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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소액주주들 “우리 목소리는 ‘소거’ 당했다”

BBK 사건 실제 피해자 소액주주들의 외침

유지만 기자 ㅣ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5(Wed) 13:00:00 | 1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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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 잠들어 있던 ‘BBK 사건’이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간은 기억을 흐리게 만든다지만, 이 사건은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이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 중 가장 오래된 사안이다. 여기에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중간에 끼어들면서 여전히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핵심인물인 김경준 전 옵셔널벤처스 대표가 출소하면서부터다. 김씨는 2007년 BBK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때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다”는 주장을 폈다. 김씨는 2002년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 주가를 조작하고 3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9년 징역 8년과 벌금 100억원이 확정돼 8년 넘는 기간 동안 복역했다. 지난 3월28일 출소한 김씨는 감옥살이를 끝내자마자 “BBK 사건 수사가 왜곡됐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히고 싶다”며 진실 규명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가 있다. 바로 옵셔널벤처스에 투자했다가 한순간에 가진 돈을 잃은 소액주주들이다. 현재 소액주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옵셔널캐피탈이 아닌, 2002년 상장폐지 당시에 돈을 잃었던 소액주주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2002년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잠시 알려졌지만,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2007년에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시사저널은 이 사안의 당사자 중 하나였지만 아직까지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소액주주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이들을 통해 당시의 상황부터 되짚어야 비로소 BBK 사건의 본질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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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부터 이명박 얘기 나왔다”

 

2002년 3월14일, 서울 신림동에 있는 한 커피숍에 옵셔널벤처스 소액주주 피해자들 40~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의 신분은 주부, 회사원, 사업가 등 다양했다. 이 중에는 20대 대학생 이아무개씨도 있었다. 학자금을 마련해 보고자 주식투자에 손을 댔던 이씨가 옵셔널벤처스의 주식을 매입한 날은 2002년 3월3일, 불성실공시로 주식매매 거래가 정지된 3월4일 전날이다. 이씨는 이날을 두고 “내 일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날”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주가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라 주식을 매입했다. 하지만 덜컥 다음 날 거래정지가 되면서 투자한 돈을 회수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이때의 여파로 제대로 졸업도 하지 못했다.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은 자체적인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로 했다. 옵셔널벤처스는 김경준씨가 1999년 설립한 투자자문회사 BBK가 2001년 2월 ‘광주은행창업투자(광은창투)’를 인수한 회사다. BBK 설립 당시 투자금이 5000만원에 불과해 투자자문회사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김씨가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이 회사는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주)다스에서 190억원, 삼성생명에서 100억원, 심텍에서 50억원 등 총 6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았다.

 

BBK 대표를 역임하던 김씨는 2000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엘케이이뱅크(LKe뱅크)라는 사이버 종합금융회사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각각 30억원씩 투자했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LKe뱅크 소개 책자에는 ‘BBK와 자매회사’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2001년 2월, BBK는 광주은행창업투자를 인수해 투자자문회사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리고 김씨는 4월27일 옵셔널벤처스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날은 BBK가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각종 위·변조 펀드운용보고서를 제공한 것이 적발돼 등록이 취소되기 하루 전날이다.

 

옵셔널벤처스 대표 자리에 앉은 김씨는 외국인이 이 회사에 투자하는 것으로 꾸미고, 옵셔널벤처스가 주목받는 회사인 양 홍보한다. 당시 옵셔널벤처스에 투자했던 한 소액주주는 “HTS(홈트레이딩시스템)상에 항상 외국인 지분율이 표시돼 있었는데, 당시 37%였다. 이 때문에 믿고 투자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2000원대였던 주가는 8000원대로 급등했고, 옵셔널벤처스는 코스닥 시장의 황제주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김씨는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기기 시작했다. 결국 2001년 말 김씨는 이렇게 챙긴 이익금 384억원을 빼돌려 미국으로 도주했고, 2004년 미국 현지에서 사법 당국에 의해 체포된 후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2002년 옵셔널벤처스가 거래정지 및 상장폐지에 이르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소액주주 피해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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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세간에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서 처음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02년 옵셔널벤처스 사태가 터지면서 일각에서 이 전 대통령과 김경준씨,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의 관계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소액주주 피해자 모임에서 활동했던 정아무개씨는 “이 전 대통령은 BBK 설립과 LKe뱅크 설립 당시 공공연히 언론 인터뷰를 하고 다녔다. 여기에 몇몇 언론 기사에는 ‘김경준을 영입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당연히 이 회사도 이 전 대통령이 관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피해 주주들은 어떻게든 피해를 복구하려고 애썼다. 당시 피해자모임의 실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옵셔널벤처스는 창업투자사이기 때문에 부채계정이 없었다. 빚이 없고 모두 투자자산뿐이었는데, 김경준이 빼돌리지 못한 현금이 60억원가량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주주들은 경영 정상화만 시키면 피해를 조금은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경준 측은 이 돈마저 빼돌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사연은 이렇다. 옵셔널벤처스는 2001년 6월 국내 회사 정관에 최초로 ‘포이즌-필(Poison-Pill)’이라는 독소조항을 포함시켰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기 위한 제도인 포이즌필로 인해 옵셔널벤처스 대표이사가 타의에 의해 물러날 경우 50억원의 퇴직위로금을 지급하도록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상장폐지 당시 대표이사였던 스티브 발렌주엘라는 2002년 5월11일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46억원의 위로금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그는 대표이사 취임 후 단 한 번도 한국에 머무른 적이 없는 ‘바지사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인 투자도 거짓이었다. 소액주주 이아무개씨는 “실제로 주주명부를 열어 보니 외국인 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2002년 3월 증권예탁원 조사결과에서도 외국인 보유지분은 0%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갔다.

 

 

“2007년 이명박에게 소송 준비하다 중단”

 

소액주주들은 피해 회복을 위해 의결권을 모아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옵셔널벤처스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후 김씨 등이 해외로 빼돌리는 회사 재산의 보전 절차를 진행하고, 회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적발감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피해주주들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결국 제3자에게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피해금액의 일부를 환수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김경준씨 측과 소송전을 벌였던 현재의 옵셔널캐피탈 측이 이 주식을 매입하면서 권리를 넘겨받게 됐다. 한 소액주주는 “다행히도 당시 주식 가격을 거래정지 이전 가격 수준으로 쳐줬다. 이 덕분에 4분의 1 정도의 피해를 복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약간의 피해를 복구한 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소액주주들은 계속 투쟁을 이어갔다. 기회는 2007년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K 의혹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남아 있던 피해주주들은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소송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카페의 시삽(운영자)을 맡았던 소액주주 김아무개씨는 가입한 피해주주들에게 ‘피해 내역을 준비해 달라’는 전체 공지 메일을 발송했다. 하지만 이후 김씨가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소송은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온라인 카페의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는 “‘끝전’이란 아이디를 통해 피해주주들의 피해 상황을 다시 파악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7년 대선 직전 운영자를 맡았던 김씨가 사망하면서 없던 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BBK 사건은 이명박-김경준 공범이 벌인 범죄다. 하지만 지금껏 ‘이명박 대 김경준’의 구도로만 사건이 진행됐다. 이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이명박-김경준 대 피해자’의 구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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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실소유주’ 밝힐 수 있을까

 

‘BBK 사건’의 핵심 열쇠는 결국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는지 여부다. 2002년 옵셔널벤처스 사태가 터진 후 이 전 대통령과 김경준씨 간 소송, 다스 140억원 송금, 기획입국, 가짜편지 등은 모두 이 사건의 본질을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경로 중 하나다. 한때 김경준씨 측과 소통했던 유원일 전 의원은 “이 사건은 BBK를 통해 LKe뱅크를 설립하고, 또 옵셔널벤처스의 자금을 먹튀한 아주 심플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관계를 따질 필요 없이 사건의 본질을 꿰뚫으면 된다는 의미다.

 

이를 증명할 만한 정황은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게 이 전 대통령의 광운대학교 강의 영상이다. 2007년 12월 공개된 이 영상에는 이 전 대통령이 2000년 10월17일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특강에서 한 “내가 BBK를 설립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겨 있다. 당시 이 영상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는데, 이명박 대선캠프의 대변인을 맡고 있던 나경원 의원이 “주어는 없었다”고 방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외에 2007년 대선 당시 공개된 이 전 대통령의 BBK 회장 명함도 논란이 됐었다.

 

이후에도 새로운 의혹들이 생겨났다.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가 50억원만 돌려받았던 다스는 나머지 돈을 돌려받기 위해 미국 현지와 김씨의 비밀계좌가 있는 스위스 등지에서 소송전을 벌였다. 다스는 소송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는데, 2010년 갑자기 스위스 계좌의 동결이 해제됐다. 미 연방정부와 스위스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김씨는 2011년 2월 이 계좌에서 140억원을 다스에 송금했다. 현재까지 이 송금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김씨의 누나이자 옵셔널벤처스의 이사였던 에리카 김 변호사에 대한 한국 검찰의 조사를 무마해 주는 조건으로 송금한 것 아니냐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가짜편지 사건 역시 주목할 만하다. 가짜편지 사건은 2007년 17대 대선 당시 김씨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여권(현 민주당)과의 교감 아래 국내에 들어왔다는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했다. 이 편지는 이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7년 12월13일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김씨의 기획입국 증거라며 그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교도소 수감생활을 함께한 신경화씨가 김씨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자네가 ‘큰집(청와대·노무현 정부)’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3년3개월이 지난 후 신경화씨의 동생 신명씨의 고백을 통해 편지가 날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경희대 교직원이었던 양승덕씨가 동문이었던 신명씨에게 편지의 초안을 전달했고, 이 편지가 김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둔갑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출소 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BBK 가짜편지를 작성한 양승덕, 신명, 신경화를 검찰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제대로 조사할 경우 이를 지시한 윗선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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