갖 미디어에 날 선 대립각이 고스란히 중계됐던 탓인지, 세간의 관심도 더없이 뜨겁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위작 시비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이우환 사건’도 덩달아 회자되고 있다. 문제가 된 작품을 천 화백 자신은 본인이 그린 게 아니라고 한 반면, 이 화백의 경우엔 거꾸로 위작 시비가 된 작품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이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 입장에선 참으로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하지만 서로 상반된 논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뭇 흥미롭다.

 

우선 ‘천경자의 미인도 사건’이다. 1991년 당시 국현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선보인 《미인도》를 두고 천경자 화백은 “내 자식이 아니다”고 했다. 일반적인 진위 논란에선 작가의 말을 우선으로 한다. 또한 “그 작품을 그렸다는 당사자인 화가가 가장 잘 알 것”이란 견해도 충분히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 맞다”란 국현의 반박으로 인해 전혀 예기치 못한 ‘승자 없는 싸움’의 형국이 전개되었다. 급기야 본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낙담한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하고 한국 땅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고(故) 천경자 화백의 작품인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미인도》가 26년 만에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양쪽 주장의 근거를 좀 더 살펴보자. 이번 국현 측의 소장품 특별전 ‘균열’ 전시에는 《미인도》 이외에도 천 화백의 다른 93개 작품과 진위 공방에 관련된 자료들도 함께 선보였다. 자료에는 ‘1980년 5월 《미인도》 인수장부, 김재규 전 정보부장 자택 압류 후 관리전환 사실, 그림을 둘러싼 진위 공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건들’이 포함됐다. 이미 지난 2월 국현의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검찰이 과학적 검증을 거쳐 진품이라고 발표했다”는 점을 근거로 《미인도》의 공개를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유족들의 뜻을 존중해 《미인도》의 작가 이름을 명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현 측과 적지 않은 미술계 감정전문가들은 일관되게 진품을 주장해 왔다. 국현이 나서서 서명의 필적감정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안료분석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각각 의뢰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KIST 분석에서 천 화백이 사용했던 안료와 《미인도》의 안료가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도 진품임이 입증됐다’고 발표했었다. 또 다른 결정적 계기는 ‘위조범 권춘식의 말 바꾸기’였다.

 

 

정부의 ‘국립감정연구원’ 설립이 해답일까

 

권춘식씨는 미술계에선 ‘솜씨’ 좋기로 제법 이름난 유명 인사다. 청전 이상범, 이당 김은호 같은 웬만한 유명 한국 화가의 작품을 ‘거의 똑같이’ 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일부 화랑에선 작품의 진위 판가름용으로 그의 작품을 일부러 사다 놓는가 하면, 어느 작가의 진품과 권씨의 위품이 동시에 미술품 경매에서 진품으로 여겨져 높은 가격에 낙찰됐었다는 루머도 에피소드로 돌았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1991년 《미인도》의 위작 시비 초기에 “그건 내가 그렸다”고 주장하자, 일시에 위작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지난해 말 권씨는 검찰수사 과정에서 연달아 위조 사실을 번복한다. 1·2차 조사 때까지만 해도 위조했다고 주장했지만, 최종적으로 3차 조사에선 “《미인도》는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권씨는 왜 자꾸 말을 바꿨을까? 사실 그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천 화백의 그림을 주문 받아 ‘선물용’으로 5~6점 위작했다고 했다. 대부분 천 화백 작품이 실린 달력을 보고 ‘짜깁기’한 것이다. 물론 《미인도》의 실물도 검찰조사 이전에는 본 적도 없었다.

 

지금 전시 중인 국현의 ‘균열’전에는 《미인도》가 진품임을 암암리에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이 많다. 물론 권씨의 진술과 검찰수사 결과까지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유족 측의 반응은 변함없다. 오히려 국현 관장 등을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작가와 유족 측을 배려하기 위해 ‘작가 이름’은 뺐다지만, 이미 《미인도》에는 ‘경자(鏡子)’라는 이름이 적혔기 때문에 누구라도 ‘천경자의 그림’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논리다.

 

만약 유족 측의 주장대로 이 작가서명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법조계 전문가들은 저작권법(제137조 1항 1호-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에 저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현 측의 “그림을 적법하게 양도받은 것이어서 전시할 권한이 있다”는 주장 역시, 유족 측은 천경자 화백으로부터 적법하게 양도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형법 제308조의 ‘사자(死者) 명예 훼손’에 해당한다는 반박이다. 따라서 공개전시를 지시하거나 결정한 관장·결재권자·실무자 등 전원을 고소할 예정이라고 유족 측은 밝혔다.

 

이렇듯 위작 시비의 주인공인 《미인도》를 두고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이젠 누구도 속단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진 현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최근 2~3년간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이우환 작품 위작 사건’이 큰 몫을 했다. 이 사건은 위조범이 검거됐고, 위작을 유통한 중개인이나 화랑 대표가 구속 수사를 받는가 하면, 매수된 검찰 수사관은 출국금지까지 당했다. 이 과정에서도 정작 작가 본인은 위작을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위작엔 진품확인서까지 써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심지어 수사가 일단락 종결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위작 시비로 경매 출품이 번복되는 등 악재의 여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천경자 화백과 이우환 화백은 각각 작고작가와 생존작가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른바 ‘블루칩 작가군의 최고점’으로 꼽힌다. 블루칩 작가의 특징은 ‘환금성’이다. 그만큼 ‘돈이 된다’는 얘기다. 불과 몇 점만으로도 수십억원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가령 지난해 말에 위작 관련 불구속 기소된 2~3명이 2013년 한 해에 경기 하남시의 한 컨테이너 작업장에서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위작 2점을 비롯해 몇 점을 팔아서 챙긴 금액이 무려 33억원에 달했을 정도였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더 이상 미술품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나, 미술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을 늦춰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일명 ‘천경자·이우환 위작 스캔들’을 계기로 미술품 유통시장의 투명화 바람이 일고 있다. 그동안 예민한 사안에 소극적이었던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까지 팔을 걷었다. 지난해 중하반기부터 수차례의 토론회와 세미나를 거쳐 수렴한 의견을 토대로 발표한 내용들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술시장 유통 투명화를 위해 문화부가 내놓은 대안은 ‘미술품 유통업 허가ㆍ등록제’ ‘미술품 등록 및 거래이력 신고제’  ‘미술품 유통단속반 운영’  ‘위작 단속전담 특별사법경찰 도입’ 등 아주 구체적이었다.

 

1월24일 서울중앙지검에서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의 변호인단이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검찰의 결론에 대한 항고장을 제출하기 전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체계적 감정평가 문화 조성과 전문인력 양성 필요

 

이 가운데 가장 크게 주목되는 대목은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가칭)’ 설립이다. 그동안의 미술품 위작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져 정부가 직접 심판원으로 나선 격이다. 한편으론 민간 감정기관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 한 간담회에서 문화부 관계자가 “(천경자 사건과 연계하여) 수사 중인 모든 미술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기거나 전문인력이 없어 프랑스에 의뢰했는데, 이제 감정연구원이 생겨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하지만 ‘감정할 수 있는 전문가의 인력풀’이 한정되어 있다는 건 큰 한계점이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결국 최종적으로 감정에 나서는 이가 중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미술품 감정은 일반적인 학업과정으로만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 제도와는 다르다.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하여 무조건 ‘국공립 기관’을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너무나 구태의연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자칫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위작 사건에 있어 책임을 정부가 떠안게 되는 구조적인 맹점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정부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시기상조’란 의견이 많다. 물론 원론적인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위축된 시장의 경기부터 살리고 보자는 것이다. 자칫 옳은 명분이 규제만 늘려 오히려 퇴색될까 염려된다는 우려도 있다. 향후에 체계적인 감정평가 문화의 조성과 전문인력 양성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특히 감정평가 시스템의 완성은 결국 사람이란 점이 간과되어선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슈퍼컴퓨터라도 제대로 해석하고 운용할 수 있는 기상관이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제도나 규제의 실효성도 구성원들 간의 건강하고 유기적인 관계성이 원활할 때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내부 구조상 다소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란 지적이 있었다면, 미술계 스스로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겠다. 특히 진짜와 가짜의 주장이 첨예하게 얽힌 이해관계의 모습으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긴 어렵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천경자와 이우환 관련 위작 시비는 우리 미술계엔 매우 중요한 계기일 수도 있다. 이젠 특정한 개개인의 언쟁을 넘어, 공공의 장에서 발전적인 논쟁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국제 미술무대에서 아시아의 비중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 각국은 앞다퉈 자국의 미술과 미술산업을 국가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일련의 두 사건은 우리 미술계에 “과연 긴 안목으로 어떤 개선 의지가 필요한 것인가”를 되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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