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한국 국민 정서상 위안부 합의 수용 불가라 전했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5 11:16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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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아베 신조 日 총리 만난 문희상 의원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질식 상태나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급박한 현안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외교부의 비난 성명서 한 장이 고작이었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외교 마찰에도 변변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로 인한 유·무형의 경제 손실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주한미군 주둔비,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이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허물어진 외교·안보의 둑을 복구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특사를 파견했다. 시사저널은 일본 특사 자격으로 5월1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5월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문 의원이 특사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네티즌 사이에선 “협상을 하자더니 야쿠자 오야붕(親分·우두머리)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다. 과거 인기 드라마 《판관 포청천》을 문 의원 얼굴로 바꾼 패러디도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이라는 사실도 새삼 회자됐다. 그만큼 일본 국민의 ‘특사 문희상’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는 방증이다. 문 의원은 ‘야쿠자 오야붕’ 반응에 대해 “일본에선 나처럼 생긴 얼굴이 야쿠자 오야붕인 것 같다”며 “꼬붕(子分·부하)이 왔다고 한 것보단 낫지 않으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날 문 의원은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해 “한·일 정상이 자주 만나다 보면 잘 풀릴 것”이라고 낙관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어제(5월24일)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미·중·일 3개국 특사단이 만났는데, 무슨 얘기를 하셨나.

 

대통령은 이미 미·중·일 특사단 활동보고서를 받으신 것 같았다. (특사단 활동을) 완전히 파악하고 계셨다. 그래서 따로 보고드릴 것은 없었다. 일본과 관련해선, 내가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의 분위기와 느낌을 캐치하려고 하셨다. 대통령께선 특사단에 국가별로 3가지 이상 질문을 하셨다. 상당한 수준의 질의였다. 홍석현 미국 특사와 이해찬 중국 특사에겐 사드 문제에 대한 미·중 분위기를 자세히 물어보셨다. 원래 30분 정도 보고드리는 자리였는데 1시간30분이 넘었다.

 

 

단순한 보고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정책 입안자들도 참석한 진지한 자리였다. 

 

 

일본에 대통령 친서를 갖고 가셨는데, 친서 내용은 무엇이었나.

 

35분 정도 만난 아베 총리에게 전한 친서에는 ‘(대통령 당선) 축전을 가장 먼저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담겼다. 일본은 (대선일인 5월9일) 문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확실해졌을 때부터 축전을 준비했다고 하더라. 그만큼 일본 측에서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친서를 통해 대한민국 신(新)정부가 혁신 정부라는 의미를 전달했다. 또 한국의 외교 방향을 설명하면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가자고 했다. 가능하면 한·일 정상이 빨리 만나자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

 

 

“아베, 북핵 문제에 관심 많았다”

 

친서를 받은 아베 총리 반응은 어땠나.

 

위안부 할머니 등 우리 관심사와는 조금 다르게, 북한 핵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곧바로 재개할 것인지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오해하는 부분도 있더라. 그래서 그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북핵 문제는 한·일 간 공조, 한·미·일 간에 협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가 불안한 점을 얘기하기에 내가 그 불안을 해소해 주는 자리였다. 문 대통령이 후보 당시 ‘북한에 가겠다’고 했던 발언에 대해서도 불안해하더라. 문 대통령의 ‘북한에 가겠다’는 발언엔 단서가 있었다. ‘북핵 문제 해결에 필요할 때’란 단서가 있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가겠다’에 대해서만 불안해하더라. 그래서 다시 설명했고 아베 총리도 ‘이해한다’며 오해를 다소 풀었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얘기도 오갔나.

 

한·일 관계가 좋았을 때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이었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계기들이었다. 이번 일본 방문 때 일본 여야 정치인 모두가 공통적으로 한국의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모멘텀(전환점)을 갖자고 하더라.

 

아베 총리도 정상회담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아무리 늦어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7월7일 이전이길 바라는 것 같았다. 한·중 정상회담보다는 한·일 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지길 바라는 듯했다. 우리나라가 6월말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비슷한 시점에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 같은 일본 측 의사를 문 대통령에게 전해 드렸는데, 대통령은 그냥 웃었다. 실무진이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렸다.

 

 

아베 총리와 만나 2015년 12월28일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선 무슨 얘길 나눴나.

 

아베 총리에게 원칙적인 언급은 다 했다. 나는 ‘한국 국민 대다수는 2015년 12월28일의 위안부 합의에 관해 정서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고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길에 앞장서 달라. ‘고노 담화(1993년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 인정)’ ‘무라야마 담화(1995년 식민지배 사죄)’ ‘오부치 선언(1998년 식민통치 사죄)’ ‘간 나오토 담화(2010년 한·일 강제병합 시인)’ 등 과거 합의를 직시하고 그것에 맞춰 미래지향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하자’, 이렇게 전달했다.

 

 

아베 총리 반응은 어땠나.

 

그쪽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 무슨 합의(2015년 12월28일 위안부 합의)는 빼고, 고노 담화 등 과거의 합의 정신을 이행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더라. (2015년 12월28일) 위안부 합의를 지켜 달라거나, 소녀상을 없애거나 이전해 달라거나 하는 말은 일절 하지 않고 비껴가더라. 우리도 (합의를) 파기하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특사인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5월18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위안부 합의 지켜 달라’ 말하지 않더라”

 

위안부 합의 논란이 해결될 것으로 보는가.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면 한·일 현안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북핵 문제 등 당면한 현안들을 다룰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도 그런 현안이다. 그 얘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무릎 꿇고 절을 못하겠나. 이번 일본 방문 때 아베 총리 주변 사람들한테 사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 핵심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서다. 그분들이 흔쾌해하지 않기 때문이며 한국 국민도 똑같다. 역대 일본 총리가 사과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한다. 편지 한 장이라도 진정성 있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경색된 한·일 관계가 잘 풀릴 것으로 보나.

 

일본에 가자마자 한·일 관계가 앞으로 잘 풀릴 것이란 점을 그냥 읽어버렸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얘기를 했다. 아베 총리도 기시다 후미오 외상도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도 똑같았다. 문재인 정부와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절절함이 보이더라. 한·일 관계가 복원돼야 한다는 절절함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 외에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등에 대해선 얘기가 없었나. 

 

없었다. 서로가 민감한 현안엔 접근하지 않았다. 산통을 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일 관계가 잘돼야 한다는 기대치 때문이다. 대신 아베 총리는 북핵 문제에 대해 3분의 2를 얘기하더라.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다. 그래서 ‘걱정 말라’고 했다.

 

 

특사로 다녀오신 소감은.

 

아주 만족했다. 그 분위기로 보면 한·일 관계가 아주 잘될 것이다. ‘특사로 오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일본 쪽에서 먼저 쫙 정리해서 얘기해 줬으니까.

 

 

문 의원과 아베 총리가 전에도 여러 번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특사로 갔을 때, 아베 총리가 과거에 부부 간에 만났던 일화를 먼저 꺼냈다. 실제로 부부 동반으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일본 후쿠오카공항 귀빈실에서였는데, 아베 총리의 부인이 ‘한국을 좋아한다’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브로치에 끼워둔 (드라마 《겨울연가》 출연 배우) 박용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용하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와는 그동안 공식·비공식으로 7~8차례 정도 만났다. 총리일 때도 만났고, 자민당의 평범한 의원일 때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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