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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비·간병비 이중고로 ‘실버 파산’

“일본은 병상상한제와 개호보험제에서 해답 찾았다”

노진섭 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4(Sun) 11:00:00 |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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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년의 직장생활을 마친 이아무개씨(67)는 2016년 폐암 4기(뇌와 척수로 전이된 상태) 판정을 받고 폐암 치료제를 복용했다. 처음에는 암이 줄어드는 듯했으나 올해 1월 뇌 속 암세포가 다시 커졌다. 의료진은 여러 검사를 통해 내성이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이씨에게 표적치료제 신약 사용을 제안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이 신약의 가격은 월 1000만원에 달했다. 퇴직한 후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에서 진료비에 약값까지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씨는 암 치료를 포기했다.

 

이씨처럼 돈이 없어 진료를 포기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년층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병에 걸릴 가능성은 커지는데 수입은 없어서 의료비를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654만 명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들이 사용하는 연간 진료비는 약 22조원으로 전체 의료비의 37%를 차지한다. 노인 인구가 2025년에는 1050만 명을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 노인 의료비는 약 4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노인 한 명당 연간 의료비는 2015년 357만원에서 2020년 459만원, 2030년 760만원으로 뛸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이 전망치는 물가, 노인 수, 건강보험수가, 1인 진료량 상승 예상치를 토대로 계산됐다. 65세 이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필요한 의료비는 얼마나 될까.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6년 의료비통계지표’와 통계청의 ‘2015년 생명표’를 토대로 분석해 보니 약 810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오래 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9094만원)이 남성(7030만원)보다 노후 의료비로 2000만원가량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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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노후 의료비 8100만원 필요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녀의 학비와 결혼자금을 대느라 변변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몇 푼 모았더라도 노후에 의료비로 탕진하는 이른바 ‘실버 파산’이 우려된다. 그러나 정부는 실버 파산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부담비율이 2014년 기준 80%이고 본인 부담비율은 약 20%에 그친다고 밝혔다. 노인이 삶을 마감할 때까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의료비 8100만원 가운데 정부가 6488만원을 지원하므로 노인 환자 본인은 1612만원만 부담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마치 노후 파산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식의 ‘공포 마케팅’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 불안하다. 실제로 40~50대 중년층은 부모의 의료비·간병비를 가장 부담스러워한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부모를 부양하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한 적이 있는 40~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명 중 1명은 “부모 부양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부모 부양이 어려운 원인으로 의료비·간병비 부담을 꼽은 응답자가 48.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생활비 부담(47.6%), 간병 부담(33.1%) 순이었다. 전체 응답자 85%는 “노후 의료비 준비가 필요하다”면서도 “빠듯한 생활비와 자녀 양육비 때문에 노후 의료비 준비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고 개인의 경제적 부담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비 외에 간병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면 아들이나 며느리가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환자를 보살핀다. 그러나 맞벌이나 핵가족 등의 사정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는 추세다.

 

이 간병비 부담이 상당하다. 정부가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더라도 개인은 간병비만으로도 실버 파산을 피할 길이 없을 정도다. 간병비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9년 추정한 국내 간병비 규모는 연간 약 4조원에 이른다. 연간 수조원이 서민의 호주머니에서 간병비로 지출되는 셈인데 투병기간이 길어지면 저소득층은 가족 간병을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관둬야 하는 ‘간병 실직’에 내몰린다.

 


“의료기관이 간호·간병 맡아야”

 

간병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55)를 5년간 보살피던 남편 김아무개씨(59)는 최근 자신도 대장암에 걸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도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때 건설 일을 한 김씨는 덤프트럭을 판 돈으로 아내의 요양병원비와 간병비를 감당해 왔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김씨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아내를 보살폈다.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 끊기자 가족 전체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결국 생활고에 의료비와 간병비까지 이중삼중의 부담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직장인 현아무개씨는 “병석에 있는 장인 간병비로 하루에 약 7만원씩 한 달에 약 200만원이 든다. 간병비와 교통비 등 의료비 외에 지출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나도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요즘 유행하는 실버 파산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병의 질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병원에서 고용한 간병인의 상당수는 정규직이 아니라 외부용역으로 수급한 비정규직이다. 전문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외국인 간병인이 40~50%를 차지해 언어 소통 문제, 24시간 연속 근무 등으로 간병의 질은 더 형편없어진다. 환자에게 기저귀를 채우거나 침대에 환자를 묶거나 약물로 재우는 등 있어서는 안 될 일까지 발생한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간병인 1명이 10~20명의 환자를 담당하므로 서비스가 좋아질 수 없다. 게다가 젊은 층의 야간 근무 기피 현상으로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가운데 간병인을 별도로 고용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도 과거에는 가족이나 간병인에 의한 간병이 일반적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간호·간병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의료기관이 담당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한국도 2013년부터 병원이 간호와 간병을 모두 책임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해 시범사업을 벌였다. 환자의 부담은 줄고 만족도는 높아졌다. 하지만 확산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간호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이 9.1명이지만, 한국은 5.2명에 불과하다. 스위스, 덴마크 등 서구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간호 인력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 인력난은 더 심각해졌다. 충분한 간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지방 중소병원은 폐업 위기로까지 내몰리고,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노후 의료비는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과도한 의료비와 간병비 지출로 인해 최소한 국민이 삶을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복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20년 이상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병상상한제와 개호(介護)보험제도에서 해답을 찾았다. 병원마다 병상 수에 제한을 둬 의료비 증가를 막으면서 개호보험제도를 통해 노인 간병 서비스를 확대한 것이다. 김수홍 일본복지대 대학원 복지경영학 박사는 “일본은 의료비 부담을 억제하기 위해 지역별 병상상한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병상 공급을 억제해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방법인데, 이로 인해 일본의 병상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한국도 이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일이다.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는 사람이 병원에 장기 입원하면서 의료비를 갉아먹는 현상을 없애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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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양보험 규모 일본의 4% 수준

 

개인이 부담하는 간병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호주,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도 간병비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담당하고 있다. 이홍수 이대목동병원 노인의학센터장은 “간병비는 국가가 부담하는 게 맞다. 한 병실에 공동 간병인을 두는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를 확대해 개인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2000년 의료보험과 별도로 노인을 위한 전문 보험인 개호보험(한국의 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보건의료 서비스와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 정부가 노인에게 종합적인 요양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예컨대 간병을 담당하는 전문가(개호복지사)를 늘렸고, 반드시 입원하지 않더라도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2016년 9월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4년 의료비는 총 40조8071억 엔이다. 그중 58.6%인 23조9056억 엔을 65세 이상이 사용했다. 이와는 별도로 개호보험비는 10조 엔 규모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요양보험은 3조4981억원 규모로 일본의 4% 수준이다. 김수홍 박사는 “일본은 전략적으로 의료비를 개호보험비로 이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호보험을 활용해 병원에 입원하려는 환자를 요양시설로 유도한다. 또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도 집에서 간병이나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만약 개호보험제도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일본의 의료비는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러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과정에서도 의료비가 축난다. 이홍수 센터장은 “동네 주치의, 즉 단골 의사제도를 마련해 노인이 한 의사와 자신의 건강을 상담하고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의료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도 불필요한 진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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