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대한민국 검찰을 살리는 법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5 15:23
  • 호수 14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풍운아’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중용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5월19일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한 것은 일대 충격입니다.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으니 검사들이 받은 충격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됩니다.

 

5월23일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화제가 풍부한 검삽니다. 뛰어난 수사능력을 갖추고 승승장구하다가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원칙성 수사를 하는 바람에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다 최순실 특검에서 수사팀장으로 발탁되는 등 검사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합니다. 덕분에 일반 국민들도 윤석열을 아는 사람이 많을 정돕니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 이후 가장 유명한 검살 수도 있겠네요.

 

한 검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검찰이 처한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검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소불위, 정치적, 부팬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니 적폐청산 1호가 추가됐군요.

 

검찰 개혁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중요한 과제가 맞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조치로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쪼개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인 듯합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만능이 아닙니다.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되지 않도록 제도부터 잘 만들어야 합니다. 경찰에 수사권을 주는 방안도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최근 수년간 검찰이 ‘그랜저 검사’ 등 사고를 많이 쳐서 그렇지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은 수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식입니다. 그동안 한국 검찰에 가장 부족했던 부분은 ‘진정한 자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검사들은 대체로 이른바 명문대를 나와 한국에서 가장 어렵다고 쳐주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들입니다. 이들이 검사가 되려고 했을 때는 정의감도 좀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젊은이들이 검찰조직에만 들어가면 ‘검사스럽게’ 바뀔까요.

 

다소 정의감이 있던 수재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형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비단 검찰조직뿐만이 아닙니다. 검찰은 워낙 권한이 막강한 집단이어서 주목을 많이 받아 그럴 따름입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비밀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철학의 빈곤’입니다. 공부를 왜 합니까.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는 막연히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공부를 하라고 가르칩니다. 저도 어릴 때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좀 먹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공부는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목적부터 틀렸기 때문에 한국에는 머리만 좋은 수재가 넘쳐납니다.

 

검찰 개혁은 바람직한 풍토를 심는 데 주력해야 성공합니다. 검사들에게 엘리트 의식을 고취시키는 대신, 왜 검사가 됐느냐 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국민이 없는 검찰은 존재할 의미가 없습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처럼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사가 많이 나와야 검찰이 삽니다.

 

더 근본적인 개혁은 대통령이 검찰을 주무르지 못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개입 시도를 호되게 비판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검찰이 대단하다 해도 대통령이 휘두르는 잘 드는 칼일 뿐입니다. 칼은 주인에 비하면 죄가 적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검찰이 저지른 잘못은 결국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이 공익보다 사익(私益)을 추구한 탓입니다. 확률이 어느 정돈지 모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