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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유모차 가는 길에 막힘이 없다

독일, 장애물 없는 건축 의무화…한국 ‘노 키즈 존’ 논란의 대안 될까

강성운 독일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6(Mon) 18:11:00 |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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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근 ‘노 키즈 존(No kids zone)’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노 키즈 존이란 어린이를 동반한 보호자의 출입이 제한된 장소를 말한다. 갈등과 해결책의 초점은 실패한 아동 교육과 부모의 몰지각한 행태 등 개인의 문제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노 키즈 존은 도시 공간과 공공 건축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일원인 아동과 보호자를 도시 공공장소에서 배제시키지 않으려면 환경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일의 공공 건축 사례를 통해 대안을 모색해 봤다.

 

 

“아이 낳은 후 이동 시 편의에 변화 없어”

 

지난 6월15일 필자는 한 독일 가족의 시내 나들이에 동행했다. 독일 본(Bonn)에 사는 안나 나우만과 옌스 슐로터벡은 32개월 아이를 둔 커플이다. 목적지는 집에서 1.6km가량 떨어진 시내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커플의 허락을 구하고 직접 유모차를 밀며 걸었다. 보통 성인 걸음걸이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천천히 걸으니 그 두 배인 40분 정도가 소요됐다. 무심코 다니던 길에 새삼 다양한 장애물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건널목, 지하도, 버스 터미널, 울퉁불퉁한 돌조각으로 포장된 보도 등은 버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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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보 유모차 운전자의 도전을 쉽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보도와 도로는 예외 없이 완만한 경사면으로 연결돼 있었다. 역과 연결된 지하도 역시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를 통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횡단보도에서도 유모차가 길을 건널 때까지 자동차들이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버스 역시 유모차는 물론 휠체어와 자전거가 원활히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바닥이 낮고 차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필요할 경우 버스 운전자가 뒤쪽 너른 출입구에 직접 경사로를 설치해 준다. 필요 시 언제든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선택지가 심리적 안전망 구실을 했다.

 

지난 2월 경기연구원은 연구보고서를 통해 경기도 지역 노 키즈 존 확산의 원인과 대안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란·배뇨·배변 등 아동의 통제 불가능한 행동과, 안전사고 발생 시 업주에게 배상금 등 책임을 묻는 법원 판결 등이 오늘날 노 키즈 존 확산의 주된 이유다. 즉 성인 이용객은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또 영업주는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아동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법적으로는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카페와 음식점도 임의로 어린이와 보호자를 배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갈등의 해결책으로 아동에 대한 사회의식 개선, 공공장소의 아동 놀이시설 설치, 아동 인성교육, 공공장소 이용 에티켓 캠페인 등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 대안들은 노 키즈 존의 발생 원인을 교육의 실패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양육자 지원도 육아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돼 있다. 아동과 양육자가 평등하게 도시의 공공시설을 이용하고자 할 때, 도시의 공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제시돼 있지 않다.

 

독일도 아동과 동반자를 위한 공공 건축법 규정이 따로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애물이 없는 생활환경(Barrierefreiheit)’ 개념이 건축법에 포함돼 있어 누구나 통행의 불편 없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장애물이 없는 생활환경’ 개념은 처음엔 장애인 이동권을 적극 보장하기 위해 법으로 의무화됐다. 하지만 그 혜택은 다양한 삶의 형태에 놓인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안나는 “아이를 낳은 후 생활 반경과 이동 시 느끼는 편의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안나 가족이 사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는 1985년 처음으로 주 건축법에 이 개념을 도입했다. NRW주 건축법 55조는 ‘공적으로 접근 가능한 시설은 반드시 노인, 아동을 동반한 사람, 장애인을 위해 장애물 없이 지어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장애물이 없는 생활환경의 구체적 기준은 독일표준연구소(DIN)가 마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교육 및 문화 시설, 체육 및 여가 시설, 의료시설, 사무·행정·법원 건물, 가게 및 음식점, 창고, 화장실 등이 모두 ‘누구나 타인의 도움 없이’ 이용 가능하도록 지어져야 한다. 신축 건물은 반드시 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기존 건물도 전용, 확장, 일반 수리를 할 경우 같은 법을 따라야 한다. 혼자 힘으로 유모차를 끌고 별 지장 없이 왕복 80여 분을 걸을 수 있었던 배경에 이 같은 법이 있었던 것이다.

 

공공장소에 휠체어와 유모차를 위한 길이 트이자 다른 변화들도 따라왔다. 장애인과 영·유아 고객을 위한 부가적인 시설들이 설치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저귀 갈이대다. 지모네 빙켈호크 쾰른시 대변인은 서면 인터뷰에서 “아이를 동반한 부모를 위한 별도의 규정은 없지만 쾰른시는 민원인이 이용하는 관청이 신축, 전용, 개축될 경우 기저귀 갈이대를 설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청뿐 아니라 미술관, 학교, 대형슈퍼, 음식점 등에도 기저귀 갈이대가 확산되고 있다. 쾰른대학교의 경우 장애인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중심으로 이런 시설이 설치돼 있다.

 

 

노 키즈 존은 어린이를 유해한 요소로 규정

 

노 키즈 존은 청소년 유해업소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둘 다 나이를 기준으로 특정 인구 집단의 출입과 이용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정반대다. 청소년 유해업소가 사행성 도박장, 유흥주점 등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지정된 반면, 노 키즈 존은 어린이를 유해한 요소로 규정하고 배제한다.

 

독일 사례는 물리적 환경을 바꿈으로써 저마다 신체적 능력이 다른 시민들이 같은 공간을 사용하게 되고, 공존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터득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접근성이 좋은 장소가 늘어남으로써 이용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편의 시설이 증가하는 현상도 보여준다.

 

10년 전 한국을 여행한 적 있는 안나는 가족과 함께 다시 한 번 한국을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참 뒤에야 한국 음식의 맛을 알게 돼, 다시 여행을 간다면 제대로 맛집 투어를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노 키즈 존 소식을 전해 들은 안나는 “그럼 어렵겠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안나와 옌스 가족이 유모차를 밀고 거리낌 없이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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