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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 살인사건’ 이미지 갇힌 화성시의 트라우마 극복기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12) 경기 화성시] 비극적 현대사 아로새긴 매향리 아픔 치유될까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2(Fri) 17: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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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라고 하면, 미해결로 남은 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을테다. 이 사건을 소재로 했던 영화 ‘살인의 추억’은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영화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었던 화성시는 살인의 ‘추억’이 서린 도시로 낙인이 찍힌 셈이 되고 말았다.

 

그 내용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상관없이, ‘미제사건’이란 매력적인 문화콘텐츠가 되는 듯하다. 작년에는 한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가 다시 한 번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기억을 들추어냈다.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었고, 직접적으로 지명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화성시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도시로 또 다시 상기되었다.

 

사실 화성시의 비극은 더 일찍부터 시작됐었다. 1951년, 한국전쟁 중의 일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화성시에는 크고 작은 섬이 많은데, 그 중 우정읍 매향리 앞 바다에 ‘농섬’이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다 대고 미군들이 포격 연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그 주변에 미군부대가 주둔하였고, 1955년에는 공식적인 사격장이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약 반 세기동안 매향리 주민들에게 아픈 상처와 피해를 주게 되는 이곳은 ‘쿠니 사격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앞 해안에서 약 1.5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농섬. 한국전쟁 때부터 미군들의 포격연습 표적으로 삼으면서 이 일대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 김지나 제공


 

헐값에 넘어간 화성시 비극의 역사 

 

사격장이 생기고 나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화성시 주민들 삶의 터전이었던 땅은 미군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경제적인 피해는 물론, 오폭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일상에 대한 위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투기가 굉음을 울리며 머리 위를 날아가고 언제 어디서 불발탄이 터질지 모르는 생활이 일상이라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수십 년에 걸쳐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진 끝에 2005년에서야 비로소 사격장이 완전히 폐쇄되었다. 화성시가 떠맡아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그에 대한 관심과 보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얼마 전 찾은 화성시 매향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진 초지가 평화롭게만 보였다. 매일 같이 폭격의 위협과 전투기 소음이 주민들의 일상을 괴롭히던 시절은 꿈인 것만 같다.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옛 쿠니 사격장 건물만이 이곳에 얽힌 아픈 기억을 간간이 떠올리게 했다. 

 

매향리 평화공원과 화성드림파크가 건립되는 옛 쿠니사격장 부지 전경. ⓒ 김지나 제공


비극의 기억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의 추모일까. 그보다 화성시는 적극적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 일대에는 작년 6월부터 유소년 야구장인 ‘화성드림파크’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그 옆으로는 ‘매향리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의 터전을 빼앗겼던 매향리 마을이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 미군과의 지긋지긋한 싸움터로서 계속 기억되는 것보다, 그 상처를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덮어 치유하고자 하는 화성시의 의지가 엿보였다. 

 

이로써 매향리에 서려 있는 설움과 공포의 기억들은 점차 어린 야구선수들의 꿈, 가족 나들이객들의 행복한 추억,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새로운 희망들로 치환될 수 있을테다. 이것은 매향리의 과거를 말끔히 없애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간을 들여 매향리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치유하면서, 이 장소가 더 성숙하고 다채로운 장소로 거듭나게 하는 처방이다. 결과적으로 화성시 전체 도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매력포인트가 되리란 희망도 품어볼 수 있다.

 

매향리의 기구한 사연과, 이 때문에 어딘가 처연함이 느껴지는 이곳의 풍경은 예술가나 건축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선사하는 모양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로 꼽히는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는, 작년 5월 매향리 평화공원 부지를 방문하고는 공원 내 건축물을 설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경기도의 대표 공업도시로 꼽히는 화성시에 새로운 도시 아이덴티티가 한 꺼풀 덧입혀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어도 좋을 것 같다.

 

2016년 6월 착공된 유소년 야구장 '화성드림파크'. 다음달 개장을 앞두고 있다. ⓒ 김지나 제공


 

화성드림파크·매향리 평화공원 조성으로 적극적 이미지 변신

 

하지만 요즘 화성시는 ‘수원 군공항’의 이전 소식에 뒤숭숭한 분위기다. 매향리 사격장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끔찍한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국방부는 화성시와 제대로 협의조차 하지 않은 듯 했다. 서울 남부에서는 한 시간 가량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과 가까운 화성시이지만, 어쩐지 천덕꾸러기 신세다. 삭막한 공업도시, 불명예스러운 사건들의 무대라는 도시이미지가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일까.

 

화성시가 풀어야 하는 ‘미제사건’은 비단 연쇄살인사건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화성시 사람들의 건강한 일상을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한다. 화성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어둡고 삭막한 도시이미지부터 벗어던지자. 그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매향리에 있다. 때문에 옛 미군 사격장부지의 활용문제는 단지 매향리 주민들만의 고민이 아닌 것이다. 화성시가 멋지게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길 바란다.​ 

 

매향리 평화공원의 조감도 ⓒ 출처 :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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