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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보위성의 무리수 김정은을 궁지로 몰아넣다

[평양 Insight] 웜비어 체포부터 심문까지 보위성 작품, 北·美 관계 악화될 듯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6(Mon) 15:00:00 |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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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국면 속에서 북한과 탐색적 대화에 나섰던 한·미 양국이 ‘웜비어 사망’이란 복병을 만났다. 북한 당국에 의해 18개월 동안 억류됐다 식물인간 상태로 귀환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6월19일 숨지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북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대화·교류의 물꼬를 트려던 문재인 정부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버지니아주립대 3학년에 다니던 웜비어는 지난해 1월 관광을 위해 방북했다. 그는 자신이 머물던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정치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어 같은 해 3월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웜비어를 구출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과 제재의 고삐를 당기는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웜비어 석방을 위한 협상을 지시했다. 5월에는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북한과 첫 접촉을 가졌다. 윤 특별대표는 6월초 뉴욕 유엔본부의 자성남 북한대사를 만났고, 12일 방북해 웜비어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이튿날 항공편으로 웜비어를 싣고 귀환하면서 사태는 해결 쪽으로 옮겨가는 걸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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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北에 억류된 미국 시민권자 3명

 

하지만 불과 엿새 만에 웜비어가 사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건강했던 젊은 대학생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의료진은 웜비어가 코마 상태에 빠졌던 원인을 찾지 못했고, 가족들이 부검을 반대해 직접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못했다. 웜비어가 지난해 3월 재판을 받은 직후 일종의 식중독 증세인 ‘보툴리누스 중독증’을 보이다가 수면제를 복용한 후 의식불명에 빠진 것이란 북한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웜비어가 북한 당국에 의해 억류돼 사실상 인질 신세가 된 데는 북한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성이 핵심 역할을 했을 것이란 게 탈북 인사들의 지적이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웜비어의 사소한 행동을 빌미로 사건을 조작하거나 부풀리고, 재판 등의 쇼를 벌이는 전 과정을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이 제시한 호텔 CCTV 영상에는 한 외국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복도에 걸린 게시물을 떼어내는 장면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북한은 이를 두고 웜비어가 정치선전물을 훔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웜비어의 지인 등은 방북 중에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웜비어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반박한다. 화면상의 인물이 웜비어라고 확증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을 체포해 ‘체제 전복’이란 엄청난 혐의를 씌우는 데 보위성이 움직이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김정은에게 보고도 이뤄졌고, 비교적 세밀한 대목에 대한 지시도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일로 보위성이 궁지에 몰렸을 것이란 게 우리 정부 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 국민을 체포해 억류하면서 대미 협상의 카드로 써왔던 전술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그동안 장기 억류당했다가 풀려난 미국인들이 고문이나 학대 등 부당한 대우를 석방 이후 폭로하기는 했지만 큰 파장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웜비어 사태는 다르다. 젊은 미국 대학생이 울며 선처를 호소하는 장면이 북한 TV를 통해 미국에 보도돼 관심이 쏠렸었는데,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채 귀환하고 며칠 뒤 숨진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도 억류하고 있는 미국 시민권자인 김동철 목사와 김상덕·김학송씨 등 3명의 신병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거리가 됐다.

 

국가보위성은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사태에 휘말려 어수선한 가운데 웜비어 충격파를 맞고 있다. 앞서 보위성은 지난해 말 노동당에 대한 무리한 수사로 과장급 간부를 숨지게 하는 등의 전횡으로 김정은의 진노를 샀다. 이 때문에 김원홍 보위상이 지난 1월 대장 계급에서 강등당하고 해임되는 조직의 위기를 맞았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파악 내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김정남(김정은 이복형) 암살 사건에도 깊숙이 관여했지만 깔끔한 일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됐다고 한다. 김정은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지만 오히려 국제사회에 ‘이복형을 죽인 잔혹한 지도자’로 김정은을 각인시키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보위성의 무리수는 계속됐다. 지난 5월에는 이른바 보위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 중앙정보국(CIA)과 한국의 국가정보원(NIS)이 김정은 제거작전을 벌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일하던 북한 벌목공 김아무개씨를 한·미가 매수해 “금수산태양궁전행사(김일성·김정일 시신 보관 시설)와 열병식, 군중 시위 때 우리 최고수뇌부를 노린 폭탄테러를 감행할 모의를 했다”는 게 보위성의 발표였다. 하지만 국가 정보기관이 만들어낸 사건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엉성하고 터무니없다는 지적과 함께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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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은 잔혹한 정권”

 

웜비어 사태의 파장은 만만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웜비어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직후 북한 김정은 체제를 “잔혹한 정권(brutal regime)”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주목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법규범과 기본적 인간의 품위를 존중하지 않는 정권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런 비극을 예방하려는 우리 정부의 결심을 더욱 굳게 한다”는 입장을 냈다는 대목이다. 미국 의회와 국민여론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북·미 관계개선 모색에 제동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웜비어 사망에 애도 입장을 내고 북한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는 등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으로 불거진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불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웜비어 사태가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도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웜비어는 2013년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와이오밍 고교를 졸업하면서 학생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하나의 위대한 쇼가 끝났지만 수백 개의 후속편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 이후 새롭게 열릴 다양한 세상을 말했던 그의 축사는 이제 웜비어의 죽음이 가져올 북·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변동을 예고하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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