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한반도 안보 상황 심각, 정확한 현실 인식 필요”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9 17:15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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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태영 前 국방부 장관 “한·미 동맹 강화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론을 공공연히 주창하는 동시에 동맹국들에 군사비 증액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며 군사력 증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과민반응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한반도 긴장 고조를 악용해 보통국가화, 즉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군사력 강화를 최대 국정 목표로 삼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새 정부에서도 국방·안보·외교 분야가 최우선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나 한반도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봤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2009년 9월~2010년 12월) 제42대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 시사저널 고성준


한반도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한반도의 현재 안보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는데, 완성도 면에서 급속한 진전이 있었다. 김정은 정권은 호전적 자세로 일관하며 국제적 압력에 거칠게 저항하고 있다.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항공모함, 스텔스기, 장거리 유도 무기 등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우방의 군사비 부담을 증가시키기 위해 과거에 체결된 군사·경제 조약을 재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주창하면서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동북아 전쟁 위험이 증가하고 군비 경쟁도 심화될 수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심각한 국론 분열 상황을 맞았다. 사상·체제 대결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외 과제를 풀어갈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제거 또는 약화시키는 동시에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안보 불감증은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희망 없는 미래’와 다르지 않다.

 

 

북핵과 관련해 트럼프 정부는 선제 타격론을 거론하고 있다.

 

로마의 명장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행동 시도에 대해서 ‘절대 반대’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선제 타격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옵션 중 하나다. 우리가 안 된다고만 하면 미국이 빠져나갈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북핵을 확실하게 제거한다는 인식을 국민들도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비겁하게 ‘평화 때문에 안 된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걸프전, 이라크전을 비롯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군사행동 개시에 앞서 적의 보복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북한은 2500만 명이라는 인구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오히려 우리가 완벽한 사전 준비를 미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나 미국과의 ‘핵 공유 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돼야 북한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반도 내 미 전술핵의 재배치는 북한에 대한 상당한 경고가 될 것이며 북한의 핵공격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특히 한·미 동맹 체제를 십분 활용해 ‘핵 공동운영 협정’을 체결하고 전술핵을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통제와 연결한다면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8월7일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의 재건 지원 활동을 위해 바그람 기지에 임시로 주둔하고 있는 오쉬노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자위적 핵무장’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협정’을 파기하고 자체 핵무장을 갖추는 것이 (북핵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나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이나 NPT(핵확산금지조약)와 같은 국제 체제가 존속하는 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의 경제 여건에서 국제적 제재가 예상되는 이 방안은 적절치 않다.

 

 

대북 강경책이 불필요한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으로 내몬다는 견해도 있다.

 

군사력의 약화가 쌍방 간의 상생과 평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논리는 잘못된 생각이다. 과거 전쟁사를 보면 군사력의 균형이 무너지면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의 전쟁에 의한 국가 의지 관철의 욕심이 커지고, 이는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됐다. 현재 남북 간 군사력을 따져보면 재래식 무기에서는 한국이 우위에 있겠지만, 핵이나 미사일 측면에서는 북한이 훨씬 앞서 있다. 핵무장이 불가능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자체 대응할 수 있는 3축 체제(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대량응징 보복 체제)를 완비해야 한다. 먼저 군사력 증강을 통해서 균형을 맞춰야 하고, 동북아 여러 국가와 함께 군비검증 체계를 완비해 군비를 축소해 나가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이 반대해도 사드 배치를 강행해야 하나.

 

중국 지도부 역시 사드가 방어 목적인 것을 알고 있다. 사드가 일종의 방탄조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사드를 반대하는 것은 한국 내 국론 분열 상황에 개입해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의 균열을 달성하려는 목적이다. 일부 경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사드 배치는 흔들림 없이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이스라엘은 북한에 비해 훨씬 미흡한 아랍 국가들의 위협에 대비해 핵탄두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응징 수단으로 갖추고 있다. Arrow-3, Arrow-2, David’s Sling, Iron Dome 등 4~5층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본도 PAC-3 17개 포대로 대비하고 있다. 우리의 대비 태세는 이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미흡하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자주국방력’과 ‘군사동맹과 같은 국제적 군사협력’은 서로 상치되는 요소가 아니고 보완하는 관계다. 이를 오해해 전작권을 환수해야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게 됐다. 참여정부는 그 시기를 2012년 4월로 결정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 12월로, 박근혜 정부에서 ‘조건부 전환’으로 조정됐다. 결국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해 불필요한 논쟁으로 한·미 동맹 관계만 훼손하게 됐다.

 

 

트럼프 정부가 사드 배치 비용을 비롯해 한·미 방위비 분담금도 증액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국가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흥정인지 알 수가 없다. 원래 부동산업자 아니었나. 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자기가 해 오던 일이다. 그 수법을 한·미 동맹에도 쓰는 것이다. 사드 비용 문제도 갑자기 왜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해 국방비를 더 쓰라고 요구할 것으로 본다. 내년부터 한·미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협상 준비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 트럼프가 지금보다 좀 더 진중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자면, 미국과의 관계가 섭섭하다 하더라도 참고 가야 한다. 튕겨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2010년 10월8일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미국 워싱턴DC의 국방부 청사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제42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마친 후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PA 연합


중국의 영향력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도 중요해졌다.

 

중국은 과거 중화사상의 틀 속에서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판단해 북·중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해 서태평양 지역으로의 패권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군사력은 미국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미국이 세계 군사력의 반을 차지한다. 2~10등을 합쳐도 미국을 못 따라간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발전·심화시켜 나가면서 중국에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통상 압력,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의 과거사 도발 등 주변 강대국들의 공세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새 정부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 조언을 한다면.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력,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 동맹 강화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과거사는 망각하지 않되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 한·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실질적 운용 및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등 한·일 군사협력도 진행해야 한다. 러시아, 인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호주 등과의 관계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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