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라! 미세먼지야 내겐 돼지고기가 있다”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2 09:00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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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시사미식] 미세먼지에 돼지고기, 직접적 관계 없어도 미신처럼 믿고 따른다

# 07:28

 

“오늘 미세먼지 농도는, 중서부지역은 국내·외 미세먼지와 대기 정체로 농도가 다소 높겠으나, 그 밖의 권역은 대기 확산이 원활해 대체로 ‘보통’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세종·충남·전북은 오전에 ‘나쁨’ 수준의 미세먼지 농도가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보~ 마스크 어디다 뒀어요?” 현관문을 열기 전 이미 마스크를 착용한다. 이런 습관이 생긴 건 이태 전부터다. 미세먼지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너나없이 마스크를 사들이던 그 즈음 필자도 행렬에 끼어들었다. ‘땡’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들 몇몇도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다. 출입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동차들은 이미 먼지로 코팅된 상태다. 짓궂은 어린 친구가 장난을 한 모양이다. 트렁크 위에 손글씨가 쓰여 있다. ‘세차해 주세요.’

© 시사저널 포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며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예상했던 대로 뿌옇다. 조건반사는 무섭다. 괜스레 눈이 뻑뻑해진다. 찰나를 못 참고 손등으로 비비고 말았다. 아뿔싸! 각막에 이물감이 느껴지면 안약이나 식염수로 닦아야 한다는 걸 또 잊고 말았다. 갑자기 콧속도 간지럽고 목도 컬컬하다. 기분 탓이려니 하며 애써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뉴스의 대부분은 선거와 미세먼지다. 먼지의 ‘먼’자만 들어도 속이 메스껍다. 그래, 결심했어! 오늘 점심은 돼지고기다.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대기를 뒤덮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점심과 저녁을 돼지고기 관련 메뉴로 결정한다. 김치찌개·감자탕·보쌈·삼겹살·두루치기·제육볶음·돈가스·돼지갈비·부타동(일본식 돼지고기 덮밥)·고추장주물럭·돼지국밥·폭립·오향장육·동파육 등등. 이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탕수육이라도 먹어야 목구멍이 제 컨디션을 찾는다. 귀가 얇은 탓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돼지고기와 내 몸뚱어리의 궁합이 잘 맞으니 미신처럼 믿고 따른다. 오전 회의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점심 메뉴 생각뿐이다. 도대체 오늘은 뭘 먹지?

 

 

돼지고기, 폐 건강 지키는 데 한몫 단단히 해

 

점심시간답게 빌딩 숲에서 샐러리맨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이쿠. 자칫 나무늘보처럼 굴었다가는 양(위)을 채우기 어렵겠군. 경보선수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내달린다. 그래,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가 좋겠어. 그 넓은 홀에 남은 자리는 달랑 하나. 이럴 땐 참 난감하다. 합석을 강권하는 집도 아니니 눈치 없이 혼자 들어선 필자가 주인장은 얼마나 미웠을까. 검지와 중지를 빳빳하게 세워 일행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리곤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냅다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프로페셔널은 다르다. 자리에 앉은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찌개와 찬이 깔린다. 껄껄껄. 그렇지. 김치찌개에는 계란이지. 그것도 말이면 금상첨화지. 오늘따라 어묵볶음의 때깔이 기가 막힌다. 반드르르한 게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반사해 낸다. 역시 콩나물에는 깨가 좀 들어가야 먹음직스럽다. 흠잡을 데가 없다. 그새를 못 참고 뚜껑이 들썩거린다. 이제 딱 2분 뒤면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시큼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필자의 몸 안으로 침투한 향은 양 갈래 길을 택했다. 하나는 뇌, 나머지는 내장. 정신이 혼미해진다. 창자가 배배 꼬이며 비명을 지른다. ‘꼬르륵’ 120초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젓가락으로는 라면을 풀고 국자로는 바닥을 확인한다. 회색으로 변신한 고기가 필자를 반긴다.

 

2인분 시키길 잘했어. 암, 그렇고 말고! 서너 번 휘휘 젓고는 국물을 공략한다. 맹렬한 열기가 무섭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입술 근처에서 잠시 잠깐 대기시간을 갖지만 엄연히 탐색전이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뜨끈한 김을 호호 불어 누그러뜨린다. 쿰쿰하면서도 진득한 국물이 속을 찌르르하게 만든다. 아, 이리 시원할 줄 알았다면 어제 소주라도 한잔 해 놓을걸. 귀찮게 들러붙는 김치를 살살 달래 떨어뜨리며 국자로 고기를 떠올린다. 김치찌개의 고기를 젓가락으로 먹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숟가락을 조심스레 밀어 넣어 고기 두 점과 김치 한 조각을 뜬다. 혀 위에서 두어 번 구른 녀석을 어금니로 옮겨서 은근히 깨문다. 이가 고깃살을 파고 들어가는 정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 이 기분 좋은 폭신함 같으니라고. 이 식감과 풍미는 지구상에 딱 한 곳, 한국의 김치찌개집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뭉툭하게 잘라진 고기가 고소하다면, 그 옆에 척하니 붙어 있는 비계는 ‘고소하다’라는 수식어로는 3% 부족하다. 아주 ‘꼬소하다’. 단백질은 지방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음식으로 승화한다. 여기에 나트륨까지 더해진다면… 인간이라면 끊을 수 없는 중독을 만들고 만다. 여간해선 자제하거나 거절, 혹은 외면할 능력을 인간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고깃덩이가 식도를 타고 내리며 껄끄러운 녀석들을 싹 씻어준다. 분명 그렇게 느껴진다.

 

먼지와 돼지고기는 꽤 오랜 시간 붙어 다녔다. 대기오염이라는 단어가 매일 저녁 뉴스를 도배하기 전에도 광부·건설노동자·환경미화원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이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리 믿고 살았다. 돼지고기가 먼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도와 식도는 길이 다르니 음식물이 기도의 이물질을 청소해 준다는 건 낭설이다.’

 

필자 생각은 다르다. 병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그러니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방어능력이 중요하다. 분명 돼지고기는 방어하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먼지는 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덕에 미세먼지가 한바탕 회자되고 난 뒤 고등어를 굽는 데도 미세먼지가 엄청나다고 난리를 쳐댔다. 이렇게 중요한 폐의 건강을 지키는 데도 돼지고기는 분명 한몫을 단단히 한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직접적 관계가 없을 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체에는 뛰어난 구원투수임에 틀림없다.

 

아차, 라면이 불겠군. 후루룩 후루룩. 눈 깜짝할 사이에 면을 해치우고 대접을 부탁해 밥을 털어 넣은 후 남은 고기와 김치, 국물까지 부어 썩썩 비빈다. 대접에 부딪히는 스테인리스 숟가락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순간이다. 벨트를 한 칸 뒤로 밀고 또 고민에 빠진다. 저녁은 삼겹살로 할까, 보쌈으로 할까? “덤벼라! 미세먼지야. 내게는 아직 12가지의 돼지고기 메뉴가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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