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가 아니라 ‘감독 야구’ 사라져야
  •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8 09:03
  • 호수 14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근 前 한화 감독 사임, ‘감독 야구 종언’으로 이어질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5월23일 김성근 감독의 사임 의사를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이로써 김 감독은 2014년 10월 한화 사령탑에 오른 지 약 2년7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그는 KBO리그가 출범한 1982년 OB(현 두산) 코치로 프로야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84년에는 OB 사령탑에 올랐다. 이후 태평양과 삼성, 쌍방울, LG, 그리고 SK에서 감독을 맡으면서 모든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켜 명장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SK 시절에는 3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3년2개월 만에 KBO리그 감독으로 복귀한 한화에서는 기대한 성적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 김 감독은 매년 FA(프리에이전트) 선수들을 영입하는 등 막대한 투자와 함께 ‘지옥 훈련’과 ‘특타’로 상징되는 많은 연습량을 통해 성적 향상을 꾀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부상자 속출로 이어지는 역효과로 나타나 성적 부진의 원인이 됐다.

 

김성근 前 한화 감독 ⓒ 사진=연합뉴스

 

3김 야구의 종언

 

김성근 감독의 사퇴를 두고 KBO리그를 오랫동안 지배한 ‘3김 야구의 종언’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지휘봉을 잡아 좋은 성적을 거둔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과 김인식 KBO 총재특보, 그리고 김성근 감독을 과거 정계의 거물들인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에 빗댄 것이다. 김 감독의 사퇴로 이상군 감독대행을 비롯해 10개 구단의 감독은 모두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맡게 됐다. 그런 점에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표현도 적절하다.

 

그런데 감독 개인의 이력이 아닌 감독의 권한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느껴진다. 한화 지휘봉을 잡은 뒤 김 감독은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들었다. 그 원인은 선수 혹사와 소통 부재에 있었다. 특히 언론매체를 통해 밝힌 자기 모순적인 변명조의 발언은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 결과 김성근 감독의 말은 야신(한화 이전 다른 팀을 맡았을 때의 김성근)의 말로 전부 반박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구원 투수의 잦은 등판과 관련해, “혹사가 아니냐”는 지적에 김 감독은 “투수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거 김 감독은 “프로 지도자가 ‘선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과 변명에 불과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시쳇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김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해지는 특타와 강훈련은 김 감독 특유의 야구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김 감독은 “몸은 피곤해도 호된 연습을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여긴다. 이른바 ‘낡은 정신론’을 신봉한다. 물론 이것 역시 김 감독의 언론플레이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나(김 감독)는 이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선수를 가르치고 연습시킨다. 그러므로 경기에 진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선수 기량이 부족해서다.’ 그런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게다가 특타 등의 실제 효과도 기대와는 달랐다. 부상은 물론 피로에 따른 경기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김 감독은 베테랑이나 FA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유망주를 그 대가로 내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 퓨처스 선수들을 수시로 1군에 불러들여 체계적인 유망주 육성을 어렵게 했다. 말하자면 눈앞의 성적을 위해 근시안적으로 선수단을 운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김 감독만의 특성은 아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넥센 퓨처스팀의 외국인 감독 효과”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넥센은 지난해부터 퓨처스 지휘봉을 쉐인 스펜서에게 맡기고 있다. 유망주 육성을 위해 퓨처스팀에 외국인 코치가 아닌 감독을 둔 것이다. 그런데 ‘쉐인 스펜서’가 아닌 ‘외국인 감독 효과’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망주 육성을 위해 외국인 코치를 두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선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외국인 코치는 미국식으로 연습량보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훈련하는 것을 중시한다. 선수단 연습이 일찍 끝난다. 그런데 연습이 끝나면 외국인 코치는 퇴근하지만, 국내 감독을 비롯한 코치와 선수는 남아서 야간 훈련을 한다. 그 훈련도 집중력 있게 하는 게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시간 때우기식 연습일 때가 대부분이다.”

 

 

절대적인 1군 감독 권한, 팀 장래 어둡게 해

 

외국인 코치가 퇴근한 뒤 지도자와 선수가 남아서 야간 훈련을 하는 이유는 1군 감독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퓨처스 감독은 1군 감독에게 매일 연습 시간 등을 보고한다. 연습량이 적으면 언제 부메랑이 돼 날아올지 모른다. 한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이야기해 줬다. “퓨처스팀을 맡았을 때 야간 훈련을 없앤 적이 있다. 1군 감독에게 이야기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때쯤 사달이 났다. 1군 감독이 ‘1군이 연패 중인데 퓨처스팀은 한가하게 쉬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그 뒤로 퓨처스팀 코칭스태프의 보직 변경 등 여러 일이 있었다.”

 

1군은 눈앞의 성적을 다투는 전쟁터이지만, 퓨처스팀 등은 팀 성적보다 선수를 육성하는 무대다. 당연히 그 운영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퓨처스팀이 선수 육성보다 1군에 선수를 보급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팀 상황에 따라 기량이 부족한 선수도 1군에 올라갈 때가 있다. 그런데 1군에 올라가서도 벤치에 앉아 며칠 구경만 하다가 다시 퓨처스팀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1군 엔트리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퓨처스팀의 체계적인 선수 육성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1군의 성적을 위해 퓨처스 경기에 유망주보다 1.5군이나 몸 상태를 조절하는 베테랑을 중점적으로 기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구단이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1군 감독의 권한이 제한될 필요가 있다. 김성근 감독으로 대표되는 제왕적 감독 야구는 프로야구가 출범한 초창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성적만이 아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며, 36년의 경험 속에 프런트 조직도 전문화·세분화돼 운영되고 있다. 감독은 자신의 목이 걸린 만큼 눈앞의 성적을 중시하는 반면, 프런트는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구단을 운영한다. 김성근 감독처럼 1군 감독의 권한이 절대적이면, 팀의 장래도 그만큼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미래보다 눈앞의 성적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감독을 제어하는 게 프런트의 역할이지만, ‘감독 야구’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프런트의 권한이 세졌다고 해도, 제왕적 ‘감독 야구’의 신봉자는 김성근 감독만이 아니다. 그런 만큼 앞으로 김 감독의 사퇴가 ‘감독 야구의 종언’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부분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