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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습니까?”

테러·대형 화재 늑장 대응, 취임 1년 만에 사퇴에 몰린 메이 英 총리

김헬렌 영국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9(Thu) 14:30:00 |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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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 오전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의회 개원식이 열렸다. 영국 의회 개원식 주요 순서에는 ‘퀸스 스피치(Queen’s speech)’라고 불리는 영국 여왕의 연설이 포함돼 있다. 통상적으로 이 연설에는 개원 후 다뤄질 의회의 입법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날 엘리자베스 여왕은 연설을 통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법안 등 테리사 메이 정부의 2년 차 주요 입법계획을 공개했다. 메이 총리는 2016년 7월 총리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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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발생한 최악의 화재”

 

의사당 안에서 메이 정부의 주요 입법계획이 여왕의 입을 통해 공개되는 그 시각, 밖에서는 메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영국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뤄지고 있었다. 시위 참석자들은 “메이의 사퇴만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외쳤다. 시위는 ‘그렌펠을 위한 정의를’이란 구호 아래 진행됐으며, 시위대는 이날을  ‘분노의 날(Day of Rage)’이라고 불렀다.

 

한국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듯이 ‘그렌펠’은 6월14일 화재가 발생한 24층 높이의 공공임대아파트 이름이다. 이날 발생한 화재로 현지 시각 6월22일까지 79명에 달하는 주민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언론에서는 이번 참사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최악의 화재로 표현하고 있다.

 

영국 관계기관 조사에 따르면, 이번 화재가 커진 것은 외벽에 사용된 폴리에틸렌성 클래딩(피복) 때문이다. 디자인을 위해 주로 사용돼 왔지만 대형 화재의 원인이 되며 미국 등에선 사용이 금지됐다. 영국은 높이 18m 이상의 건물에선 폴리에틸렌과 알루미늄 철판이 사용된 클래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그렌펠타워 관할 구청인 켄싱턴·첼시 구청은 2014년 8월29일부터 2016년 7월7일까지 총 16회에 걸쳐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구청은 불에 타기 쉬운 폴리에틸렌성 클래딩이 외벽에 사용된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즉 이번 화재는 사실상 인재(人災)라는 것이 영국 국민들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영국 국민들의 분노를 키운 것은 메이 총리의 늑장 대응이었다. 메이 총리는 사고 후 12시간이 지나서야 내각회의를 소집했고, 현장을 방문한 것도 이틀이나 지나서였다. 그조차도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소방관들과만 대화를 한 뒤 돌아갔다. 이후 BBC 인터뷰에서 “사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자가 만난 시위 참석자 중에서도 메이 총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토리(보수당의 애칭)는 아웃, 코빈(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으로 돌아가자’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고 있던 런던 시민 제이드 스콧(42)은 “메이의 정책은 인종차별과 가난한 이를 차별하는 법”이라며 메이의 사퇴가 영국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집권 여당인 보수당 소속이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 칼럼 히브론(27)은 “실종자, 사망자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애초에 화재 대응과 건물의 스프링클러 설치 등에 힘썼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보수당의 긴축정책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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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에서도 ‘메이 사퇴론’ 불거져

 

메이 총리에 대한 영국 국민의 분노는 단순히 그렌펠타워 화재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은 최근 몇 달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연쇄테러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5월22일 맨체스터 테러에 이어, 6월3일에는 런던브리지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런던이 테러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영국 정보기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메이 정부는 이렇다 할 예방을 하지 못하고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심지어 그렌펠타워 화재로 런던 시민들이 충격에 빠져 있던 6월19일(현지 시각)에도 런던 북부 핀스버리 파크 모스크에서 또 한 번의 테러가 일어났다.

 

잇따른 테러와 대형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으로 인한 메이 총리의 사퇴 여론은 점차 커져가고 있고, 정치권도 이를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에서 메이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메이 총리의 소속 정당인 보수당에서도 사퇴론이 불거지고 있다.

 

메이 총리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화에 나섰으나 성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메이 총리는 6월19일 런던 북부 핀스버리 파크 모스크 인근 차량 돌진 테러 현장을 찾았다. 테러가 발생한 지 약 12시간 만이다.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 당시 24시간이 훌쩍 지나 사고현장을 방문한 것에 비해 상당히 빨라진 대응이다.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 당시 늑장 방문에 비난 여론이 일자 재빨리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테러 현장을 방문한 메이 총리를 기다린 것은 성난 영국 국민들이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핀스버리 파크 모스크 앞에서 한 남성은 메이 총리를 향해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습니까? 더 빠른 택시를 탔습니까?”라고 비꼬았다. 급기야 메이 총리는 6월21일 의회 연설에서 고개를 숙였다. 메이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이번 화재는 사람들이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국가가, 중앙과 지방 차원에서 돕지 않은 것”이라며 “총리로서 그런 불이행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는 그렌펠타워가 위치한 켄싱턴·첼시 지역 내 피난민들에게 3주 안에 새 거주지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저가 150만 파운드(약 21억7000만원) 상당의 고급 아파트 68채도 매입했다. 하지만 이런 사후약방문 식의 뒤늦은 대응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것이 영국 국민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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