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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도, 슈퍼맨도 가라 원더우먼이 온다

남성 캐릭터 우세한 슈퍼히어로 영화계에 강렬하게 날아든 최초의 단독 여성 슈퍼히어로 영화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1(Sun) 14:00:00 | 14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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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고된 빅 이벤트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뜻밖에도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건 원더우먼(갤 가돗)이었다. 영화의 흥행 성적과 평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오히려 관심이 몰린 쪽은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독 영화 제작이다. 《원더우먼》은 DC 코믹스 원작을 기반으로 한 DC 확장 유니버스(DC·Extended Universe)의 네 번째 작품이자, 남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우세한 슈퍼히어로 영화계에 강렬하게 날아든 최초의 단독 여성 슈퍼히어로 영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캐릭터 중 한 명인 원더우먼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처음’의 기록은 또 하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패티 젠킨스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연출한 첫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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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긍정하는 여성 영웅

 

원더우먼이 대중문화 시장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41년이다. 같은 해 10월 발간된 《올스타 코믹스》 여덟 번째 이슈를 통해서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를 무찌르는 원더우먼의 모습은 이후 1975년부터 79년까지 미스월드USA 출신 린다 카터 주연의 TV 시리즈로 재생산됐다. 시리즈는 제법 인기를 끌었지만,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는 복장 등으로 원더우먼 캐릭터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코믹스 원작자 윌리언 몰튼 마스턴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원더우먼을 소개한 것과 달리, 영화 속 시대 배경은 1차 세계대전 당시다. 신이 허락한 왕국 아마존 데미스키라의 공주 다이애나 프린스(갤 가돗). 그는 이 섬에 불시착한 미군 조종사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를 통해 인간 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모이자 왕국 최고의 전사인 안티오페(로빈 라이트)로부터 훈련을 받으며 자란 다이애나에게 세상의 평화와 정의란, 어떠한 이유도 없이 추구해야 하는 절대 선 같은 것이다. 다이애나는 신들이 준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스티브와 함께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은 다이애나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다이애나는 어머니이자 왕국의 여왕 히폴리타(코니 닐슨)가 흙으로 빚고 제우스에게 생명을 간청해 태어난 반신반인(半神半人)이다. 아프로디테보다 아름다우며, 헤라클레스보다 힘이 센 이 전사는 슈퍼맨과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한 존재다. 《원더우먼》은 이 같은 캐릭터의 기원과 매력을 충분히 활용한다. 상대를 옭아매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헤스티아의 올가미, 총알을 막아내는 건틀렛, 전쟁의 신 아레스를 죽일 수 있다고 알려진 갓킬러, 방패 등 원더우먼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들을 이용한 다이애나의 전장에서의 활약은 압도적이다. 이는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 전사들의 훈련 및 전투 장면과 맞물려 인상적인 장면들을 여럿 남긴다. 여성들로만 이뤄진 데미스키라 왕국의 전사들과 다이애나의 움직임은, 그간 기존 영화들이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액션 시퀀스 만들기에 얼마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는지를 꼬집기에 충분하다.

 

이 밖에도 패티 젠킨스 감독은 영화 곳곳에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 등 동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슈들을 꼼꼼하게 챙기며 사려 깊은 연출을 보여준다. 다이애나의 눈을 통해 당시 꿈틀대고 있던 여성 참정권과 인권 신장 운동에 대한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가 하면, 다이애나와 스티브를 돕는 3명의 조력자를 통해서는 개척과 승리에 도취된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존재들을 조명한다. “한때는 배우를 꿈꿨지만 피부색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위장 전문가 사미어(세이드 타그마오우이), 저격수로 이름이 나 있지만 어느덧 문제적 주정뱅이가 되어 있는 찰리(이완 브렘너), 미국 원주민 치프(유진 브레이브 록)가 그 주인공이다.

 

어떤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보다 인간을 긍정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이애나는 대다수의 남성 슈퍼히어로의 기원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이 겪었던 불행한 사건에 의해 복수를 꿈꾸거나 책임감을 갖게 된 영웅이 아니다. 인간 세계를 경험한 적 없는 아이 같은 존재인 다이애나는 전쟁의 신 아레스만 없앤다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믿고 인류를 도우려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다. 전쟁터에서 서로 무자비하게 죽고 죽이는 인간성의 바닥을 경험한 스티브에게 인간에 대한 낙관론을 지닌 다이애나는 공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러나 다이애나와 일련의 여정들을 함께하며 스티브는 이상적인 믿음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회의를 느꼈던 다이애나 역시 어떤 계기로 인해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다. 이 영화 안에서 원더우먼이 평화를 위해 반신반인이 담당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스티브로 대변되는 인간은 쉽게 포기하거나 신에게 기대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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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호평, 《저스티스 리그》도 ‘청신호’

 

갤 가돗이 연기하는 원더우먼은 오는 11월 개봉하는 《저스티스 리그》에도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DC 슈퍼히어로 연합체의 활약을 그리는 이 영화에는 배트맨(벤 애플렉)과 원더우먼뿐 아니라,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이미 존재를 알렸던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플래시(에즈라 밀러)도 등장한다. DC가 처음으로 슈퍼히어로 연합체를 세상에 선보이는 셈인데, 《원더우먼》에 쏟아지는 호평이 《저스티스 리그》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캐릭터에 대한 호감이 완전체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일단 《저스티스 리그》까지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원더우먼》은 영화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웹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97%를 기록(5월31일 기준)하며 슈퍼히어로 영화의 최고점 자리를 유지했던 《아이언맨》(94%)과 《어벤져스》(92%) 등을 제친 상황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28%에 불과했다.

 

현재 《원더우먼》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에서 순차적으로 공개되며 무난하게 호평을 얻고 있다. 문제시되는 곳이라면 레바논. 현재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전쟁 상태인 국가라는 게 그 이유인데, 주연 배우 갤 가돗이 지난 2014년 SNS상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을 응원하는 글을 올리면서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어서다. 이스라엘 출신 배우인 갤 가돗은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2년간 복무한 이력도 있다.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이 되기에 갤 가돗은 부적절하다며 《원더우먼》에 대한 보이콧이 일어나는 가운데, 이 놀라운 여성 슈퍼히어로가 일으킬 흥행 성적과 영화시장 변화에도 관심이 모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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