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비리 없애려면 지도자 처우 개선부터”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7 14:12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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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출신 운동부 코치 월급 160만원…매년 계약갱신에 ‘한탕’ 유혹 빠져

 

지난해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는 한 체육고등학교에서 태권도부를 전격 폐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동안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전국대회에서 30여 개의 메달을 수확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배출한 효자 종목이었다. 하지만 태권도부를 둘러싼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태권도부 코치들은 학부모들에게 인건비 등 회비 명목으로 매월 수십만원의 불법 찬조금을 거뒀다. 대회출전비, 동계훈련비 등의 명목으로 별도로 더 갹출했다. 이 돈은 학부모 총무를 통해 A코치에게 적게는 80만~150만원씩 매월 현금으로 전달됐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학부모들도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A코치의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대학교 코치나 협회 임원에게 로비해야 한다는 활동비 명목을 핑계로 불법적인 인건비를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회비를 인상토록 한 뒤 월 300만원 정도를 은밀한 장소에서 현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참다못한 학부모 일부가 학교 측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드러났다.

 

체육계에서 갹출은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졌다. 이 학교에서 불법 찬조금 모금은 밝혀진 사례만 6차례에 이른다. 물론 학교 측도 각종 회계를 투명하게 처리하도록 노력해 왔다. 교육부 또한 지난 2013년부터 학교 운동부 관련 후원금을 회계에 편입시켜 투명하게 운영하고, 인건비 지원을 목적으로 한 기부는 제한했다. 내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종목에서 회비 명목의 찬조금은 코치나 학부모에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왜 이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 일러스트 정재환

 

낮엔 가르치고 밤엔 알바 뛰는 ‘전직 선수들’

 

 

“솔직히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일부 종목에선 여전히 학부모들이 회비를 거둬 코치들한테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 같아도 받고 싶어요. 월급만으로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데, 학생들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은 “개인의 비리로 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돈을 내는 학부모들도 무조건 지도자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지도자들과 학부모 모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전직 선수들은 연령·부상 등을 이유로 은퇴한 뒤 대부분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프로구단 코치와 같이 일부 성공한 사례를 제외하곤 대부분 일선 학교에서 학생 선수들을 훈련시키게 된다. 하지만 일선 학교의 코치에 대한 처우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한국엘리트스포츠지도자연합회에 따르면, 일선 학교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코치는 6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교육청이나 체육회 등과 계약을 맺고 학교에서 학생 선수를 지도하는 사람들이다. 감독과 달리 코치들은 대부분 전직 선수들로 이뤄져 있다. 시·도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의 봉급은 월 160만~200만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178만6952원)에 못 미치거나 살짝 넘는 수준이다.

 

경기도에서 12년째 중·고등학교를 돌며 육상을 가르치고 있는 B코치는 “매월 통장에 찍히는 수당이 170만원”이라며 “학생들만 가르쳐선 도저히 생활이 안 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B코치는 유망한 육상선수 출신이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2004년부터 학생들을 지도한 뒤 2006년부터 정식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 코치에게 주어지는 월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첫 월급은 100만원도 안 됐다. 차츰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가졌지만 이조차 금세 무너져버렸다. 연차가 쌓여도 반영이 전혀 되지 않았다. 1년 차 코치나 30년 차 코치의 연봉이 같은 시스템이었다. 수당으로 편성돼 있어 호봉 개념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나마 교육청에서 체육 지도자들의 처우를 개선한다고 해서 B코치의 월급은 대략 170만원 수준으로 늘었다.

 

12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이 B코치의 생활환경도 바뀌었다. 2012년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 아이를 돌보느라 맞벌이는 사실상 어려웠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B코치는 학교에 사정을 말해 겸업을 허락받은 뒤 부업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B코치는 낮 시간에 학생들을 훈련시킨 뒤 저녁 시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B코치는 “저는 그나마 제 전공을 살려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했지만 주변 코치들의 상황은 무척 열악하다”며 “일부는 음식점이나 술집을 열기도 하지만 주로 서비스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성인PC방에서 밤새 일하고 학교로 출근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부수입이 더 큰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배드민턴을 가르치고 있는 C코치는 “매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동호회에 나가서 코치 활동을 하면 약 200만원 안팎의 레슨비를 받는다”며 “서울에 동호회가 많아 일 찾기는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 종목에 국한돼 있다. 탁구나 배드민턴, 볼링과 같이 동호회가 활성화된 종목의 코치들 얘기다. C코치도 “육상이나 레슬링 등 비인기 종목은 도저히 일을 찾지 못한다”며 “학원차를 운전하거나 야간 콜센터에서 일하는 경우도 봤다”고 밝혔다.

 

 

乙로 전락한 ‘파리 목숨’ 코치들

 

학교 체육 지도자들이 비리의 유혹에 시달리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불안정한 신분 때문이다. 이들은 매년 계약서를 새로 쓰는 ‘파리 목숨’이다. 대부분 3월1일부터 다음 해 2월28일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당연히 학교를 옮겨 다니기 일쑤다. 때로는 계약 해지 사실을 뒤늦게 통보받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시·도를 넘나들며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재계약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단순히 신분 문제만이 아니다. 이들은 교육 시스템에서 완벽한 ‘을(乙)’로 편입돼 있다. 재계약을 위해 부당한 요구까지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에는 계약서에 “3년 이내 전국체전이나 소년체전 등에서 메달을 따오지 못할 경우 계약을 해지 한다” 등의 내용도 포함됐지만,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차츰 사라지는 추세다. 일부 광역지자체에선 ‘쪼개기’ 계약까지 성행하고 있다. 계약 기간을 3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11개월로 잡는다. 코치들은 2월 한 달 동안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일부 학교에선 화단 관리나 복도 껌 제거 등을 운동부 코치에게 맡기고 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의 한 코치는 “학교에서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코치에게 일일이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지시했다”며 “코치를 채용할 때 승용차나 승합차를 갖고 있는지 묻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학교 운동부 코치의 월급은 월 160만~200만원 수준이다.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거나 살짝 넘는 수준이다. ⓒ 사진=연합뉴스

운동부 코치들은 매년 2월만 되면 불안해진다. 학교 교장이 바뀌면 운동부에 대한 지원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운동부를 둘러싼 민원이 적지 않은 데다 비리 등이 터져 교장한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발생하다 보니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새로 교장이 부임해 와서 운동부에 대한 지원 예산을 대폭 축소하거나 대회 불참을 지시해도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다. 일부 학교에선 교장이 바뀐 뒤 갑작스레 운동부 폐지를 지시해 하루아침에 코치와 선수들 모두 갈 곳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에 제대로 항의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학교체육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학교 운동부 지도자의 임용 권한이 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재계약 심사 과정에서도 교장이나 교감의 권한이 막강하다. 평가를 통해 재계약을 진행하는 형식적 절차는 있지만, 수상 실적 등을 제외하곤 주관적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C코치는 “현재 교장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지만 교장 정년이 곧 끝나기 때문에 참고 있다”며 “다음 교장은 학생 선수들을 중심에 놓고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안정한 신분이 체육계 비리를 조장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전직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으로 30년 넘게 운동을 가르치다 체육고 교장으로 은퇴한 이아무개씨는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코치들은 당연히 ‘한탕’을 노리는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이들이 교사와 같은 안정적인 신분이라면 불법 찬조금이나 입시 비리 등이 터지겠느냐”고 지적했다.

 

선수를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은 정부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생활 체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면서 엘리트 체육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국제적 대회에서 금메달만 추구하기보단 생활 체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다. 몇 년 사이 생활 체육에 대한 예산은 대폭 증가했지만, 엘리트 체육에 대한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각 자치단체에선 득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 체육 등에 대해선 과감한 투자를 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떨어지는 엘리트 체육 지원은 최소화했다. 누리과정 예산 등을 각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면서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당연히 체육 선수를 육성하는 코치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는 정책적 관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정규직 인정” 법제처 해석에 규정 바꾼 교육부

 

학교 체육 지도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는 이전부터 나왔지만 그들만의 목소리로 그쳤다. 교육부도 예산을 핑계로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 그동안 비정규직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에 사무행정보조사나 사서, 초등돌봄교사, 영양사, 조리원, 상담사 등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이때에도 체육 지도자는 예외였다.

 

이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정규직 보호법의 대상에서조차 빠져 있다. 2년 이상 근무를 해도 계속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예외 대상으로 체육 지도자 신분을 포함시켰다. 노동부와 법제처에서 학교 체육 지도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법리 해석을 내놨지만, 교육부는 오히려 해당 규정을 바꾸는 방식으로 피해 갔다. 이를 불합리하다고 느낀 체육 지도자 73명은 각 시·도 교육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체육 지도자들을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으로 보는 시각이 담긴 판결이었다. 오는 8월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남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부담해야 할 학생 선수 육성비용은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전가됐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3년 구기종목 운동부가 있는 전국 1015개 학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학부모가 부담한 운동부 제반 경비는 631억원에 달했다. 반면 학교가 부담한 금액은 92억원에 불과했다. 학교가 학부모 부담액의 7분의 1만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학부모의 부담액이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부모의 1개 학교당 평균 부담액은 초등학교에서 3700만원이었던 것이 고등학교에서는 8900만원으로 늘어났다. 자녀가 야구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아무개씨(여·46)는 “학교에 내는 후원금과 각종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아이 진학을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뒤처질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9일 대선후보 자격으로 체육인대회에 참석해 “(체육인들의) 확실한 처우 개선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 “체육 함정 벗어나 처우 개선해야”

 

스포츠 평론가인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는 “체육이라는 육체적 함정이 강요하는 독특한 위계질서와 선수라는 정신적 덫에 의한 국위선양 등의 강요된 ‘정신 승리’가 체육인들의 자립과 자결을 막아왔다”며 “바로 ‘체육’이라는 함정에 갇혀 있었고 ‘선수’라는 덫에 걸려 있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체육계의 ‘적폐’는 권력과 이인삼각 달리기를 해 온 기존의 구태 인사들이 낡은 구조 안에 잠복돼 있는 상황”이라며 “체육인들의 노동 조건, 고용 관계, 훈련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억압적인 위계 문화 등을 전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영 한국엘리트스포츠지도자연합회 회장은 “최순실 사태에서 체육 농단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펜싱선수 고영태가 호스트바로 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모든 스포츠 비리의 근원은 40년간 대물림된 지도자들의 저임금과 불안정한 신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학교 체육 지도자들에 대한 저임금·고용불안 환경을 그대로 두고 체육계 비리를 방지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예체능 지원 확대’ 文 대통령 약속 지켜질까

 

대선 주자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던 4월9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대한민국 체육인대회’가 열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위기에 몰렸던 체육계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간절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대선후보들도 체육 지도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체육인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과 훈련 환경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법 개정을 통해 반드시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후보 신분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체육계의 열망에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스포츠 강사들은 최저생계비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그것도 11개월 비정규직이다. 확실한 처우개선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체육을 위해 공헌한 체육인들이 은퇴 이후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체육인 복지법’ 제정도 추진할 예정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도 스포츠 병폐를 없애겠다고 했다. 느닷없는 승마협회 감사에서 자기 뜻대로 하지 않은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실무자를 한직으로 내몰았다. 2014년 1월에는 ‘스포츠 4대 악 신고센터’를 만들어 체육계 전체를 비리의 온상인 양 만들었다. 물론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체육계 길들이기 수단으로만 악용됐다. 이는 체육인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안겼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의 출발은 바로 체육 농단으로, 체육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체육인들의 자존심을 찾아드리겠다. 모든 학교에서 예체능 교육을 늘리고 이를 국가가 지원하자는 것이 저의 핵심 교육정책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체육계의 해묵은 적폐를 해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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