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문재인 정부, 북핵 동결만 시켜도 큰 성과”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5 11:13
  • 호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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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통일부 장관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준비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 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한 분야별 당면 과제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의 대한민국 현대사는 반목과 분열로 얼룩져왔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게 된 한반도의 이념·지리적 상황은 이념과 지역, 세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런 갈등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났다. 한국 사회는 둘로 셋으로 쪼개졌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이후에는 빈부 격차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늘어만 갔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70년 동안 11명이 대통령직에 올랐다. 모두 “국민통합”을 외쳤다. 그럼에도 누구도 실패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대통령 개인의 역량 탓도 있을 수 있지만, 분열된 사회 속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성공적으로 ‘직(職)’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혹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두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봤고, 혹자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힘을 봤다고 말한다. 이런 갈림길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압도적인 차이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그가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준비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기대가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를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했다. 이를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참여정부는 ‘공’만큼 ‘과’도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남겨놓은 부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참여정부의 ‘과’를 반면교사 삼는 그는 어느 후보보다 준비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들이 상상하는 가장 좋은 그림일 뿐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당장 그의 앞에 놓인 과제들이 적지 않다.

 

일단 청년실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민생고 해결이 시급하다. 여기에 정치·사법·경제 각 분야의 적폐를 이번에도 척결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지난 과거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기에 핵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경직돼 있는 남북문제도 풀어야 한다. 자국 우선주의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도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모든 사안의 해법을 놓고 갈라져 있는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는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숙제다. 과연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기로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첫발을 내디딘 문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취임 직후다. 그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어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많은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도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시사저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길 바라며, 대통령이 특히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야별로 짚어봤다.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사저널 임준선

‘달빛정책(Moonshine policy)’.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세계 주요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이같이 명명했다. 문 대통령의 성(Moon)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결합된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다수 인터뷰와 공약 등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햇볕정책의 계승자임을 공표하며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꽉 막혀 있던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강조해 왔다. 지난 1월 발간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문 대통령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북한과의 협력관계 유지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오늘날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단단히 꼬인 실타래 같다. 탄핵 정국으로 사상 최악의 상태로 치달아 있던 이들과의 정상 외교는 새 정부 탄생과 함께 서서히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6월로 추진 중인 트럼프와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부터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은 당장 어려움에 부딪힐 거란 전망이 높다. 새 정부에 대한 허니문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달빛정책’은 혹독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산적한 통일·외교 과제와 관련,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역임하며 햇볕정책을 주도했던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5월12일 만났다.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을 오가며 베이징(北京)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는 “그전까지 문 대통령과 통일·외교·안보에 대해 전반적으로 한 번씩 의견을 나누곤 했는데 그때도 문 대통령이 상당히 많은 준비가 돼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이 전 장관이 그리는 대북 관계 청사진과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북 정책과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았다. 이 전 장관은 “대선 과정에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스탠스가 조금씩 변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줄기는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최근 새 정부 내각 인선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선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것도 아닌데 내각 인사로 이름이 거론되는 건 사실상 ‘가짜뉴스’에 가깝다”며 웃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사저널 임준선

문 대통령은 자신을 ‘햇볕정책 계승자’라고 칭하며 이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용어였고,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 노무현 정부 ‘평화번영정책’이었다. 이를 일괄해 학문적으로는 ‘포용정책’이라 하는데 10년간 유지됐던 이 기조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철저히 거부돼 왔다. 그동안 우리 통일·외교·안보 환경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10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햇볕정책의 기본 정신을 지켜나가되 복잡한 정세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외교 환경 10년 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화가 우선이다. 대화 자체를 불온시하는 태도가 이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0년 남북 대화를 결정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아웅산 테러가 있었음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대화하지 않고는 대결 구도를 돌파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북한을 찍어 누르는 적대 관계로는 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이미 지난 9년 동안 충분히 증명됐다.

 

 

문 대통령 임기 5년이 부족하지 않을까.

 

북핵 문제가 진행된 게 벌써 25년이 넘었다. 해결하는 데 일제 치하 36년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는 문제다. 새 정부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물꼬를 막고 북한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만 해도 성공이라고 본다. 물론 대북 관계에 있어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같은 야심 찬 구상을 하고 있을 순 있겠지만 그건 더 길게 봐야 할 미래 일이다. 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차기 정부에 그런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이번 정부의 우선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 핵 동결만 확실히 이뤄도 큰 성과 아닌가.

 

 

무엇보다 남북 간 신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휴전선상에서 더 이상의 충돌은 없다’는 정도의 합의와 그 정도 신뢰를 형성하는 게 물론 우선돼야 한다. 국민들이 최소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의 위험성을 안고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북핵이나 사드 문제를 다룰 때 ‘이건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우리가 당사자다’라는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2월10일 청와대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반도 문제 우리가 당사자’ 인식해야”

 

사드 배치 때문에 균형외교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로 시작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균형외교를 시도하지 않았다. 균형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율’이다. 양자택일을 요구받을 일이 없도록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미국·중국이 지금처럼 앞다퉈 우리에게 ‘누구 편이야’라고 묻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부터라도 사드나 북핵 문제에서 모두 선택을 요구받는 게 아닌 주체적으로 조율점을 찾아가는 위치가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경제 협력도 강조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수년간 북핵 문제를 풀지 못했다면 이제 이 문제를 단순히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만 해결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금 마치 군사주의 노선을 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를 주변국과의 협력에 의한 경제적 번영을 통해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꿔준다면 북한의 태도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재개될 수 있을까.

 

남북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장치로 개성공단의 존재는 너무나 중요하므로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개성공단 임금의 상당부분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 지도부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하며 문제 삼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통일부에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요구했지만 아직 어떠한 답변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가 지원한 돈과 쌀로 북핵이 개발된다는 주장은 오랜 논쟁거리 아닌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 내가 통일부 장관으로 있던 2006~07년 중 북핵 실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전인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가 있었다. 그 합의 내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시점에 미국 부시 정부에서 ‘북한이 미국 마카오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해 달러를 위조하고 있다’며 북한을 강력히 제재하고 나섰다. 그 당시 우리가 미국 정부에 ‘당장 북핵 포기가 중요하니 BDA 문제는 그다음에 해결하자’했지만 미국이 물러나지 않았다. 이후 이 제재에 맞서기 위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쏘고 핵실험까지 한 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9·19 공동성명 때문에 핵실험이 이뤄진 걸로 오해하고 있다. 이후 미국도 몇 개월 지나 대북 정책을 협상과 대화 체제로 180도 바꿨다. 이렇게 정책을 뒤바꾼 것만 봐도 당시 미국의 대북 태도가 잘못됐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나.

 

 

문 대통령의 대북 계획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라 부르며 ‘제재’에 방점을 두지만 사실 결의안 속엔 북한 민생과 인권에 있어 영향을 받지 않게 한다거나, 6자회담 등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포함돼 있다. 지금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꺼내들며 제재만 주장하는 건 우리 식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거다. 결의안에서도 ‘대화’가 기본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제재 강도만 높여가면 결국 전쟁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 보수 진영의 반대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참여정부 때도 대북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 국내에서 하나 된 목소리를 갖고 미국 등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해도 그게 이뤄질까 말까인데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리니 바깥에 나가서도 면이 안 서는 거다. 현존하는 정부 정책이 꼭 맘에 들지 않더라도 국익을 위한다면 일단 믿고 맡겨보자는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정부의 인내도 분명 필요하다.

 

 

새 정부에 당부 한마디 해 준다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내가 통일·외교·안보 관련 일을 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우리가 중심을 잡고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는 거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냐 하지만, 우리의 운명과 삶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모든 국력을 짜내서라도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남북이 일단 대립 관계에 머물러 있으면 국제사회 어느 나라도 남북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남북 간 협력 관계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6자회담이 부활하는 게 우선인가.

 

그렇다. 대화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일단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이전 9년 정권처럼 강한 제재만 계속 강조하면서 제재 강도만 높여간다면 결국 남는 건 전쟁밖에 없다. 우리가 전쟁하지 말자고 지금껏 힘들게 나라 지켜온 것 아닌가. 새 정부는 대화 협력을 강조하는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를 두고 ‘햇볕정책 2.0’이라고 할지 ‘평화번영정책 2.0’이라고 할지 ‘달빛정책’이라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이름이 붙든 새 정부가 변화된 상황에 잘 적응해 과거 대북 포용 정책의 진화된 형태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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