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검찰에 ‘충격요법’ 가할 필요 있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2 15:06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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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절대 신임 받는 조국 민정수석 ‘우병우 라인’ 솎아내며 ‘검찰 개혁’ 신호탄 쏴

 

“마치 하나회 숙청 때를 보는 것 같다.”

 

최근 청와대의 검찰 인사를 바라본 한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첫 번째 개혁 작업으로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에 돌입했다. 측근들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인사를 진행했고, 전두환·노태우 정권 당시 군을 좌지우지하며 핵심 요직을 독점했던 하나회는 지리멸렬했다. 과감한 인적 청산을 통해 군의 가장 큰 적폐를 해소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대상이 군에서 검찰로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개혁과제는 검찰 개혁이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검찰 개혁은 항상 첫 손가락에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저서와 공개석상에서의 발언을 통해 검찰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할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발탁하면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민정수석은 사정라인 사령탑이다. 조 수석은 비(非)검찰 출신이지만 검찰 개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설파해 왔다. 이제 조 수석은 검찰 개혁과 인사 검증, 내부 감찰을 수행하는 민정수석실을 이끌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의 선봉에 서게 됐다.

 

‘청와대발 검찰 개혁’이 탄력을 받고 있다. 개혁 추진의 중심에 선 조국 민정수석에게 관심이 쏠린다. ⓒ 사진=뉴스1


 

예고 없는 인사에 검찰 ‘멘붕’

 

6월8일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는 청와대의 인적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9시36분 전격적으로 검찰 고위직 인사를 발표했다. 사전 예고가 전혀 없었던 인사 발표였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전날까지 기미 하나 없다가 한 방 맞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무부의 이날 인사를 통해 윤갑근 대구고검장(53·사법연수원 19기)이 비(非)수사지휘 부서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검사장급인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52·20기),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51·20기), 전현준 대구지검장(52·20기) 등 3명도 윤 고검장과 함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 났다. 통상 연구위원은 검사장 승진을 앞둔 검사들이 가는 자리라 사실상 무보직 발령을 낸 셈이다.

 

법무부의 이번 인사는 ‘우병우 라인’ 제거에 목적이 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일선 검사장, 대검 부서장 등 수사지휘 보직에서 연구 또는 비지휘 보직으로 전보했다”며 ‘문책성’ 인사임을 분명히 했다. 윤 고검장은 지난해 8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정 공안부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때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청구인 측인 법무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이어 대검 공안부장으로 옮겨 집회에 강경 대응하고, 당시 야당 의원에 대한 선거법 위반 과잉 적용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근무한 김 지검장은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우병우 전 수석과는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다. 전 지검장은 2009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으로 재직하며 MBC 《피디수첩》 제작진을 기소해 거센 반발을 샀었다.

 

법무부가 검찰 고위직 인사를 단행한 6월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직원들이 로비를 걷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핀셋 인사로 강한 개혁 드라이브

 

‘정윤회 문건 사건’을 수사했던 유상범 창원지검장(51·21기)도 문책성 인사 조치됐다. 유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다. 유 지검장과 함께 수사를 맡았던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51·25기)도 한직인 서울고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인사는 정권의 강한 검찰 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가 많다. 과거 노무현 정권은 대대적인 검찰 인사를 통해 검찰을 개혁하려 했지만 오히려 검찰의 거센 반발을 사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이러한 성향을 파악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과거부터 검찰 개혁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인적 쇄신을 꼽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김인회 변호사와의 공저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인적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고 썼다.

 

인적 쇄신을 위한 신호는 바로 조국 민정수석이다. 비법조인 출신인 조 수석을 임명하면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다. 조 수석도 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검찰 개혁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조 수석은 과거 교수로 재직하면서 검찰 개혁과 관련해 논문과 기고문 등을 통해 수차례 자신의 의견을 밝혀왔다. 형법을 전공한 조 수석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 개혁을 위해선 외부 조직에 의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여러 곳에서 강조했다. 그는 2002년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지 《형사정책 14권》에 기고한 ‘특별검사제의 한시적 상설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상설적 특검제의 한시적 도입으로 국민 신뢰를 잃은 검찰에 ‘충격요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과적 수술을 통해 검찰이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검찰 내부에서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당황하는 눈치다. 당초 조 수석 임명 당시 법조계에선 “비법조인 출신인 조 수석이 검찰의 급소를 제대로 찌를 수 있을까”란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검찰 인사를 보면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하는지 잘 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 주변에서 검찰 인사에 대한 조언을 해 주는 ‘그룹’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전직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들이 검찰 개혁을 위한 일종의 ‘자문’을 해 주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이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지 잘 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보면 교묘하게 ‘우병우 라인’을 건드렸다. 검찰이 반항할 수 없는 공격을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 3월9일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평검사 간의 대화.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자리에 함께했다. ⓒ 사진=연합뉴스

 

인사 검증 면에선 아직 ‘물음표’

 

검찰 개혁의 첫 수는 잘 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의 또 다른 임무인 ‘인사 검증’에선 빈틈이 노출됐다. 정권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데다 민정수석실의 진용이 미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서 ‘부실 검증’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신설된 일자리수석비서관으로 내정됐던 안현호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내정 철회가 그 예다. 청와대는 6월1일 안 전 차관의 일자리수석 내정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안 전 차관은 공식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청와대로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안 전 차관의 내정을 철회하게 된 데에는 민정수석실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6월5일 사의를 표명한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5월24일 공식적으로 인사 발표를 한 것은 물론이고 청와대 차원에서 프로필 자료까지 배포했던 인사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인사로 호평받았지만 김 전 차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남에 따라 검증이 부실했다는 지적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여권의 한 인사는 지난 5월말 기자와 만나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이 교수로 재직하면서 제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안다. 피해자인 김 차장 제자가 김 차장의 과거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며 몇몇 언론사에서도 취재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전언이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김 전 차장은 스스로 청와대를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전 차장의 사의에 대해 “업무과중으로 인한 급격한 건강악화 및 시중에 도는 구설 등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표명을 했다”고만 밝혔다. ‘시중에 도는 구설’이 결국 인사 검증의 발목을 잡았다는 의미다. 내용이야 어떻든 결국 민정실에서 제대로 인사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조국 민정수석이 5월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진용 꾸려지면 본격적 개혁 시작”

 

청와대 인사들이 낙마하게 되면서 향후 내부 검증 과정에서 추가 낙마 사례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 측은 검증이 소홀했다는 지적에 대해 “지적은 아프게 받아들이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며 “국민의 기대를 알아 진심으로 하나라도 더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정말 모든 것을 사람이 다 알 수는 없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현재 청와대에서 경찰과 정보기관 인사들이 참여한 ‘인사검증팀’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현재 밀려드는 인사 검증을 모두 다 완벽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이 아직 진용을 갖추지 못한 점도 인사 검증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행정부처 장관들조차 다 임명되지 못했다. 청와대 인사도 마찬가지다. 그마나 6월7일자로 박근혜 청와대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모두 청와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민정수석실도 새로운 진용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행정부처와 청와대 진용이 다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국 수석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정라인인 서훈 국정원장은 지금 한창 업무파악 중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으로 누가 임명될지도 6월9일 현재까지 안갯속이다. 그렇다 보니, 조 수석에 대해 ‘왕(王)수석’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과거 정부에서 ‘왕수석’으로 불린 이들은 여럿이었다.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으면서 실질적인 권력 2인자 역할을 하는 이들을 지칭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왕차관’으로 불렸다. 박근혜 정부에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왕실장’으로 불렸다. 지금은 조국 수석이 ‘왕수석’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는 정권 초기인 데다, 아직 문재인 정부가 구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란 분석이다. 향후 행정부처와 청와대 인사가 마무리되면 조 수석에게 쏠린 시선과 관심도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과 ‘재벌 개혁’ 과정에서 조 수석은 상당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든 재벌이든 개혁을 하려면 조 수석을 직·간접적으로 거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첫 신호탄이 6월8일 전격적으로 단행됐던 ‘우병우 라인’ 솎아내기 검찰 인사였다는 것이다. 장외에서 개혁을 설파해 온 조국 수석이 장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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