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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강로에서] 天下興亡 匹夫有責(천하흥망 필부유책)

박영철 편집국장 ㅣ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7(Sun) 11:30:00 |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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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일 5월9일을 앞두고 나라가 뒤숭숭합니다.

 

대선 막바지에 접어든 요즘 판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무래도 TV토론입니다. TV토론을 볼 때마다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주요 후보 5명의 자질이 하나같이 수준 이하여서 ‘이들 중에 누가 돼도 앞으로 5년간은 암담하겠구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TV토론을 본 일반 국민들 중에는 ‘내가 해도 이자들보다는 잘하겠다’는 느낌을 받은 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어쩌면 한국의 전통을 계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치명적인 결함 중 하나가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니까요. 배출은커녕 자기보다 낫다 싶으면 미리 싹을 잘라버리려 합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이순신의 사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선조는 끊임없이 이순신 장군을 시기 질투하고 틈만 나면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 김덕령 등 의병장에게 역적 누명을 씌워 죽인 사례도 다수입니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전란 후 은거한 것도 연명책의 일환입니다. 조선 왕의 이런 행태는 인조가 정권을 잡은 정묘호란 때까지도 되풀이됐습니다. 병자호란 때는 이전과 달리 의병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죠. 이런 학습효과가 작용한 탓입니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5월4일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한국 문화의 단점 중 하나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례하다는 것입니다. 조선이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유교적인 나라였던 탓이 큽니다. 유교의 최대 단점은 질서를 강조하지만 윗사람이 잘못할 경우엔 별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잘못하면? 물론 가차 없이 처벌합니다.

 

이런 유교의 단점을 보완한 사람이 맹자입니다. 맹자의 역성혁명설은 천명(天命)을 잃은 폭군은 정당한 군주가 아니기 때문에 주살(誅殺)해도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역대 제왕들은 내심 맹자를 못마땅해했습니다. 명태조 주원장 같은 이는 문묘(文廟)에서 맹자의 위패를 철거하라고 명령할 정도로 맹자를 혐오했습니다. 그러나 유교에서 맹자가 차지하는 위상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윗사람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공자가 주류였습니다.

 

우리의 문제점 중 하나가 큰일을 겪어도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반도에서 약소국으로 살아온 불행한 역사가 이렇게 만들었겠지요.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을 겪고도 반성 없이 넘어갔습니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정도가 고작입니다. 패인 분석과 일본 연구가 없었으니 임란 끝난 지 312년 후 일본에 또 당합니다. 이번에는 아예 나라를 빼앗겼으니 더 크게 당한 셈입니다.

 

불행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집단각성이 필요합니다. 투표하러 가기에 앞서 이 정도의 문구는 읽어보고 마음에 새긴 뒤 투표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바로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입니다. ‘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보통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라가 내게 해준 게 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못마땅해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헬조선’ 풍조로 봐서는 능히 그럴 만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이 나온 시기가 명말 청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국민이 아니라 백성이었고 권력자들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살 땝니다. 지금은 4년이나 5년마다 국민들이 투표로 선출직을 갈아치우는 시댑니다. 묻고 싶습니다. 이번에도 최고지도자를 엉망으로 뽑아놓고 남의 탓만 하면서 살아가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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