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보이스피싱 사기 ‘두목 검거’ 공적까지 가로챘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5 09:01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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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성자씨 격정 토로…“내 억울함을 풀어 달라”며 청와대 진정서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발산리에 사는 김성자씨(44)는 5월20일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같은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한 지 여섯 번째다.

 

그녀는 “문재인 대통령님, 조국 민정수석님, 저는 평범한 주부로서 3200만원을 보이스피싱에 사기당하고, 우연히 조직의 근원지를 알게 돼 총책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시민입니다. 그런데 경찰은 고의적으로 시민의 공을 가로챘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화성동부경찰서의 징계를 바랍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이면서 조직의 총책(두목)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화성에서 조그만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이곳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렇게 모은 돈 3200만원을 한순간에 보이스피싱에 사기당하고 말았다.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김성자씨에게 총책의 입국을 알리는 자필 진술서를 써서 보내줬다. © 일러스트 배중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조직 정보 빼내

 

김씨의 막내아들은 4살 때인 2012년 5월 주차장 건물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안전망 미설치가 원인이었다고 보고 해당 건물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김씨는 오랜 소송에 지쳐 있었고 상당히 힘든 상태였다.

 

재판을 며칠 앞둔 지난해 1월17일 ‘KB금융’이라면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왜 상대편 건물에 압류를 안 하느냐. 우리가 도와주겠다”면서 “이자는 서민대출로 1~2%다. 우선 압류를 하면 바로 대출이 된다”고 말했다. 오랜 소송에 지쳐 있던 김씨는 소송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아들 통장으로 압류 비용과 절차 비용 명목 등으로 돈을 입금했다.

 

처음에는 5개 계좌에 1600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상대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대출을 해 주지 않았다. 김씨는 “‘전산이 안 돼 시간이 걸린다’고 하고 ‘아들 이름으로 입금해서 오류가 났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른 계좌(번호)를 보내줄 테니 입금하라’고 했고, 그래야 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1월18일부터 21일까지 4일 동안 총 12개 계좌로 3200만원을 입금했다. 이 중 500만원은 친구가 입금했다.

 

돈을 여러 번 입금했는데도 대출이 이뤄지지 않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김씨는 KB금융을 찾아가서 “이런 사람 있느냐?”고 물었고 “그런 사람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때서야 김씨는 “아차, 당했구나”하며 땅을 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데 나도 모르게 소변이 흐르고 정신을 잃었다”며 “며칠을 굶고 넋 놓고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슬러 경찰서로, 은행으로 찾아가 신고했지만 이미 돈을 다 인출해 간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렵게 모은 피 같은 돈을 한순간에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져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경찰에 가서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김씨가 자포자기할 때쯤인 2월1일 밤 이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바로 그 보이스피싱 사기범이었다. 순간 김씨는 머리가 쭈뼛 서는 듯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실컷 욕을 하고 끊었다. 그런데 그 번호로 또다시 전화가 오는 것이다.

 

받아보니 사기범은 “이번에는 속이려는 게 아니다. 나도 범죄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도와주겠다. 총책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겠다”라며 “대신 녹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전화통화를 녹음한 내용을 들고 근처 파출소로 갔다. 그곳에서 경찰관들과 함께 녹음내용을 들었는데 “신빙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다음 날 관할 화성동부경찰서로 찾아갔다. 그런데 경찰의 태도가 뜻밖이었다. 그녀는 “경찰이 비웃더니 ‘또 돈을 보냈냐’ ‘못 잡는다’ 등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부정적인 말만 했다”고 주장했다.

 

김성자씨가 입수해 경찰에 제공한 중국 보이스피싱 총책 최아무개씨(왼쪽 사진)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근거지 © 김성자 제공

그 후에도 보이스피싱 사기범은 김씨에게 전화를 해 왔다. 그녀는 어떻게든 범죄 두목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통화내용을 모두 녹음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꾀를 냈다. 문자로만 오던 증거들을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속여 이메일로 받았다. 이렇게 김씨는 중국에 근거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김씨는 총책이 한국에 입국한다는 사실도 듣게 됐다.

 

‘기회는 이때다’하고 경찰서로 찾아가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의 반응은 이번에도 시큰둥했다. 김씨는 “사기범으로부터 받은 내용과 총책의 이름 등 인적사항과 사진, 입국 예정 날짜, 비행기 시간까지 알려줬다. 그런데 경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인 자신을 우습게 본 것으로 여겼다.

 

김씨는 기가 막혔다. 그녀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을 설득해서 더 많은 정보를 캐냈다. 김씨는 “총책의 최근 사진, 은신처 정보, 중국 산둥성의 사무실 주소, 여기에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개인 정보까지 입수해 경찰에 넘겨줬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범죄 증거물을 갖다 주자 그때서야 경찰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내에 입국한 보이스피싱 총책 최아무개씨(52)를 검거한 후 보도자료까지 내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김성자씨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김씨에게 범인을 검거했다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경찰의 보도자료에는 자신들이 첩보를 입수해 검거한 것으로 돼 있었다. 사실상 김씨의 공적을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찰은 지난 2015년부터 보이스피싱 신고포상금 기준을 기존 100만원에서 최고 1억원까지 올렸다. 경찰 내부 규정에는 자체 보상금심사위원회를 거쳐 금액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범죄신고자 등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을 보면, 사기 규모가 50억원 이상이면 최대 1억원, 50억원 미만이면 최대 5000만원, 사회 이목 집중 사건의 경우 1000만원, 기타 사건이면 100만원이다. 김씨에게는 가장 낮은 금액이 책정됐다. 김씨의 노력으로 총책을 검거한 것에 비춰보면 포상금액이 현저히 낮게 책정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화성동부경찰서는 “사건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포상금액도 보상금지급위원회를 거쳐 적법하게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6개월이 지나도록 포상금과 표창장을 준다는 말이 없기에 7월11일 화성동부경찰서 지능팀장에게 전화했더니 ‘미안하다. 모르고 누락시켰다. 작년에 12명 포상 나갔는데 10만~20만원씩 나갔다. 아줌마는 많이 주려고 한다. 100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며 “‘우리 경찰서는 돈이 없어 컴퓨터 쓴 지도 몇 년 안 된다. 그래서 포상금을 주고 싶어도 많이 못 준다’고 했는데 이거라도 받으려면 받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성자씨가 “너무 억울하다”며 화성동부경찰서의 각성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성자 제공

 

경찰 “사실 아니다, 문제없이 처리했다”

 

김씨는 이를 거절하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녀는 “경기남부경찰청 조사 결과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징계도 없었다. 말단 여직원에게 경고 하나 한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여러 차례 넣었다.

 

김씨는 경찰이 왜 ‘내 공을 가로챘는지’ 화성동부경찰서장에게 직접 따져 묻고 싶었다. 그래서 전임 김석열 서장과 현 박형준 서장에게 무려 22차례에 걸쳐 전화와 심지어 자필편지를 써서 등기로 보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으며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건식 지능팀장은 “현 서장님께 김성자씨가 자필편지를 보낸 것은 맞지만 직접 면담을 요청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5월17일 밤 9시40분쯤 정보계장 등이 김씨를 찾아왔다.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시간이 지난 것이라 ‘포상금 100만원이 전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5월24일 정보계장과 통화를 했다. 당시 정보계장은 “이 사건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자세히 물어봤다. 우리가 사전에 수사팀에서 안내를 해 줬으면 오해가 없었을 텐데 자기네들 일만 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김성자씨 입장에서는 서운할 것 같다. 하지만 추가로 조치할 사항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한 번은 보이스피싱 사기로 수천만원을 당했고, 사기 두목을 잡게 해 줬는데도 경찰이 그 공을 가로채 또 한 번 당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기 두목과 조직에 대한 모든 정보를 경찰에 넘겼는데 신고포상금까지 주지 않으려고 했다”라며 “나는 모든 증거를 다 가져다줬다. 조직의 총책을 잡는 데 내 역할은 200% 이상이라고 본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우리 집까지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면 누가 경찰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정보를 빼낸 것일까. 그녀는 “총책을 잡으면 내 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피해자 명단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분이 자살했다는 소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포상금도 어느 정도 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게 하는 공을 세운 후 더욱 힘들어졌다. 그녀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줄 알았다면 괜히 신고했다며 후회하고 있다. 총책을 잡고도 자신의 돈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김씨는 “분하고 억울하다”며 제대로 된 포상을 바랐다. 그리고 “공을 가로챈 경찰관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 처리에 하자 없었다”

최건식 화성동부경찰서 지능팀장 인터뷰 

 

김성자씨가 보이스피싱 총책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맞지 않는가.

 

그렇다. 그분의 제보가 수사에 도움이 된 것은 맞다.

 

 

그런데 왜 보도자료에 김씨의 역할을 넣지 않았는가.

 

보도자료에는 ‘피해자 신고’라고 해서 내지 못한다. 외부에서 제보해 준 사람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는 없다. 대신 언론사에서 확인전화가 올 때는 피해자 제보에 의해 수사가 시작됐다고 충분하게 설명해 줬다.

 

 

김씨는 경찰이 일부러 누락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에는 지급을 못했지만 지난해 7월11일 보상금 문의전화가 와서 ‘1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수령을 거부했다. 경찰청이 정한 규칙에 따르면, 이 사건의 경우 100만원까지 지급해 줄 수 있다. 그 항목에 따라 정했기 때문에 그것밖에 지급하지 못한다. 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다.

 

 

사건 처리를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사건 처리를 하는 데 하자가 없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직원 한 명이 경고 처분을 받았는데 어떤 명목인가.

 

당시 보상금을 즉시 주지 않았다고 해서 ‘업무 미숙’으로 경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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