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vs 친박계’ 당권 경쟁 막 올랐다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8 13:50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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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 의원 집단탈당 “洪 지지”…당권 놓고 親洪 대 親朴 경쟁할 듯

 

5·9 대선 직전 ‘새로운 개혁보수’를 지향했던 바른정당 의원들이 집단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에 책임을 지고 청산돼야 할 보수 정당이 세를 확장해 부활하는 모양새다. 반면 합리적 보수를 주창한 바른정당은 힘겨운 생존경쟁에 직면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의원 10여 명이 5월2일 “친북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는 대동단결해야 한다”며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이들의 한국당행(行)은 명분 없는 ‘정치적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친북 좌파의 집권 저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대선에서 5위를 차지할 경우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세포 조직인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선 가능성이 큰 한국당으로 옮겨갈 경우 조직 기반이 붕괴될 게 뻔하다. 결국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한국당에 복귀한 셈이다. 이들은 대선이 끝나고 추운 동토에서 고생하느니 지역적 기반을 갖춘 한국당에서 자리를 보전하겠다며 수구보수와 야합한 꼴이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바른정당 집단탈당 의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선 막판 보수표 총결집을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 파면으로 대선판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했음에도 불리한 여건을 딛고 보수가 재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5월2일 바른정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집단탈당 의원 지지로 기세 오른 홍준표

 

선거 초반만 해도 홍 후보가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는 득표율 15%조차 얻기 힘들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홍 후보가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거두면서 바른정당과의 보수 적자(嫡子) 경쟁에서 압승했다.

 

당을 대선 참패 위기에서 구한 홍 후보는 대선 직후 한국당을 ‘홍준표당’으로 재편한다는 구상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홍 후보가 선전함에 따라 당은 홍준표를 중심으로 제1야당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세가 오른 홍 후보는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한 야당을 이끌 만한 당내 인물이 없는 데다 대선 과정에서 당내 의원들을 우군으로 만들어 당대표 출마의 길을 터놓은 상태다.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처럼 당권을 차지한다는 시나리오다.

 

이번에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에 입당한 의원들은 홍 후보의 전위부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박(친박근혜)계와 당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홍 후보가 이들의 입당을 관철시켰다는 게 중론이다.

 

‘스트롱맨’을 자처한 홍 후보가 한국당의 당권을 접수하면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한 강경투쟁을 통해 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선 기간에 색깔론과 막말 등으로 보수 표심을 자극했던 홍 후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시 보수층 결집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강한 야당을 내세운 홍 후보가 새 정부의 개혁 작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국정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관계자는 “홍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새 정부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부터 대립각을 세우며 새 정부의 통치기반을 흔들어놓을 것으로 본다”며 “특히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새 정부의 무능을 들춰내 유리한 선거환경을 조성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후보의 당권 접수는 친박계의 반발이 거세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홍 후보에 대한 친박 세력의 견제가 만만찮아서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핵심 의원들은 탈당파들을 선별해 복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벼룩에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철학은 고사하더라도 최소한의 정치도의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그는 홍 후보를 겨냥해선 “위기일수록 원칙과 명분을 지키고, 오로지 국민과의 신뢰를 중히 여겨야 한다”며 “(바른정당 의원들이 복귀해 홍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데 대해) 과정이 생략됐다. 명분도 설득력이 없다. 국민도, 당원들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몰아붙였다.

 

 

洪의 당권 접수, 친박계 반발 직면할 듯

 

한선교 한국당 의원도 “자신들이 보수의 본가라고 억지를 피웠던 사람, 그 절반이 이제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한국당으로 들어오겠다고 한다”면서 “그분들에 대한 일괄 복당이 이뤄지면 저는 14년간 정들었던 한국당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후보는 당권 장악 후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국민의당과도 정치적 연대를 모색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국당 관계자는 “홍 후보는 대선 이후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진 바른정당을 설득해 당 대 당 통합을 한 뒤, 국민의당과는 개헌 연대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이 홍 후보의 의도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대선을 완주한 유승민 후보를 중심으로 바른정당 의원들이 새로운 보수를 위한 대장정에 돌입하기로 한 만큼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유 후보가 “정치는 수(數)이고 세력이기 이전에 가치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새로운 개혁보수를 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 길을 간다면 20명이든 12명이든, 아니면 한 자리 숫자든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말씀드렸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 후보 측은 홍 후보 측과 친박 측의 당권싸움 과정에서 한국당의 내부 갈등이 격화돼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이 과정에서 ‘막장 보수’ 행태를 보였던 홍 후보의 독선적 리더십과 한국당의 반개혁적 행태에 실망한 보수층이 바른정당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도 반성하지 않고 구태를 재연한 한국당이 몰락하고 바른정당이 건전 보수 정당으로 부상할 것이란 얘기다.

 

바른정당을 재조명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집단탈당 이후 유 후보에 대한 후원과 당원 가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이 합리적이고 따뜻한 보수 정당으로 탄생해 한국 보수 정당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길 바라는 열망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꼬마 정당’으로 전락한 바른정당이 일치단결해 한국당의 각종 회유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당을 위협하는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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