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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시론] “골목이 뭐예요?”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4(Sun) 17:00:00 | 14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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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후 세대에겐 이런저런 골목의 추억이 있을 것 같다. 학교 끝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툇마루에 던져놓고 골목을 향해 뛰어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에는 한동네 사는 친구들에, 언니·오빠·누나·동생들이 한데 모여 온갖 놀이를 즐기곤 했다. 술래잡기부터 시작해서 고무줄놀이에 공기에 땅따먹기에 오자미에 줄넘기까지 놀이 종류는 차고도 넘쳤다.

 

나는 키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무줄을 곧잘 했다. 여자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언니 둘을 대장으로 뽑고 가위바위보로 편을 짜곤 했는데, 나는 출중한 실력(?) 탓에 첫 번째로 선택되는 행운을 누리곤 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펄럭이며 깡충깡충 고무줄을 넘기도 했고, 양손을 땅에 짚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포즈로 다리를 높이 들어 고무줄을 넘는 ‘사까닥질’(아마도 일본말이었을 텐데 뜻도 모른 채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다)도 무리 없이 해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 tvN 제공


골목은 학교에선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거리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언니·오빠·누나·동생들이 싸우지 않고 신나게 놀려면, 동생들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야 했고 언니·오빠들은 솔선수범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규칙은 예외 없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을 골목에서 배웠고, 때론 이보(二步) 전진을 위해 일보(一步) 후퇴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임도 깨달았다. 양보가 미덕이란 의미도 친구들과 놀면서 온몸으로 알게 됐고, 최선이 통하지 않으면 차선을 선택할 줄 아는 유연함도 깨우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놀다 보면, “얘들아 저녁 먹을 시간이다” 엄마들 부르는 소리에 내일을 기약하며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던 기억도 난다. 그땐 밥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른 채 놀이에 흠뻑 빠져 지냈었는데….

 

2주 전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의 최근작 《나를 빌려드립니다》를 읽고 토론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책의 핵심 주제인즉, 과거엔 마을 공동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삶의 과제들이 이제는 빠르게 아웃소싱되면서, 연애 코치도 생겨나고 웨딩 플래너, 파티 플래너를 거쳐 심지어 대리모(母)에다 장례 대행사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상품으로 구입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비되는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보던 중 우리에겐 골목의 추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자, 한 학생이 “선생님! 골목이 뭐예요?” 묻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세대 차이’의 실체가 선명하게 다가오면서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골목 자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게 골목이 무언지 어찌 설명할 수 있으리오. 골목이란 단순한 공간의 의미를 넘어 언니·오빠·누나·동생들이 함께 어울려 추억을 쌓았던 기억의 보고(寶庫)라 이야기해 준들, 그 풍성한 의미가 전달될 리 만무할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어린이날에 새삼 잃어버린 골목을 떠올리는 건 이유가 있다. 1년 365일이 어린이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어린이날을 폐지해도 좋을 것이란 농담에 선뜻 웃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권을 맴도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골목’의 시끌벅적함과 순수한 재미를 다시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 온다. 물론 안심하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까지 어른들의 사려 깊은 선물로 얹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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