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의 그리움과 낭만 있는 근대 도시 인천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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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14) 인천광역시] 차이나타운․인천 아트플랫폼․카페거리․배다리마을 서로 다른 고민 끌어안은 역사의 현장

 

인천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개항시대를 이끌었던 도시라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개항기를 거치며 만들어진 근대적인 거리들과 차이나타운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인천의 오래된 명물인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그 다음 해, 청나라 조계지(외국이 직접 관리하며 행정권과 치외 법권을 가지는 지역)로 지정되면서 상점들이 들어선 것이 시작이었다. 현 인천시 중구청은 일본 조계지내에 일본영사관으로 들어선 건물이기도 하다. 이 일대는 2010년 우리나라의 네 번째 문화지구인 ‘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세워진 소위 근대건축물들은 독특한 분위기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개항장 문화지구 내의 옛 물류창고 건물을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인천광역시 해안동의 ‘인천 아트플랫폼’은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공간이다. 2009년 개관 당시 방문했을 때, 건축물의 역사적 아우라와 문화예술인들의 새로운 상상들이 어떻게 시너지를 일으킬지 궁금증을 자아냈었다. 최근 다시 찾은 아트플랫폼은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한창이었고, 주말에는 ‘인천개항장 야행 밤마실’ 행사가 열리며 방문객 몰이에 성공한 듯 보였다.
 
인천의 대표 관광지인 차이나타운의 입구. 주변으로 자유공원, 삼국지 벽화거리, 인천 아트플랫폼 등이 밀집해있다. ⓒ 김지나 제공
 
역사적 아우라와 문화적 상상력의 시너지
 
중구청 주변의 일본식 목조건물들로 꾸며진 카페거리도 ‘근대’라는 시간이 가지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기대 인천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자 한 듯했다. 하지만 이국적인 경치에 흥미를 느낀 것도 잠시, 어딘가 드라마 세트장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 과거의 모습인데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달까. 마치 테마파크의 가짜 풍경들처럼 말이다. 국내 최초의 비누공장, 양조장, 극장, 요정 등 정작 유서깊은 근대문화재들은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해버리고, 이런 작위적인 경관을 만들어놓는 형태가 개탄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개항장 문화지구 일대는 그 유명세나 투자노력에 비해 그다지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차이나타운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 1등으로 꼽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방문하길 원하는 것은, 단지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는 모형이 아니라는 의미다. 
 
개항장 주변이 청나라와 일본인들을 위한 시가지였다면, 인천시 동구 금창동 일대는 한국인들의 터전이었다. ‘배다리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동네는 외세의 강압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근대사 속에서, 어쩌면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던 역사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이 지역이 개항장 문화지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근대’라는 시공간을 얼마나 불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배다리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에 의해 소소하게 꾸며지는 중이다.
 
옛 물류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화예술 창작공간인 인천 아트플랫폼 일대. 다양한 전시와 문화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있다. ⓒ 김지나 제공
 
민관의 불협화음으로 생채기 난 배다리마을
 
사실 배다리마을은 최근까지도 아픔이 있었다. 2006년 동구와 중구를 짓는 산업도로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일대를 전면 철거하는 재정비방식이 계획됐던 것이다. 이전까지 큰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이 평범한 마을이 시끄러워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배다리마을도 개항장 주변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문화 자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도로 건설은 중단되었고, 인천시는 산업도로 공사현장이었던 땅을 공유지로서 주민들에게 돌려줬다.
 
필자가 처음 배다리마을을 가봤던 것은 2010년으로, 산업도로를 만들려던 자리가 거대한 생채기처럼 마을 한가운데에 남아있던 때였다. 지난달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배다리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던 황무지가 주민들이 손수 가꾼 꽃밭과 텃밭으로 변해있는 것이 마음 한구석을 뭉클하게 했다. 작년 10월에는 놀이시설들을 설치하면서 이곳을 ‘생태놀이 숲’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옛 일본조계지의 거리를 재현한 인천 중구청 앞의 카페거리 ⓒ 김지나 제공
 
하지만 배다리마을의 평화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고 있다.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월말, 생태놀이 숲의 놀이시설들은 불법시설물 취급을 받으며 철거되고 말았다. 배다리마을을 역사문화마을로 만들겠다는 인천 동구청의 계획도 난항을 겪는 중이다. 2016년 실시된 문화영향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몇몇 항목은 아예 기준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미 2010년에 배다리마을을 대상으로 근대건축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는 건축전문단체인 사단법인 도코모모코리아의 디자인 공모전이 진행돼, 수많은 전문가와 학생들이 이 지역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창의적인 고민들을 했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 여전히 관습적이고 뻔한 방식의 관광지 만들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행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근대’라는 시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도 있는 듯하다. 최근 몇 년 새 개화기의 일본식 요정을 컨셉으로 한 술집들이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테다. 하지만 테마파크나 유흥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비전과 안목이 인천에는 필요하다. 개항장 주변도, 배다리마을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며, 두 지역을 함께 이해할 수 있을 때 인천의 근대는 좀 더 풍부하게 경험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그에 걸맞은 신중한 계획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항기 한국인들이 모여 살았던 인천 배다리마을. 2006년 추진되었다가 주민반발로 중단된 산업도로 공사부지가 주민들에 의해 꽃밭과 텃밭으로 가꿔지고 있다. ⓒ 김지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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