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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취임 직후 꿈틀대는 노동계 勞(노)·政(정) 관계 이번에는 다를까

진보 진영, 참여정부 1년 차 때 노·정 갈등으로 국정동력 상실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2(Mon) 10:10:22 |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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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사흘 전 거행된 5·18 기념식 행사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취임 3개월 정도 됐던 노 대통령은 이 시기,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역시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 문제로 반발하던 때였다. 초청된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

화물연대 등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발언은 앞뒤 맥락은 다 잘려나간 채 ‘막말’ 논란으로 번졌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노동계가 반발했고, 진보 진영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보수 진영은 노 대통령을 막말 프레임에 가두고 진보 진영의 분열을 느긋하게 즐기는 분위기였다. 참여정부는 이 발언 하나로 집권 1년 차 국정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따지고 보면 노동계와의 관계설정이 실패한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진보 정권이 9년 만에 들어선 현재 노동계가 다시금 꿈틀대고 있다. 보수 정권 9년 동안 정권의 탄압 등으로 힘이 빠져 있던 노동계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노동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사흘째 되던 5월12일 민주노총은 정부에 노·정(勞政) 교섭을 제안했다. “참여정부 때와 같아서는 안 된다”며 대화를 통해 노동정책의 방향을 함께 잡아보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다음 날 노동계를 불편하게 만든 인사 소식이 전해졌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에 박형철 변호사를 임명한 것. 박 비서관은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갑을오토텍 사측 변호를 맡았었다. 갑을오토텍은 노사갈등이 극에 달했던 사업장으로, 사측의 노조파괴 논란까지 일기도 했던 곳이다. 민주노총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악질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인 갑을오토텍의 사측 대리인 변호사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오고 있는 인물”이라고 박 비서관을 겨냥했다. 친(親)노동계 언론들 역시 사설을 통해 청와대의 인사를 비판했다.

 

민주노총의 반발은 정권 초 노동계와 대립하다 국정동력을 상실했던 참여정부 때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참여정부 때는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여론이 급속도로 돌아선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른바 ‘문빠’로까지 불리는 지지자들이 직접 여론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박 비서관의 임명을 비판한 내용을 다룬 기사를 보면 “국민이 정부를 지켜주겠다” “이번엔 참여정부 때와 다를 것”이라며 민주노총을 비난한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민주노총 역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반박했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시사저널 기자와 만나 “우리는 정부 정책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들러리가 아니라 정책 당사자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부와 대화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러한 여론은 과거 노동계가 과도하게 발목을 잡은 탓에 임기 초부터 국정 운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렸던 참여정부의 데자뷔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 10월6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소속 노동자들이 ‘노무현 정권 규탄 총파업’ 현장에서 노 대통령 사진을 태우는 화형식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동계 요구사안 산적해 있어

 

박 비서관을 둘러싼 인사문제처럼 문재인 정권 출범 첫해, 정부와 노동계가 대립할 만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취임 첫날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지시한 것도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화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사회 다수 구성원들의 바람이지만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 비정규직이 고스란히 정규직이 됐을 때 기존 정규직과의 처우 문제를 비롯해 합의가 필요한 여러 사안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가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예상되는 수순이다. 정부와 노동계 간 마찰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1년 차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여기서 시작된다.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03년으로 돌아가면 정부와 노동계는 그야말로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와 같았다. 서로에 대해 이해할 마음도, 이해할 여유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첫해에만 결국 2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시위 도중 구속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민주노총은 “선무당이 사람 잡고 있다”며 대통령을 노동운동을 어설프게 아는 ‘선무당’으로 몰아갔다. 노 대통령 역시 “민주노총이 대책 없이 강경투쟁만 한다”며 이들의 정체성을 공격했다. 5년 내내 끝없는 감정싸움이 이어진 참여정부의 노·정 관계는 지난 9년간 지속된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못지않게 ‘실패’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말았다.

 

노·정 관계가 틀어진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참여정부 초대 노동비서관 출신인 박태주 교수는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당시 먼저 노동계를 등졌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대통령의 온갖 노력에도 무대포로 일관해 관계를 단절시켰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참여정부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등 오히려 우리보다 보수 세력과 입장이 맞았던 정책을 많이 추진했다”며 “우리가 정부에 맞선 건 맞지만 ‘무엇’에 ‘왜’ 맞섰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정 관계 파탄에 대한 시각이 여전히 평행선인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집권 초반 노·정 관계가 어떻게 정립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 성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지점은 민주노총도, 이들을 비판하는 정치권도 하나같이 정부와 노동계 간의 관계에 있어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쪽 모두 참여정부 때 초반부터 틀어진 노·정 관계로 인해 제대로 된 노동 개혁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는 분석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산적한 문제들을 감안하면 양측의 공감대가 실제 합의로 도출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기대 큰 만큼 갈등 불가피”

 

당장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는 임기 100일 내 해고 공무원 복직·성과연봉제 등 10가지 요구사항을 해결해 달라며 5월15일부터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박중배 전공노 사무처장은 “이제 막 정권이 들어섰는데 왜 그리 서두르냐는 항의 전화도 많이 받는다”면서 “우리가 그동안 오죽 답답했으면 이러는지 생각해 줬음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에 노·정 교섭을 제안했던 민주노총은 6월 둘째 주부터 다양한 노동조합이 참가하는 사회적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새 정부 발목 잡기라는 비판에 대해 민주노총 측은 지난해 촛불정국이 시작됐을 때부터 6월에 열기로 계획해 뒀던 일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문 대통령의 친노동 행보에 일단 기대를 표하면서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인천공항공사 행보에 반가움을 드러내면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향에 대해선 “‘차별’이 살아 있는 ‘불완전한 전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은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정확히는 자회사를 통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며, 전환 후 연봉도 오히려 크게 깎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5월16일 공식적으로 설치된 일자리위원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발도 30명 구성원 중 절반인 15명이 정부 인사인 반면, 노동계 인사는 3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사전에 협의 없이 결정됐다는 게 민주노총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일자리위원회 관계자는 “정부 인사들을 비중 있게 둬야 그곳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실제로 추진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정부와 노동계의 이 같은 미묘한 입장차로 인해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태주 고려대 교수는 “기대와 현실 사이 괴리가 곧 갈등으로 나타난다”며 “그렇게 되면 이번 정부도 ‘그럴 줄 알았다’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마땅한 요구는 하되 현실적 측면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우리도 ‘한꺼번에 다 해결해 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그저 우리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여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노동계 모두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계가 지난 9년간 보수 정권 내에서 위축돼 있던 만큼 새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이 많다는 점과 열성 지지자들이 노 전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문 대통령을 지키려 한다는 점, 이 두 가지 변수는 향후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설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요구 들어 달라는 것 아니다” 

-단병호 前 민주노총 위원장

 

© 시사저널 박정훈


참여정부와 노동계 관계 어떻게 기억하나.

 

당선자 자격일 때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노동계 기대가 컸다. 그 신뢰는 몇 달 지나지 않아 철저히 깨졌다. 2003년 일련의 갈등을 겪으며 대통령은 노동계와 완전히 선을 그어버렸다. ‘요구만 할 줄 알고 도와주지는 않는다’는 시각으로 노동계를 본 것 같다. 그러니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당시 노동계도 “대통령이 당선되더니 ‘친(親)자본’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했다.

 

 

대통령도 노동계에 서운한 감을 드러내지 않았나.

 

들리는 얘기론 “민주노총이 나를 배신했다”며 섭섭해했다고 하더라. 적대적 관계는 5년간 이어졌다. 2006년 국회에서 비정규직법이 통과될 때도 노동계 요구를 좀 더 수용해 법제화할 여건이 충분했지만 정부는 거부했다. 그때 그 요구가 법에 제대로 반영됐더라면 지금 고용 환경이 훨씬 나아졌을 거라 생각한다.

 

 

새 정부를 향한 민주노총 요구가 성급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민주노총도 하루아침에 모든 요구를 해결해 달라고 떼쓰는 게 아니다. 터놓고 대화를 해 보자는 거다. 노동 의제가 한 번에 쏟아지는 게 새 정부로서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만큼 정부에 기대가 있다는 거 아니겠나.

 

 

현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초반 1년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 일단 무언가 바꿔보려는 의지는 보이는 것 같다. 변호사 시절부터 봤던 문 대통령은 자기 책임은 반드시 지는 스타일이다. 노동계가 역대 정부에 가졌던 오랜 불신을 새 정부가 부디 깨주길 바란다. 


“인내하는 노동이 필요한 시점”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前 참여정부 노동비서관)

 

© 시사저널 구민주


민주노총은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이 노동계와 먼저 선을 그었다고 주장한다.

 

당선자 시절 민주노총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 들어서는데 대통령에 대한 환영은커녕 피켓시위만 가득했다. 회담장에 입장할 때도 일어서 반기는 이가 없었다. 대화 내용도 정책 논의가 아니라 전부 민원 제기뿐이었다. 한 시간가량 대화를 마친 후 그 누구 하나 대통령과 악수하지 않고 다 나가버렸다. 과거 한 장면일 뿐이지만 이것만 봐도 민주노총이 “대통령이 먼저 소통을 거부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민주노총이 일방적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선 안 된다.

 

 

관계가 틀어진 계기 중 하나로 철도노조 파업을 꼽고 있는데.

 

파업 얘기가 나오던 2003년 4월 대통령은 직접 이해당사자들을 불러 회의를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도출했고 갈등 해결에 6개월가량 걸릴 것 같다고 노조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노조가 다시 파업을 했다. 당시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대통령도 최선을 다했는데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거다. 

 

 

관계를 돌이킬 기회는 없었나.

 

2005년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대화 복귀를 결정지으려 했지만 소수파의 극심한 반발로 폭력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그 후 노·정 관계는 더 엉망이 됐다.

 

 

과거 민주노총 출신으로서 현재 민주노총에 아쉬운 점이 있나.

 

민주노총의 가장 큰 권력 자원은 시민들의 공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부족하다. 그들은 자신만의 렌즈로 사회를 보고 있다. 또한 새 정부에 허니문 기간을 줄 필요가 있다. 이제 일을 해 보겠다는데 벌써 재 뿌릴 이유가 없지 않나. 재 뿌리려다 되레 재를 뒤집어쓸 수 있다. ‘인내하는 노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 첫걸음을 어떻게 보았나.

 

아직은 낙관도 비관도 할 것 없다. 다만 내가 아는 문 대통령은 과거 노 전 대통령처럼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아마 문 대통령이 먼저 노동계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일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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