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대란’ 대책이 ‘脫원전’보다 우선돼야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9 10:25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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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곧은 소리] 대안으로 거론되는 LNG·신재생에만 의존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해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석탄화력’에 이어서 ‘탈원전’까지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지난해 말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후에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에너지 정책을 단가와 효율성만 강조하는 ‘개발도상국형’에서 국민 안전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선진국형’으로 전환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탓할 수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경주 지진에 놀라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탈원전·탈석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탈원전·탈석탄은 절대 공짜로 되지 않아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 빠르게 전망을 내놓았다. 탈원전·탈석탄으로 2029년에 20% 정도의 전력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신재생(157원)이나 LNG(110원)의 발전 단가가 원자력(68원)이나 석탄(74원)보다 월등히 높기는 하지만 소비자의 추가 부담은 가구당 월 1만2500원 정도라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을 완전히 뒤엎는 수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놀랄 수준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1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정책을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연구원의 분석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이다. 2030년까지 전력 생산량 자체가 17%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내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전력 소비가 늘어나면 소비자의 부담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더욱이 기본계획의 수요 증가도 지극히 보수적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전력 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인 38%나 늘어났다. 과연 우리 사회가 전력 소비 증가를 절반으로 줄이는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전력 소비 증가의 억제는 생활의 불편과 산업 생산성 저하를 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친환경이라는 명분으로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면 전력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연구원의 분석에서는 2030년에도 현재 원전과 석탄화력의 절반 정도가 고스란히 남게 된다. 결국 연구원의 비용 분석은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절반 수준으로 추진하는 비용만 추정한 것이다. 실제로 원전과 석탄화력을 모두 퇴출시키고 나면 추가 비용은 훨씬 더 늘어나게 된다. 만약 원전과 석탄화력의 조기 퇴출을 원한다면, 추가 비용은 추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늘어난다. 탈원전·탈석탄은 절대 공짜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2029년의 설비예비율이 15%나 되고, 공급예비율도 10.6%나 될 것이라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추정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한 언론사가 내놓은 구체적인 전력 수급 전망은 절망적이다. 원전과 석탄화력을 LNG나 신재생 발전으로 대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부지를 마련하고, 발전 시설과 LNG 공급 시설을 갖추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10년에 가까운 기간이 필요하다.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제도적 규제도 엄격하고, 일상화돼 버린 주민들의 거부감을 해소하는 일도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와 내년 사천화력 폐쇄에 이어, 2020년 완공 예정인 강릉 안인의 신규 석탄화력을 포기해 버리면 당장 문제가 시작된다. 현재 26.3%인 설비예비율이 정부가 정해 놓은 적정예비율 22% 이하로 떨어진다. 수명을 다한 월성 1호기와 영동·보령·호남·삼천포의 노후 석탄화력을 폐쇄하는 2022년에는 예비율이 10%대로 급감하고, 2024년부터는 예비율이 위험 수준인 10% 이하로 추락한다. 10기의 노후 원전이 퇴출되면 상황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 발전 시설을 확충하면 된다. 그런데 적정예비율을 지키려면 2022년까지 적어도 1만1351MW의 LNG 발전소와 신재생 발전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5년 이내에 1000MW 규모의 초대형 LNG 발전소 10기 이상을 완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30년까지 노후 원전 10기의 폐쇄로 사라지는 9429MW와 건설 예정이었던 5800MW를 충당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발전도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2029년에 설비용량의 20%를 태양광으로 공급할 경우 축구장 15만 개에 해당하는 토지가 필요하다. 국토의 1% 이상을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뿐이 아니다. 신재생 발전이 20%를 차지하게 되면 신재생 발전이 불가능한 겨울철 야간에 발생하는 전력피크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어진다. 전력 생산을 임의로 통제할 수 없는 신재생 발전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LNG·신재생만이 선진국형이란 인식은 착각

 

대형 사고의 위험 때문에 원전을 포기하고,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석탄화력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1차원적 사고다. 사고의 규모나 오염물질의 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술의 수용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더욱이 LNG 발전소에서도 적지 않은 양의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NOx)이 배출되고, 대형 폭발이나 화재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대도시 주변에 분산형 LNG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태양광과 풍력도 규모가 커지면 환경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발전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LNG와 신재생만이 선진국형 정책이라는 인식은 공허한 착각이다.

 

다른 나라가 원전과 석탄화력을 포기한다고 우리도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온전하게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는 독일·스위스·벨기에·대만뿐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도 원전 가동을 재개했고, 20여 년 가까이 새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도 입장을 바꾸고 있다.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우리의 능력과 환경을 고려해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더욱이 1959년부터 많은 비용과 노력으로 양성해 놓은 원자력 전문인력을 한순간에 실직자로 만들어버릴 수도 없고,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과 경쟁할 정도로 축적해 놓은 원전 기술도 함부로 폐기해 버릴 수 없다.

 

우리가 원전을 두려워하고, 석탄화력을 싫어하게 된 것은 원전과 석탄화력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원전과 석탄화력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건설하고, 운영해야 하는 정부·기업·전문가들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잘못은 덮어두고, 원전과 석탄화력만 탓하는 것은 패배적이고 비겁한 일이다. 특정 학과 출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원전 부품 납품 비리를 방치하고, 국민을 위한 설득 노력을 외면해 왔던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뼈를 깎는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원전과 화력발전의 안전 관리에도 개방을 통한 융합과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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