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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독 ‘보톡스’

주름살·파킨슨병·우울증·뇌성마비 치료하는 ‘맥가이버 주사’

노진섭 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6(Thu) 10:43:28 | 1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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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이면서 유혹적인 독은 보툴리눔 톡신이다. 매우 적은 양으로도 인류를 몰살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 독으로 만든 보톡스(botox)는 주름살을 없애주며 일반인을 유혹하는 주사제다. 이런 보톡스의 새로운 효능이 꾸준히 밝혀지고 있다.

 

1895년 벨기에의 미생물학자가 발견한 세균(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은 흙이나 부패한 음식에 존재한다. 특히 통조림처럼 밀폐된 환경에서 잘 번식한다. 당시 독일에서 상한 소시지를 먹은 200명이 단체로 사망한 이유도 이 세균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 세균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보툴리눔 톡신)를 지니고 있다. 북한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 가스나 과거 독일 나치가 대량 살상용으로 사용한 청산가리보다 수천 배 이상 강하다. 탄저균보다도 10만 배 독성이 강한 보툴리눔 톡신은 1g의 양으로 쥐 10억 마리를 죽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1g으로 200만 명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독을 생화학무기에 사용하면 인류를 몰살시킬 위험성이 있으므로 유엔(국제연합)은 1974년 생물무기금지협약을 통해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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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 개선은 수많은 보톡스 효과 중 하나

 

이 맹독을 질환 치료에 사용하기까지는 1세기가 걸렸다. 미국 안과 의사인 앨런 스콧 박사는 독소를 이용해 삐뚤어진 눈(사시)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다가 1971년 보툴리눔 톡신 효과를 동물실험으로 확인했다. 사시와 안검경련을 완화하는 효능을 발견한 것이다. 안검경련은 눈 주변 근육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증상이다.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졸릴 때처럼 눈꺼풀이 내려오거나, 눈 주변을 찡그리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그는 1978년 이 독을 이용해 사시와 안검경련을 치료하는 약(오큘리눔)을 개발했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은 1989년 이 약의 사용을 허가했다. 그러자 안구 건조 치료제를 만드는 미국 제약사 엘러간은 사시 환자가 미국 인구의 4%라는 시장성을 보고 900만 달러에 이 약의 소유권을 사들이면서 제품명을 보톡스로 바꿨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독은 생리를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생리활성물질이다. 적당히 사용하면 약이지만 과하면 독이다. 보툴리눔 톡신을 정제하고 희석해서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만든 의약품이 보톡스”라고 설명했다.

 

보톡스가 의약품으로 인정받은 후 28년 동안 90개국에서 122억 도즈(접종량)가 사용됐다. 그만큼 많은 연구 성과도 있었다. 그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성과는 주름살 제거 효능을 발견한 일이다. 사시 치료제가 주름살 제거에도 효과적이라고 발표한 사람은 진 캐루더스라는 캐나다 의사다. 1987년 눈이 움찔거리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보톡스를 주사한 뒤 환자의 눈 주위 주름살이 없어지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FDA는 2002년 보톡스를 눈가 주름살 개선제로 승인했다. 이후 보톡스는 치료용으로는 물론 미용 목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보톡스의 신경전달물질 방해로 근육 마비

 

주름살 개선 효과는 보톡스의 수많은 효능 중 하나에 불과하다. 1992년 미국의 한 성형외과 의사는 주름살 개선을 위해 보톡스를 맞은 사람에게서 두통이 줄어드는 현상을 눈치 챘다. 제약사 엘러간은 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보톡스가 만성 편두통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FDA가 2010년 그 효과를 인정함에 따라, 하루 4시간 이상(또는 월 15일 이상) 편두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보톡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보톡스는 과민성 방광 치료에도 효과를 보인다. 과민성 방광이란 방광 주변 근육이 긴장해서 요실금과 빈뇨(잦은 소변) 등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미국 로욜라대 의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5번의 요실금을 호소하던 환자가 보톡스를 맞은 후 하루 3번으로 줄었다. FDA는 2013년 보톡스를 과민성 방광 치료제로 승인했다.

 

FDA는 2000년 목 근육 이상으로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증상(경부근긴장이상증) 치료에 보톡스 사용을 허가했다. 또 얼굴 경련을 치료하기 위해 보톡스를 맞은 사람이 땀을 적게 흘린다는 사실이 연구결과로 밝혀지자, FDA는 2004년 보톡스를 겨드랑이 다한증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 외에도 보톡스는 팔·손가락·손목·팔꿈치 근육 경직, 다리·발목·발가락 근육 경직 등의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윤지영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반측안면경련(얼굴 한쪽의 떨림 증상), 안검경련 등 근육 긴장 이상증을 보이는 환자는 직업에 따라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보톡스는 근육을 이완시켜 증상을 완화한다. 또 급성 뇌졸중 환자의 근육이 강직되는 경우에도 보톡스를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톡스가 이런 다양한 질환에 사용되는 이유는 특정 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근육은 신경전달물질을 받아 움직이는데, 신경전달물질을 받지 못한 근육은 마비된 채 그대로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육이 움직이는 질환에 보톡스가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의학계는 보톡스의 활용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최근에는 파킨슨병 증상 완화에 보톡스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병의 특징적인 증세가 손이 떨리고 몸이 굳어지며 보행이 느려지는 것인데, 보톡스가 이런 증세를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1분 이내에 사정하는 조루에도 보톡스가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보톡스가 성기의 근육을 이완시켜 사정을 늦춘다는 것이다. 엘러간은 조루는 물론 발기부전에 대한 보톡스의 효과를 찾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심장 수술(관상동맥 우회술)의 흔한 부작용이 부정맥(심방세동)이다. 미국 로체스터의대 연구팀은 2015년 60명의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보톡스와 식염수를 심장 지방에 주사했다. 1년 뒤 관찰한 결과, 보톡스를 주사한 그룹에서 부정맥이 생기지 않았다. 보톡스가 근육 수축을 명령하는 신경 신호를 막아 부정맥을 예방한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있지만, 보톡스가 우울증을 완화한다는 결과도 임상시험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 의대의 노만 로젠탈 박사와 조지워싱턴대 의대 에릭 핀지 박사는 2014년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보톡스를 맞으면 증상이 사라진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제약사 엘러간은 FDA 승인을 받기 위해 보톡스의 우울증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특정 근육 마비되면 호흡곤란 올 수도

 

아직 FDA 승인이 나지 않았지만, 미국 의사들은 이미 이런 증상에 보톡스를 처방하고 있다. 의사의 판단하에 의약품을 다른 질환의 치료에 사용하는 ‘임의 처방(off-label)’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톡스를 오프라벨 방식으로 사용하는 질환으로는 파킨슨병, 조루, 부정맥, 우울증 외에도 구순열(언청이) 흉터, 치열, 침 흘림, 이갈이 등이 있다. 이주희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보톡스는 근육을 풀리게 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근육이 경직된 질환에 사용한다”며 “척수 손상으로 인한 근육 경직, 눈꺼풀 경련, 안면 경련, 경성사경(목 경련으로 머리가 기우는 증상), 소아 뇌성마비에 의한 근육 강직, 요실금, 성대 마비, 신경성 통증, 사각턱 축소, 다한증 등 그 활용범위가 넓다”고 설명했다.

 

 

정부 허가 없는 ‘사각턱·종아리’ 보톡스 투여

 

그렇다고 보톡스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맹독이므로 생명을 위협할 소지가 있다. 목 부위 근육이 마비되면 말을 잘 못하거나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거나 목소리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호흡과 관련된 근육이 마비되면 호흡곤란으로 위험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전신 알레르기, 무기력, 근육 약화, 복시(複視), 시야 흐림, 눈꺼풀 처짐, 목소리 쉼, 목소리 변화, 어눌한 발음, 방광 기능 이상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윤지영 교수는 “안검경련 치료 목적으로 보톡스를 주사한 후 안검하수(눈꺼풀 처짐)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반측안면경련 치료를 위해 보톡스를 맞은 후 삼킴 장애 부작용으로 한 달 정도 고생하는 환자를 보기도 했다”며 “보톡스를 한 번 맞았다고 병을 완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효과가 3~6개월 유지되는 정도다. 이것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부작용도 영구히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약 효과 기간만큼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보톡스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비중이 60%다. 국내는 보톡스 사용의 90% 정도가 미용 목적이다. 처음에는 식약처가 허가한 미간 주름과 눈가 주름에만 보톡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마 주름, 팔자 주름, 입꼬리 처짐, 사각턱, 승모근(등 근육), 종아리 등 식약처가 허가하지 않은 범위로 확대됐다. 이들 부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톡스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가 임의 처방 방식으로 보톡스를 사용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의약품을 오프라벨로 사용하기 위해선 의료기관 내에 있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를 통해 의학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약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임상시험을 할 정도로 큰 병원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오프라벨 처방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기존 의약품 허가 제도를 무력화하고 의약품을 남용할 우려 때문에 오프라벨 기준을 엄격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미용 목적으로 보톡스를 의사가 임의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대한 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보톡스를 사각턱, 종아리 등에 투여하는 행위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의사의 재량에 의한 의료행위여서 식약처가 개입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보톡스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정원 서울대 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뼈가 아니라 근육 문제로 턱이 아픈 사람에게 보톡스를 사용하는 치과 치료를 한다. 또 잠을 잘 때 임플란트가 부러지거나 치아가 손상될 정도로 이를 심하게 가는 사람에게도 보톡스를 사용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앞으로 보톡스의 효능이 더 밝혀질수록 치료에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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