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주도 공공건축물 계획의 ‘좋은 예’, 경북 영주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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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도시문화기행 (15) 경북 영주] 2007년 통합 마스터플랜 세워 도시 전체 아우르는 공공건축 계획 시행

 

경북 영주시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유명한 지역특산물인 영주사과나 풍기인삼, 소백산국립공원이라는 국보같은 자연 풍광, 부석사나 소수서원처럼 유서 깊은 역사 문화유적들 덕분이다. 영주시는 ‘선비의 고장’임을 내세우면서 도시가 갖고 있는 매력적인 전통문화유산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로서 영주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주시는 2007년부터 국토연구원의 부설 연구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제안을 받아 ‘공공건축⋅공공공간 통합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심지어 서울보다 먼저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통합 마스터플랜 덕분에 영주시는 2009년부터 각종 디자인상, 건축상을 휩쓸고, 정부가 지원하는 온갖 디자인 시범사업을 따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주시의 통합 마스터플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풍기읍 성내리의 풍기읍사무소 건물. 2013 대한민국 신인건축사 대상, 2013 한국농촌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 김지나 제공

 

공공건축의 정의는 분명하게 내려져 있지않다. 보통 공공부문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건축물을 뜻하곤 하는데, 요즘은 그보다 공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건축물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는 추세다. 영주시가 통합 마스터플랜을 만들기로 한 2007년은 건축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공공건축의 중요성을 법적으로 명시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공건축이 필요한 분야는 다양하고, 그에 따라 관리주체도 달라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비슷비슷한 공공공간들이 한 도시 내에 중복돼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의 어떤 공간에 무슨 콘텐츠가 필요한지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계획한 ‘통합 마스터플랜’이 영주시 도시디자인의 괄목한 발전을 이루게 된 ‘신의 한수’가 된 것이었다.

 

영주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문수면 조제리의 보건진료소. 마치 카페같은 외관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이용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도 소소하게 있다는 후문이다. ⓒ 김지나 제공

 

 

 

‘신의 한수’ 된 통합 마스터플랜

 

더군다나, 도시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특히 영주시와 같은 지방소도시의 입장에서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니다. 때문에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각종 공모사업에 도전하게 되는데, 영주시는 통합 마스터플랜이 있었기 때문에 더 성공률이 높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떤 종류의 일이든, 분명히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에 따라, 또는 업무분야에 따라, 자기 영역에만 갇혀 편협한 사고에 그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특히 업무분업이 확실하다 못해 서로 배타적일 때도 있는 공무원 조직은 더더욱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막스 베버가 칭송했듯 관료제가 필요한 일도 분명 있지만, ‘도시’라는 공간을 다룰 때에는 그런 관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영주시가 증명한 셈이었다.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에 있는 보건진료소, 풍기읍 성내리의 풍기읍사무소, 그리고 가흥동의 한절마경로당은 영주시 통합 마스터플랜의 초기 성과로 알려져 있는 공공건축물들이다. 필자가 조제리를 찾은 건 6월12일, 본격적인 더위가 밀려오기 전이었다. 조제리 보건진료소는 영주 시내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소위 농촌지역에 있었다. 이런 외진 마을에 아기자기한 외관의 건물이 보건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영주시 가흥동의 시립도서관. 차가 없이는 올라가기 힘든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도서관을 이용해야 하는 청소년들을 배려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 김지나 제공

 

이 마을의 또 다른 명물인 풍기읍사무소는 사방으로 입구가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사진으로만 봤을 땐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하게만 보였던 한절마경로당 건물은 어르신들의 흥취가 묻으면서 정겨운 동네 경로당이 돼있었다. 이용하면서 이런저런 아쉽고 불편한 점들도 있지만, 주민들 스스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중이라 했다. 건축가의 디자인감각과 실제 이용하는 주민들의 상식 사이에 있는 간극이 메워지는 중이랄까. 그런 과정조차 제법 의미가 있다, 싶었다.

 

 

물론 영주시의 모든 공공건축물이 건축미가 뛰어나거나 혁신적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 만들었다는 가흥동의 시립도서관과 문화예술회관은 보통의 관공서 건물들이 으레 갖고 있는 지루한 외관으로 치장돼 있었다. 게다가 산 위에 지어져, 가장 중요한 이용객이 되어야 할 청소년들에게는 지독하게 불친절한 보행환경이었다. 획기적인 도시-건축 디자인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영주시이지만, 아직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습들을 완전히 버리진 못한 듯했다.

 

영주시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센세이셔널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성 있는 도시재생을 꾀하고 있다. 내륙도시인 영주시에는 섬이 하나 있는데, 영주시를 통과하는 중앙선 철도와 영동선 철도 때문에 생긴 삼각형의 고립된 땅이다. ‘삼각지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랜 세월 개발제한을 받으며 열차소음에 시달려 오고 있었다.

 

영주시 휴천동 '삼각지마을'에 들어서는 영주시노인복지관. 주변으로는 중앙공원과 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있다. ⓒ 김지나 제공

 

 

 

‘좋은’ 건축물의 힘

 

올해 6월 드디어 이 설움의 땅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통합 마스터플랜이 밑거름이 돼 2010년부터 시작하게 된 국토교통부의 국토환경 디자인 시범사업이 그 씨앗이었다. 그 결과 이 일대에 들어선 영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과 노인복지관,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중앙공원은, 영주시의 오랜 치부와도 같았던 이 삼각지마을의 성공적인 변신을 예견하는 듯 했다.

 

좋은 건축물은 대단한 힘을 갖는다. 멋진 경관을 만들어내고 주변의 분위기도 바꾼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던 삭막한 동네에서 왁자지껄 모임이 벌어지게 할 수도 있고, 버려지고 방치됐던 마을을 매력적인 지역명소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했다고 해서, 공사비를 많이 들였다고 해서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그것이 어떤 한 개인이 소유하는 건물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공건축물이라면 더더욱 ‘좋은 건축물’이라는 것의 정의는 민감해진다. 건축물이 들어서게 될 땅의 맥락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기존 도시구조와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잠재적 이용객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며,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돼야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는 영주시의 통합 마스터플랜은 다른 소도시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테다. 영주시 스스로도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한 도시환경을 구현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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