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소방과 경찰의 엇갈린 운명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4 15:52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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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은 국가직 전환, 경찰공무원은 지방직 전환?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여 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또 더 많은 변화가 예고돼 있다. 이 가운데 대대적인 조직 변화를 앞두고 있는 두 집단이 있다. 바로 소방과 경찰 조직이다. 새 정부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소방 조직은 소방청으로 분리된다. 세월호 사태로 2014년 국민안전처로 통합된 이후 3년 만에 독립을 하는 셈이다.

 

소방관들은 현재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소방관 처우 개선 문제를 끄집어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7일 서울 용산소방서를 방문해 일선 소방관들을 격려했다. 이날 행사 슬로건이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였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 개선을 위해 국가직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동안 바랐지만 어느 정부도 들어주지 않았던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 요구를 먼저 시행하겠다고 꺼내든 것이다.

 

경찰 조직의 분위기는 소방 조직과 사뭇 다르다. 경찰 조직의 염원이었던 수사권 조정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구체적인 로드맵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기뻐할 수만은 없다. 수사권 조정 문제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 자치경찰 도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서울시가 광역자치경찰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이 드러나자 격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수사권을 포기하더라도 자치경찰 전환은 막아야 한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7일 서울시 용산구 용산소방서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소방대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기대 부푼 소방 조직…‘윗선만 국가직’ 우려도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소설가 김훈은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보며 이같이 기도했다고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는 현장이면 어김없이 출동하는 소방관들. 지난 10년간 연평균 6명이 순직했다.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찰 및 군인보다도 업무 중 사망 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매년 300명이 부상을 당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위험수당은 고작 6만원뿐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탓에 10명 중 1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소방공무원의 39.7%가 우울 증세에 해당하는 고위험군이다. 그래서 평균 수명은 58.8세에 불과하다. 일반 국민의 평균 수명이 80세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극한의 업무 환경으로 수명까지 줄어든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과거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면서 사건 발생 몇 십 초 이내에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심장이나 정신적 피로감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근무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소방관들은 주 평균 56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소방관 최소인력은 6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4만5000명을 밑돌고 있다. 3조 3교대 원칙도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다. 소방력 기준상 실질적인 3교대 실시율은 54.3%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마저도 ‘3조 2교대’를 기준으로 놓고 조사한 수치다. 소방관 1명이 지키는 소방서가 59곳, 사무실과 소방차량만 있고 상주 소방관이 없는 ‘무인 지역대’도 132곳에 이른다. 무인지역대에는 펌프차가 1대씩 배치돼 있고, 사고 발생 시 전담 의용소방대가 출동해 활동하고 있다. 소방장비 노후 문제도 심각하다. 당연히 국민 안전에도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돈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3월 기준 소방공무원의 98.8%는 지방직 공무원이다. 단 1.2%만 국가직으로 돼 있다. 그동안 지방직 소방공무원은 각 지자체 재정에 따라 근무조건이 천차만별이었다. 예산이 적은 지역에서는 인력도 부족하고, 낡은 소방 장비와 설비를 제대로 교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소방공무원의 신규채용은 각 광역자치단체(특별시, 광역시, 도)의 소관이었다. 정부에서 신규 채용을 위해 예산을 보내줘도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가 신규인원을 배정된 예산만큼 안 뽑았다. 자연히 업무 강도는 가중됐고, 장비는 노후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소방관에 대한 단계적 국가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경찰 조직에 대해선 ‘자치경찰’ 도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자체와 협의해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될 때 가장 먼저 달라지는 점은 소방헬기, 고가사다리차, 소방 장비 등을 지원할 예산이 안정화된다는 것이다. 현재 소방 분야에 사용되는 예산은 약 4조588억원이다. 이 가운데 3조9542억원이 지자체 돈으로 투입된다. 지자체의 재정 상황에 따라 장비 등의 품질이 심각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예산이 강화되면서 자연스레 의료비 감면 혜택이 늘어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문 병원 신설도 추진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 더 심각한 문제로 꼽히고 있는 ‘소방관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순직보다 자살하는 소방관 숫자가 더 많다”며 적절한 심리 상담이 이뤄질 수 있는 심리치유 센터 설립 등도 약속했다.

 

일선 소방관들의 반응은 매우 조심스러운 편이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소방청 독립은 현실화됐지만, 국가직 전환은 확실치 않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전남 지역의 한 소방교(8급 상당)는 “무슨 사고가 터질 때마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 문제가 언급됐지만 약속을 지킨 정부는 없었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은 큰 편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역별 온도차도 엿보였다. 서울의 한 일선소방서 소방사(9급 상당)는 “물론 전남·전북과 같이 근무 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면서도 “지역별로 근무 여건이 다르다 보니 서울의 경우 국가직 전환보다는 당비비 같은 근무여건에 대한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소방정 이상 단계적 전환 방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소방관 처우개선과 국가직 전환 등을 요구해 온 소방발전협의회 자유게시판에는 “현 정부의 국가직 관련 입장은 초지일관 소방정(소방서장)까지 국가직으로 하겠다는 단계적 시행”이라며 “소방공무원 전체에 대한 국가직화가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소방방재신문 인터뷰에서 “소방청장과 시·도 소방본부장, 소방서장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확립돼야 원활한 구조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며 “소방서장 등 현장지휘관을 국가직으로 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경찰의 분위기는 한 달 전과 크게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경찰은 최대 수혜 조직으로 꼽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검찰과 경찰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수사경찰의 역량을 높이고, 직무독립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경찰’에서 ‘검찰과 대등한 경찰’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반기 채용을 늘리고, 대통령 경호실을 경찰청에 편입(현재는 보류)한다는 발표도 경찰 조직에 힘을 싣는 듯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 개선을 위해 국가직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놀란 경찰 “소방 처우 봤는데 지방직 가라니”

 

문제는 자치경찰제였다. 문 대통령의 공약에는 실렸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국가경찰제로는 방범, 생활 안전 등 주민 밀착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지역 특성과 주민 요구에 부합하는 치안서비스를 위해 자치경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자치경찰제도는 지자체에 경찰권을 부여해 경찰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책임을 일임하는 개념이다. 일부 지역의 특수성에 맞춰 그 지역과 주민을 위한 범죄예방 및 치안활동을 전담하는 역할이다.

 

일선에선 반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서울 지역의 일선경찰서 경사(7급 상당)는 “당장 일부 조직(교통·방범·경비)이 지방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며 “지방직이었던 소방공무원들의 처우 문제를 지켜봤는데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전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소위 자치경찰 도입의 근거 중 하나가 권력의 수사 개입 문제”라며 “정작 이 문제와 엮인 본청 조직을 놔두고 왜 현장 공무원을 지방직으로 돌리려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사권을 포기하더라도 지방직 전환은 절대 안 된다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자치경찰제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수십 년간 체제를 갖춰온 기존의 경찰 조직을 바꿀 경우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자치경찰제를 운영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일부 제한된 분야만 수사가 가능해 범죄 현장이나 용의자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 조치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는 기존 예방순찰을 주로 담당하는 자율방범대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경찰청장을 임명할 경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해 “방향성과 취지에 공감하지만 모형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해야 한다. 급격하게 자치제로 변하면 사각지대가 나타날 수 있어서 행정자치부, 광역자치단체 등과 협의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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