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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안성기 “내 배우 인생에 ‘은퇴’란 없다”

데뷔 60주년 맞은 국민배우 안성기 ‘백발 청년’ 배우 안성기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박준용 기자 ㅣ juney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7(Tue) 11:30:00 |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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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늙수그레하게 나오겠네.”

 

배우 안성기는 하얗게 센 머리와 흰 수염을 매만졌다. 시사저널의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서면서다. 그는 《제7광구》 《사냥》 등 최근 출연작에서 백발의 모습이었다. 안성기는 백발이 탈색이 아닌 자신의 본모습이라 말해 왔다. 셔터가 눌리자 카메라 렌즈를 향해 그가 웃었다. 웃는 그의 눈꼬리에 부채꼴 주름이 피었다. 백발과 어울리는 주름꽃이었다.

 

그의 눈주름을 두고 절친한 후배 배우 박중훈은 “살아온 훈장 같다”고 했다. 그의 나이 66세. 배우 안성기의 영화인생은 자신의 나이보다 단 여섯 살 어린 60살이다. 1957년 6살 때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서 데뷔했고, 이제껏 약 160편의 영화(공식기록 약 130편)에 출연했다. 올해 4월 데뷔 6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기념전을 했는데, 이 행사에서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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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산증인인 안성기지만, 그의 앞에 붙일 수식어로는 ‘원로’보다 ‘청년’이 어울린다. 그가 쌓은 필모그래피가 대체로 신선하고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다. 아역이 아닌 성인배우 안성기에게 대종상 남우신인상을 안긴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부터가 그랬다. 사회적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그린 이 영화는 “1980년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지리산 빨치산 수기를 그린 《남부군》, 베트남 참전용사의 후유증을 조명한 《하얀전쟁》 등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영화 《사냥》에서는 액션연기에 나서 ‘백발람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 영화에 출연…범상치 않은 조합

 

시사저널 취재진은 6월21일 오후 서울 중구 신영균문화예술재단에서 배우 안성기를 만났다. 그는 이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서영수 감독이 본지의 취재에 동행해 인터뷰 대담을 맡았다. 서 감독은 1984년 한국에서 최연소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현재 미국시나리오작가협회 정회원이자, 차(茶)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배우 안성기는 남색 셔츠에 맞춘 남색 스웨이드 구두를 신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연회색 면바지는 말아 올려 ‘롤업’한 채였다.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노쇠하지 않는 정신과 육체를 늘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그는 최근 새로운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간의 시간》 촬영이다. 김기덕 감독과 배우 안성기의 만남이라. 조합이 범상치 않았다. 베니스영화제·베를린영화제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작품상 등을 수상한 ‘명장’이지만, 작품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실험정신과 작가주의로 아직도 ‘아웃사이더’ ‘비주류’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김 감독이다.

 

지금껏 수많은 감독과 함께 작업한 국민배우 안성기도 김 감독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함께 일해 보니 김 감독의 에너지가 대단하다”고 했다. 영화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굳건히 쌓은 김기덕, 그리고 안성기. 두 거장의 만남이 어땠을지가 우선 궁금했다. 

 

 

김기덕 감독하고는 처음 작품을 하게 됐다.

 

예전에 일찍 같이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이 같이하자고 했는데, 그 당시 여러 가지로 안 맞았다.

 

 

김 감독 영화는 표현이 센 편이라 배우 안성기와는 잘 안 맞을 거라는 시선도 있다.

 

김 감독 작품이 자기 세계가 확실하고 영화가 센 편이다. 요즘은 부드러워졌다. 물론 이번에도 영화 표현에 센 수위가 있다. 그래도 이전보다 많이 생략하고 순화해서 찍었다.

 

 

촬영 분위기는 어땠나.

 

이미 끝났다. 김 감독이 직접 제작·감독하는 거라 저예산이다. 촬영 날이 길어지면 안 되니까, 하루 열 장면 이상씩 찍었다. 정신없이 찍는다.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어, 어, 어’ 하다가 끝난다(웃음).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김 감독이 하루에 그만큼 많이 찍는 게, 정말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단하다. 김 감독이 말하길 자신도 모니터에 앉아서 ‘오케이, 레디 액션’ 하면 좋겠는데, 지금까지는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어떤 땐 (감독이) 카메라 직접 잡은 적도 있고(웃음).

 

 

그래도 안성기를 비롯해 류승범·장근석·이성재 등 이번 김 감독 영화는 호화 캐스팅이다.

 

딱 강릉 바로 아래 (강동면) 안인진리에 ‘함정(艦艇) 전시관’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졌던 군함 안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다. 상당히 좋은 배우들이 참여를 했다. 출연진도 많다. 강릉에 사시는 분도 보조 출연자로 나왔고, 경성대 학생들도 와서 도와주고…. 김기덕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영화다. 사람도 100명 정도 나오는데, 이게 다른 영화로 치면 1000명 정도 나온 거다(웃음).

 

 

어떤 이야기며, 어떤 의미를 담았나.

 

모든 게 함정 속에서 이뤄지는 가상의 이야기다. 인간의 근원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먹고 다시 살아난다. 인간이 흙이 되고 흙 속에서 다시 인간이 되고 이러한 순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인공 이름이 ‘이브’다. 함축을 해 놓은 거다.

 

 

김기덕스러운 영화이긴 한 듯하다. 김 감독과의 만남이 빨리 끝나니 어떤가.

 

한 작품을 그렇게 빨리 끝내긴 처음이다. 좋기보단 너무 아쉽다. 친해질 만하고, 스태프하고도 알 만하니까 끝났다. 같이 며칠 있었던 거기(촬영장)는 다른 데와 단절된 분위기의 장소였다. 다른 영화는 어디 옮겨 다니면서 막 찍고 끝나니까. 이 영화는 한 군데서 하다가 ‘땅’ 끝났다.

 

 

과거 1980~90년대 영화 제작 시절이 떠올랐겠다.

 

예전에는 필름 값이 비싸니까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자’였다. 그때 가장 부러웠던 게 메이킹 필름 보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필름 돌아가는 중인데도, (스태프가) 슬레이트를 들고 ‘레디 액션’ 하고 슬슬 천천히 (장면에서) 빠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귓방망이 감이지(웃음). ‘인마, 이게(필름) 돈이 얼마인데. 빨리 나와’ 하면서 정신없지 않나. 우리나라 영화가 이제는 카메라도 여러 개 마음대로 쓰고 종류도 다양하다. 분위기에 맞는 조명기기도 있다. 좋아졌다.

 

 

《인간의 시간》 속 역할은 어땠나.

 

시나리오만 짧은 시일 내에 7~8번 계속 봤다. 그 생각만 계속했다. 책을 보다가도 ‘가만있어 봐’ 하고 《인간의 시간》을 봤다. 이 영화에선 내가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 예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대사가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전화로 통화하는 말은 있었다. 일본 영화 《잠자는 남자》에서 식물인간 연기를 했을 때도 ‘산 너머에도 또 다른 마을이 있죠’라는 일본 말 한마디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단 한마디도 없다.

 

 

대사가 없으면 극중 이름은 있나.

 

‘노인’이다(웃음). 배우들이 극중 나를 잘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할아버지라고 한다. 말 안 하려니까 또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장면마다 똑같으면 안 될 텐데’ 하고.

 

 

그래도 대사가 없는 영화를 선호한다고 들었다.

 

나는 좋아한다. 대사가 있으면 쉬는 시간에 쉴 수 없다. 쉬는 시간에 대사를 어떻게 할까, 상기해야 한다. 대사 없으면 그런 건 없지 않나. 그때 어떤 감정을 갖는 게 맞나에만 집중한다. 암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다.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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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출연 70편 이후 공백이 오히려 기회”

 

‘천재소년 안성기.’ 아역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그는 충무로에서 ‘천재’라 불렸다. 아역으로 10여 년간 약 70편에 출연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업으로 돌아갔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그는 학군장교로 복무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베트남이 공산화됐다. 한국은 베트남과 교류를 끊었다. 그가 전공한 베트남어의 쓰임새가 적어졌다. 이런 이유로 배우 안성기는 전역 이후 스크린 복귀를 기다리며 ‘바쁜 실업자 생활’을 했다. 1980년에 《바람불어 좋은 날》로 다시 충무로 중심에 섰다. 영화를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면밀히 곱씹으며,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았다.

 

 

영화 출연한 게 약 130편 되나. 언론에는 그렇게 나오는데.

 

정종화 선배(영화연구가) 얘길 들으면, 어렸을 때 출연한 게 실제로는 70편 정도인데 포털사이트 자료에는 30편 정도로 나온다. 그 (포털사이트) 자료에는 합쳐서 130편 정도 되나 보다. 사실은 160편 정도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했던 (영화) 필름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아역으로 분명히 70편 정도 했다. 10년에서 11년간 했다. 1년에 7편만 해도 70편 아닌가. 그때 1년에 7편 이상을 했으니까. 사실 작품 편수 많은 게 자랑거리는 아니다. 외국 보면, 평생 했는데도 30편 정도다. 그래도 하나같이 좋은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 있다.

 

 

그 정도로 아역배우로 출연을 많이 했는데, 성인배우 전환 때 다들 고비가 있는 것 같다.

 

내 경우도 특수하다. 계속했으면 힘들었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대학교·군대 시절을 거치며 다 잊혔다. 어렸을 때 아역 하던 사람이지만 얼굴이 바뀌었다. 어릴 때 통통했는데 얼굴이 길쭉해져서 ‘변했네’ 하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줬다. 영화를 보는 젊은 관객은 신인으로 생각했다. 그게 유리한 거다. 그 사람에 대한 잔상이나 고정관념이 없기에. 그러고 보면 내가 어릴 때 각인될 정도로 막 뛰어나게 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개구쟁이 하면 나왔던 놈’ 정도(웃음). 《하녀》 같은 데 봐도 ‘진짜 깜찍하게 잘했네’가 아니라 그냥 했네, 이 정도다. (영화계에 회자된 것처럼) ‘천재소년’이 아니다.

 

 

전역 이후 대학원 가서 연기 공부를 더 하려고 했던 걸로 안다.

 

전역하고 나서 적금 든 돈이 있었다. ‘영화에 가까이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연극영화과 대학원 1학기를 등록했다. 전공은 연극이론으로 했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거다(웃음). 원서(原書)를 봐야 되고. 나는 공부하고 잘 안 맞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너무 수업에 많이 빠졌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지. 기초가 없어서…. 대학원 리포트 네 개를 써야 하는데, 두 달 동안 하루 두세 시간밖에 못 잤다. ‘이건 즐겁지가 않네’ 해서(웃음), 한 학기 하고 접고 현장 영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운동하고 시나리오 써 보고, 문화원 가서 매주 2~3일씩 영화 계속 보고, 저녁에는 영화 배우러 다녔다. 바쁜 실업자 생활을 한 2년 동안 했다.

 

대학 때 언어를 전공했던 나라(베트남)가 갈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막막했겠다. 다시 영화를 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을 거 같다. 

처음에 막연하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에는 암울했다. 사람들도 한국영화를 안 좋게 생각했다. 그때 국가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새마을·반공 순수문예영화 등만 만들었다. 사랑 쪽(로맨스)만 (규제를) 풀어놓은 거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전부 그것(로맨스)만 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죽고 나서 사회 변화가 생겼다. 1970년대에 못 만든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의 매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민주화되면서 이야기 폭도 넓어졌다. 새로운 인물이 영화계에 들어왔다. 1970년대보다는 숨통이 약간 트인 시기에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는 영화를 했다. 그다음부터 하고 싶은 작품을 했다.

 

 

“멜로영화? 여배우 마주 보는 게 힘들다”

 

멜로영화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사랑 얘기는 될 수 있으면 선택 안 했다. 1970년대에 멜로가 많았으니까, 그때 못했던 얘기들을 이후 전부 하고 싶었다. 보통, 영화로까지 표현되면 그 사회는 거기까지 열려 있다. 가령 《칠수와 만수》가 영화화된 뒤 연좌제 문제는 얘기할 수 있었다. 1990년 《남부군》도 빨치산 얘기다. 결국 빨치산이 주인공이고, 국방군이 적이었던 것 아닌가. 그 당시는 그렇게 표현이 안 됐다. 《하얀전쟁》도 그렇다. 베트남에 용감한 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가 (베트남을) 원조해 준다는 것만 (영화화)했지, 우리나라 군인이 피 흘린 대가를 받은 전쟁이고, 후유증 앓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반전(反戰)의 얘기를 확실하게 다루는 영화가 없었다. 그때 시대정신이 있는 영화를 많이 했는데, 요새는 그런 게 없다. 오히려.

 

 

또 멜로영화 제의가 들어오면 할 건가.

 

기본적으로 그런 영화를 안 해서 힘들더라. 여배우 마주 보는 것도 힘들다. 《기쁜 우리 젊은 날》처럼 첫날밤에 샤워하고 다시 정장 갖추고 나와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막 안절부절못하는 표현들(웃음), 그런 식으로는 하면 좋다. 일반적으로 멜로드라마틱한 표현들, 그건 난 못하겠다.

 

 

들어온 시나리오 중 거부한 게 1000개도 넘을 것 같다. 특별한 사례가 있나.

 

요즘에는 일일이 만나서 거절을 못한다. 예전에는 감독 만나서 했다. (요즘은) 문자라는 편리한, 아주 서로들 양해해 주는 게 있어서(웃음). 예전에 어떤 곳에서 ‘영화 하나 힘 합해서 하는데 출연 좀 하라’고 하는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계속 거부를 했다. 그런데도 ‘같이해야지’ 하면서 (제작진이) 현장에 매일 왔다. 그 뒤로 ‘제가 가겠습니다’ 해서 (스태프들한테) 이 영화를 안 하는 이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말씀드렸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너무 뻔하다. 한번 같이한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언제든지 좋은 시나리오는 하겠다. 하지 말라 해도 하겠다. 나중에 뵙겠다’ 하고 왔다. 그다음부터 좀 편해졌다. ‘걔는 좋은 시나리오 아니면 안 해’ 하는 인식이 충무로에 퍼졌다.

 

 

구체적으로 거절한 배역을 말해 줄 수 있나.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시나리오를 봤었다. 결국 나중엔 김 감독이 직접 자기가 연기를 했던 그 배역이다. 시나리오상에서는 (그 배역이) 얼음을 깨고 물속에 벌거벗고 있는 게 많다. ‘어휴, 힘들겠다’(웃음) 싶었다. 또 다른 영화를 찍고 있어서 두 개 같이하기가 애매해서 못한다고 했었다. 또 하나가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다. 배역(아버지)이 결국 딸을 죽인다. 나는 그때 ‘죽이는 거 못하겠어’ 하며 힘들어서 안 되겠다 했다. 나중에 보니 영화 내용이 그렇게는 안 갔다고 한다. 진즉에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했을 텐데(웃음). 내가 ‘안 죽이는 거면 한다’ 하기에는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거 같아서 당시 그냥 못하겠다고 했다. 김 감독이 속으로 은근히 ‘두 개나 거절하다니’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할래, 할게’ 했다(웃음).

 

 

안 했지만, 후에 탐났던 캐릭터가 있었나.

 

물론 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중 송강호씨 역할이다. 당시 제작프로듀서가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를 봤다. ‘안 하겠다, 하겠다’가 아니라 보고 나서 ‘굉장히 세네’ 하고 생각했고, 말미를 뒀었다. 그걸 (제작진 쪽에서) 완곡한 거부 의사로 들은 거 같다. 송강호씨가 잘해서 결국 좋은 영화가 됐다. 그 캐릭터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영화제, 국가가 너무 말이 안 되는 식으로 몰아가”

 

영화계를 대표해 온 그가 본 현재의 영화계는 어떨까. 최근 영화계의 두 축제가 표류하고 있다.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또 하나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대종상영화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 상영을 막기 위해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논란이 나왔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사퇴압박을 받았고, 국고 지원이 축소됐다. 대종상도 파행으로 치달았다. 심사의 공정성을 두고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2015년에는 시상식을 지원해 온 조직위원장이 비리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배우 안성기는 이 상황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영화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짐을 짊어진 그다. 2005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도 집행위원장으로 이끈다.

 

 

 《다이빙벨》 사태 이후 부산국제영화제가 표류했다. 당시 수습할 ‘구원투수’로 안성기가 적임자라는 얘기가 많았다.

 

적임자보다 무난하다는 쪽이었다. 누구도 반대가 없을 뿐이다. 그 일을 해 나가는 데 적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걸 한다는 것은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감수를 해야 하는데, (내가) 감수하는 걸 힘들어한다. 나는 영화 현장을 좋아하고 거기서 행복하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 반면에 지금의 내 몫은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지 않나.

 

 

《다이빙벨》 논란을 어떻게 봤나.

 

그냥 영화제의 한 다큐로 놔뒀으면 아무 문제 없었다. 그 얘기의 주제는 개인의 잘못이 있지만 시대를 사는 기성세대 모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모두들 ‘우리가 잘못이야’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영화제에 압력을 넣고, 집행위원장을 몰아가니까…. 이 영화제가 우리나라 위해 하는 역할에 비하면, (국가에서) 너무 말이 안 되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명예회복을 했으면 좋겠다.

 

 

대종상도 잡음이 많다.

 

대종상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이 많았다. 대종상은 예전에 국가에서 했다. 민간에 이양되고 시작할 때는 좋았다. 그런데 해 나가는 과정·방법 자체가 좋지 않았다. 제일 좋다는 영화제가 이상하게 변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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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영화 오래하는 게 내 꿈이다”

 

평소 가정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가정은 진짜 중요하다. 내 모든 힘의 근원은 거기서 나온다. 그게 아니면 어디에서 중심을 잡고 시작을 하나. 내 뿌리는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꿈이 뭔가.

 

무조건 영화 오래하는 게 꿈이다. 현장에서 ‘좋다’ 할 때까지는 있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에너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 체력이 돼야 연기가 되는 거니까, 운동 열심히 하고 준비하고 있다. 노쇠하지 않는 정신과 육체를 늘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

 

 

후배 영화인에게 조언하자면.

 

나나 잘해야지 뭘(웃음)…. 말로 하는 것보다 내가 잘 살아가면 될 것 같다. 말로 하면 그만큼 (의미가) 날아가버리는 거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오스카상을 세 차례 수상한 명배우)가 최근 은퇴선언을 했다. 하지만 배우 안성기의 은퇴선언은 없다고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진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죽기 살기로 한 연기력이기에…. (내가 은퇴 안 하더라도) 선택은 잘해야 할 것 같다. ‘저 사람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자꾸 왜 나와’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 ‘아직도 보고 싶네’ ‘아직도 반갑네’ 하는 느낌이 있을 때까지는 괜찮다. 그게 언제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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