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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시계’ 앞에 선 트럼프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 돌입한 미국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5(Thu) 17:00:00 |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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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5월17일(현지 시각)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공화당 소속 한 상원의원은 CNN방송 기자를 비롯한 일부 기자들 앞에서 갑자기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그는 나무에 바짝 달라붙은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우리 의원들 상황이 전부 이렇다”고 탄식을 쏟아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기간 자신의 선거캠프와 러시아 간의 내통 의혹에 관한 조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 것이 불에 기름을 부은 상황이 됐다. 이에 더해 이번에는 직접 코미 전 국장에게 수사 중단 압력을 가했다는 이른바 ‘코미 메모’가 보도되자, 워싱턴 정가(政街)는 벌집을 건드린 듯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사당에 나타나는 의원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불문하고 “미쳤다(crazy)”라는 자조 섞인 말만 내뱉고 있다. 한 의원은 현재 상황을 두고 “날마다 트럼프발 폭탄이 터진다”고 표현했다. 취임한 지 4개월도 안 돼 벌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계’가 움직이고 있는 워싱턴 정치권의 상황은 예측 불허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에게 러시아 스캔들 관련 수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는 코미의 메모가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 AP 연합


 

“코미 해임은 트럼프의 자살골”

 

트럼프 대통령이 5월9일 코미 FBI 국장을 전격 해임했을 때부터 “탄핵을 자초한 자살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상황 악화를 자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후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14일 당시 코미 국장과의 회동에서 러시아 관련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이른바 ‘코미 메모’ 내용을 보도했다. 코미 전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를 기록해 두기 위해 그와의 회동 내용을 일일이 메모로 남겼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즉각 부인하고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 내용이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더욱 궁지로 몰리고 있다. 그동안 조기 탄핵론의 역풍을 우려해 공식적으로 탄핵을 거론하지 않았던 민주당은 명백한 ‘사법방해’ 행위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트럼프가 소속된 공화당 의원들도 점점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은 당사자인 코미 전 국장을 의회에 불러서 ‘사실(fact)’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점점 더 불리한 국면으로 사태가 전개될 것을 직감하는 분위기다. 공화당 중진인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이 이번 사태에 대해 “워터게이트급 규모에 도달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급기야 미국 법무부는 5월17일 전임 FBI 국장인 로버트 뮬러를 특별검사에 전격적으로 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특검은 필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으나,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탄핵론’이 제기되는 등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특검을 수용했다. 트럼프는 특검이 임명된 후 “이 문제가 신속하게 결론이 나길 기대한다”면서 “어떤 외국 기관과도 내통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특검이 최종 확정됨에 따라 더욱 궁지에 몰릴 개연성이 커졌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반역, 뇌물, 기타 중대 범죄 및 비행’으로 기소되면 탄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위에 ‘사법방해죄’가 적용되면, 이는 탄핵 요건으로 규정된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에 해당한다며 조기 탄핵 가능성마저 언급한다. 미 의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과반수, 상원에서 3분의 2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현재 공화당이 미 의회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탄핵은 법적인 측면보다는 민심이 크게 작용한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5월15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8%로, 역대 대통령의 취임 초기 지지율보다 20%포인트나 낮은 역대 최저치다. 다음 날 나온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48%에 달했다. 반면 탄핵에 반대하는 응답자도 41%에 달해, 아직까지는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고 보기는 힘들다.

 

5월9일 해임된 제임스 코미 FBI 국장 © EPA 연합


 

중간선거 패배 우려하는 공화당

 

이번 파문의 핵심은 전격적으로 해임된 코미 국장이 향후 특검이나 의회 청문회 등에서 어떤 발언을 할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이른바 ‘코미 메모’ 내용을 확인해 주거나 또 다른 폭탄선언을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회복 불가의 치명타를 받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더욱 큰 문제는 특검이 진행되는 도중에 FBI 내부에서 트럼프 측근들의 ‘러시아 커넥션’에 관한 폭로가 이어지거나 관련 문서들이 공개될 경우다. 탄핵 절차로 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화당 주류 의원들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심 여론 악화를 우려해 트럼프와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내년에 실시될 중간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미리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낮은 인기로 인해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물증 등의 폭로로 사태가 더욱 악화한다면, 이탈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공화당 일각에서 슬슬 탄핵 상황을 대비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 체제로 나가야 한다는 ‘플랜B’ 가동설도 나온다.

 

워싱턴의 한 정치분석가는 트럼프가 조기에 이번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더욱 궁지에 몰릴 경우, 사태는 상상을 초월하는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면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버리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의 위기를 모면해 당장은 탄핵 국면에 몰리지 않더라도 점점 더 지지율이 떨어지고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한다면,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은 물론 탄핵 사태도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의혹 차단을 위해 FBI 국장 해임이라는 카드를 꺼낸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워싱턴 정가에 짙은 먹구름을 몰고 오게 한 계기가 된 셈이다. 탄핵 시계를 멈추려고 시도한 트럼프의 승부수가 오히려 탄핵 시계의 버튼을 누르는 자충수가 되어버린 꼴이다. 여기서 더 탄핵 시계가 빨리 돌아간다면, 공화당이 먼저 ‘플랜B’의 가동을 고려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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