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엔 분노한다 무슬림에겐 분노하지 않는다”
  • 김헬렌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5 09:37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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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연쇄테러에도 “관용은 우리의 미덕”…놀랄 만큼 차분한 대응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런던 브리지에서 6월3일 7명의 사상자와 49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5월22일 맨체스터 테러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그것도 영국인이 사랑하는 런던 브리지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런던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6월3일 테러범 3명은 자신들이 탄 흰색 밴으로 런던 브리지 위 인도에 있던 사람들을 치고, 인근 버로우 마켓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찔렀다. 경찰에 의해 사살된 테러범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6월3일 테러가 발생한 런던 브리지 인근에 있는 포터스필즈 공원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 김헬렌 제공

 

英, 이라크전 참전으로 연쇄테러 타깃

 

사건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난 6월6일 필자가 방문한 런던 브리지는 경찰에 의해 차량 통행이 제한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차로 가득했던 런던 브리지 위 도로에 차량이 한 대도 다니지 않는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경찰이 도보 통행은 가능하다고 했지만 끔찍한 사건 현장을 굳이 들어가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런던 시내 곳곳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사망자들을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월5일 추모식이 열린 포터스필즈 공원, 런던 브리지 초입, 런던 대(大)화재 기념비 등에선 잠시 발길을 멈추고 묵념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 사이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이름으로는 안 된다-영국 무슬림 위원회’ ‘모두를 위한 사랑, 아무에게도 가지 않는 증오’라고 쓰인 팻말들도 함께 놓여 있었다. 추모객들은 테러에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무슬림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테러 이후 영국 사회의 ‘관용’을 비판한 테리사 메이 총리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날 추모현장에서 만난 런던 시민 만딥 슬레이드(21)는 “관용은 우리의 미덕이고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테러에 맞서는 것은 각각의 시민들이 계획을 짜서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가 우리 사회의 관용에 대해 비난한 것은 우리 영국 시민들의 공동선(共同善)을 비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런던 시민들은 놀랄 만큼 차분하게 테러에 대응하고 있었다.

 

사실 런던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타깃이 될 것이란 전망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가디언, 데일리메일, 텔레그래프 등 영국 주요 언론들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가디언은 2016년 12월22일자 기사에서 영국 정보기관인 해외정보국(MI6)의 책임자인 알렉스 영거(Alex Younger)의 말을 빌려 “영국이 타격을 입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비슷한 시기 데일리메일 역시 “토니 블레어의 이라크전쟁 지원 등으로 인해 영국에 있는 많은 무슬림 중 일부가 자살 테러에 나설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이처럼 영국 정보기관 수장까지 나서 테러의 위협에 대해 경고했음에도 정작 정부 대응은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MI6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8월부터 런던 테러 위협을 주의(Substantial) 단계에서 심각(Severe) 단계로 올려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웨스트민스터 테러 때에도 심각 단계를 유지하던 영국은 5월23일 맨체스터 테러 다음 날 위급(Critical) 단계로 잠시 상향했다. 그러나 테러 발생 나흘 만인 5월27일 다시 심각 단계로 하향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계속된 테러의 전조(前兆)를 무시해 다음 테러에 대한 예방을 전혀 못했다는 것이다. 런던에 사는 피터 켄트(27)는 “이슬람국가(IS)가 테러하겠다고 공표한 이후 영국 정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더 안전한 보안을 준비해야 했었다”며 “런던 브리지 테러는 이런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정부의 대응을 비난했다.

 

물론 영국 테러가 무장단체에 의한 조직적 테러라기보다는 일반 무슬림들의 자발적 테러라는 점에서 예방이 어려웠다는 반박도 있다. 이번 테러의 경우도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하고 칼을 휘두른 수법으로 미뤄 ‘세련된’ 군사적 조직원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테러범들이 입고 있던 자살용 조끼는 가짜였고 공격 수단도 총탄이나 폭탄이 아닌 칼이었다. 이에 대해 6월5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소프트 타깃 선택과 DIY(자가) 기술 조합이라는 테러의 새로운 조류(潮流)가 안보상 허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6월6일 런던 브리지를 알리는 표지석 앞 추모공간에 런던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김헬렌 제공

 

“런던 테러는 이미 모두가 예상했다”

 

그렇다면 런던이 이처럼 연쇄테러의 타깃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데일리메일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데일리메일은 런던이 테러의 표적이 된 첫 번째 이유를 이라크전 참전으로 꼽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7월 영국군의 2003년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 과정을 조사한 ‘칠코트 보고서(Chilcot Report)’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 전쟁은 전혀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결정의 주요 명분인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그래서 이라크는 전혀 영국의 안위에 즉각적인 위협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 결과는 많은 무슬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현 총리인 테리사 메이가 내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경찰 수를 감축한 것이 테러의 간접적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메이 총리가 내무부 장관이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경찰은 2만 명가량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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