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다음은 언론개혁 MBC가 타깃 1호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7 16:30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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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로드맵’에 언론개혁 구상 담겨

 

최근에야 인사 문제로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잠시 제동이 걸렸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직후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줬다.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일이나,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가서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한 일 등은 대다수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5·18 기념사나 행사장에서 희생자 가족을 포옹하고 위로한 장면도 아직 국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런 일련의 행보로 인해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국정인수 기간을 거치지 않고 취임한 문 대통령의 행보가 과거 떠들썩하게 인수위를 꾸려 취임했던 대통령보다 낫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렇다 할 준비 기간 없이 출발했던 문 대통령이 야당의 칭찬을 이끌어낼 정도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는 잘 짜인 각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대선 캠프를 선대본부로 운영한 것 이외에도 일종의 인수위 역할도 겸하게 했다. 즉 별도 팀을 만들어서 선거에는 관여하지 않고, 당선 직후 로드맵을 짜는 일만 전담시켰다. 이 팀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라인으로 꼽히는 인사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캠프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어떤 사람들은 당선되기 이전부터 로드맵을 짰다고 하면 ‘대세론’에 빠져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비판할지 모르겠으나, 정권 인수 기간 없이 곧바로 직무를 수행해야만 국정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별도의 조직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던 문 대통령의 행보는 모두 이 로드맵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6월 21일 언론노조 MBC본부 춘천지부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MBC 김장겸 사장 등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춘천 MBC 노조 제공

 

“언론개혁 1순위는 MBC 정상화”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일 정도가 지난 현재, 다음 50일의 행보도 예측해 볼 수 있을까. 이른바 ‘취임 후 100일 로드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캠프 내 한 인사는 향후 50일 동안 뽑아들 카드 중 하나로 ‘언론개혁’을 꼽았다. 이 인사는 “한·미 정상회담이나 정부조직 개편안, 조각 등 몇몇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언론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 소속이었던 여권 인사들이 꼽는 문재인 정부의 언론개혁 타깃 1호는 MBC다. 문 대통령은 탄핵 정국을 거치며 MBC 개혁과 관련한 의지를 몇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12월16일에는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병문안을 가서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현실이 참담하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해 언론탄압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간부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기간이었던 3월21일에는 MBC의 안방에서 MBC를 정면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저는 MBC도 아주 심하게 무너졌다고 생각한다”며 “옛날에 자랑스러웠던 MBC 모습 어디 갔나(하는 생각입니다).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언론의 자유 회복하는 게 참 시급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몇 차례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문 대통령은 MBC가 보수정권 9년 동안 심각하게 망가졌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MBC 정상화를 언론개혁 최우선 순위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문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돼 MBC 개혁안이 100일 로드맵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에는 MBC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정치권과 MBC 안팎에서는 군불 때기가 시작됐다.

 

6월8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과 MBC 김장겸 사장을 겨냥해 “본인들이 왜 그 자리에 있나 생각해 보고 MBC 구성원과 후배 기자들을 생각해 거취를 결정해 주시기 바란다”고 압박했다. MBC 내부에서는 5월30일 보도부문 35기가 성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각 기수별로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줄지어 발표하고 있다. 6월7일과 8일에는 ‘20〜30년 차’, 보도부문 24기 이상 고참기자들도 퇴진 요구 성명 대열에 동참했다. 보도부문뿐만 아니라 5월22일에는 PD협회가 퇴진 요구 성명을 냈고, 기술부문(6월12일), 지방협의회·영상기자회(6월13일), 영상미술(6월15일), 아나운서(6월16일)도 동참하고 있다. 6월22일에는 예능PD 47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MBC에서 탐사보도 프로그램 소속 기자로 일하다 수도권 지국으로 발령 난 한 중견기자는 기자와 만나 “지난 몇 년 동안 해직된 기자는 물론이고, 편집권과 관련해 마찰을 빚다 취재부문이 아닌 다른 부문으로 발령 났던 기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며 “정치권력의 언론장악에 맞서 싸웠던 기자들을 원위치시키는 것이야말로 언론개혁의 출발”이라고 주장했다.

 

 

방문진 이사장·MBC 사장 버티면 방법 없어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MBC 개혁의 출발은 결국 대주주인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과 MBC 김장겸 사장의 사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자진해서 물러나면 일이 수월해지지만, 본인들이 자진해서 물러날 뜻이 없어 보인다는 데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있다. 고 이사장의 임기는 2018년 8월까지이며, 김 사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두 사람은 임기가 보장돼 있는 만큼 자진사퇴할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과거 이명박 정부가 사용했던 방법을 되풀이해야 하는데 이 방법에는 정치적 부담이 뒤따른다. MBC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고 말했던 문 대통령이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면, 야당이 이를 빌미로 정치공세를 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수순이다.

 

이런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오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정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늘려, 여당 추천과 야당 추천 이사 수를 기존 6대3에서 7대6으로 바꾸고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사장을 선임할 수 있게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이 주내용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방문진 이사회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MBC 사장을 임명·해임할 수 있는 방문진 이사들이 바뀌어야 현 MBC 경영진들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MBC 사장 교체를 취임 후 100일 로드맵에 포함시킬 정도로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은 문 대통령이 과연 어떤 묘수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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