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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도 내 삶도 무너지고 있다”

재건축 앞둔 일원동 공무원연금매장…공무원연금공단·상인 간 갈등 격화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3(Mon) 08:00:00 |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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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일원동 개포주공아파트 8단지. 이곳에 위치한 2층짜리 낡은 상가 주변엔 한 달 전부터 2m 높이의 철벽들이 둘러져 있다. 철벽 한가운덴 ‘본 건물은 2017년 5월30일부로 강제집행을 실시한 건물로 아무도 침입할 수 없다’는 공무원연금공단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 주변으로는 ‘너희가 상인의 피눈물을 아느냐’ ‘연금공단 살인행위 규탄’ 등 새빨간 페인트로 쓴 문구들이 가득 도배돼 있다.

 

수년간 재건축 논의가 오가던 이곳 일대가 최근 몇 년간 재건축에 속도를 내면서, 공무원연금공단 소유였던 개포8단지와 공무원연금매장으로 운영돼 온 해당 상가 역시 2015년 7월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매각돼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해당 상가 상인들은 매각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상가 인근에 간이천막을 친 채 한 달째 무기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공무원연금매장 상가는 70여 개 상점이 모여 운영돼 온 집단상가. 1984년부터 공무원연금공단이 소유권을 취득해 관리했다. 그러다 2001년 공단은 정부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세이러스’라는 별도의 주식회사를 세워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세이러스는 줄곧 공단 퇴직자들에 의해 운영되면서, 상인들 사이에선 공단과 세이러스를 사실상 ‘하나’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진영 당시 새누리당 의원 역시 “공단이 낙하산으로 세이러스에 대표를 내려보낸 후 경영을 사실상 조종해 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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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러스, 매각 사실 숨기고 재계약하기도’”

 

상인들은 공단과 세이러스 어느 쪽에서도 사전에 매각과 퇴거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들은 상가가 매각된 후에도 세이러스에서 “당분간 상가가 재건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하며 일부 상인들과 2017년 말까지로 하는 재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계약 과정에서 상인들에게 제소전 화해조서(소송 전 당사자 간의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기 위한 조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고도 주장했다. 김민수 개포 8단지 상가 대책위 부위원장은 “그들 말을 믿고 수천만원 들여 매장을 리모델링한 상인도 있다”면서 “이들이 매각 사실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대책 없이 쫓아내는 바람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분노했다.

 

반면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해 줄 수 있는 만큼 해 줬다는 입장이다. 김종채 공무원연금공단 부장은 “상인들과 체결한 계약서에 해당 단지는 ‘매각 및 재건축 대상’이고 매각 시 계약해지가 가능하다고 표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우리 측이 수개월에 걸쳐 입은 손해배상도 감면해주고, 상계동, 고덕동 등 다른 지역 연금매장에 입주할 것을 제안하는 등 상인들에게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상인 측은 "몇몇 상인에게만 가장 장사가 안 되는 상계동 매장에 입주를 제안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2015년 7월 매각 이후 상인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듬해 공단은 이들을 상대로 건물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5월1일 열린 1심에서 승소했다. 이후 공단은 1심 결과를 바탕으로 5월30일 상가에 대한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집행 당시 상가 안에서 버티고 있는 상인들을 끌어내기 위해 용역업체 직원 400여 명이 동원되면서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상인들에 따르면 당시 용역업체 직원들이 상가 내 한 평 남짓한 쪽방에 모여 있는 10여 명의 상인들을 향해 소화기 8대를 분사해, 상인 일부가 질식 증세로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그날 공단 측의 집행은 ‘살인 행위’와 같았다”며 공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상인들이 외부 단체인 전국철거민연합까지 동원하며 집행을 막아 불가피했다”며 “집행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문제들은 관할경찰서 조사에 따라 책임질 부분은 책임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법의 사각지대…보상은 ‘깜깜’

 

현재 공단은 상인들을 상대로 집행비용과 변호사 선임비용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이들의 집과 통장 등에 가압류를 걸어놓은 상태다. 상인 측은 이에 대한 대응과 1심에서 패한 명도소송 항소를 함께 준비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청와대에 관련 사태에 대한 중재와 해결을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상인 측 변호를 맡고 있는 민병덕 변호사는 “법적인 측면만 봤을 때 상황이 아주 깜깜하다”고 말한다. 개포 8단지 상인들이야말로 현재 법의 완전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과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전통시장법)’ 적용대상에 이들은 모두 포함되지 못한다.

 

현행 상가법 10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에게 권리금을 받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 그런데 개포 8단지 상가와 같은 ‘집단상가’는 이에 해당되지 않아, 상인들은 현재 어떠한 권리금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통시장법에는 시장정비사업을 할 경우 사업시행자가 입점상인들에게 우선 입주권을 부여하고 입주 전까지 임시 상가를 제공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곳의 경우 전통시장 및 상가에 포함되지 않아 이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이러한 빈틈을 메우기 위해 늦게나마 시민단체인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등을 중심으로 현재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 변호사는 법적인 측면 외에도 공무원연금공단·세이러스·상인 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외주화 시스템 역시 지적했다. 그는 “공단이 외주화를 통해 임차상인 월세로 퇴직자들을 챙겨준 형태”라고 꼬집었다. 실제 상가 운영 과정에서 중간 업체 세이러스는 과거 공무원연금공단이 직접 운영했을 때보다 2배 이상의 차임을 요구했다. 이뿐만 아니라 각 매장마다 한 달 매출 기준을 정한 후 이보다 적은 매출을 기록한 달에도 그 기준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최저 매출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기라도 하면 재계약 여부를 두고 협박하는 등 세이러스가 일삼아온 ‘갑질’은 일반 사기업보다도 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7월25일자로 공단이 잔금 처리를 끝내고 현대 컨소시엄에 상가를 완전히 인도하고 나면 자신들을 향한 압박이 더 심해질 거라고 우려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끝까지 온몸으로 상가 철거를 막아서겠다”고 나서고 있어 공단과의 갈등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상인들을 향한 인근 주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더해지면서 단지 분위기 또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해당 지역구 의원으로 직접 현장을 찾기도 했던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이라며 “법적으로 보상할 방법이 없다 하더라도, 공공기관인 공단과 대기업인 현대건설이 대승적으로 약자인 상인들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으로 운신의 폭이 좁은 공단보다, 사기업인 현대에서 보상 방안을 좀 더 다각적으로 찾아봐주길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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