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전 감독 “노력 없는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6 11:17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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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野人)으로 돌아온 야신(野神) 김성근 전 감독 인터뷰…“쉬면서 훈련하는 선수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6월22일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야구장에선 한낮의 무더위 속에도 야구부 선수들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이연수 감독과 코칭스태프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 선글라스를 쓴 김성근 전 감독(75)이었다. 김 전 감독은 전날까지 경남 울산의 울산공고 야구부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지도하다가 제자 이연수 감독의 부탁으로 22일 상경해 곧장 성균관대 야구장을 찾았다고 한다. 

한화 이글스 감독직을 내려놓고 야인으로 돌아온 김 전 감독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한화 감독 시절에 비해 얼굴이 훨씬 좋아 보인다’는 기자의 인사에 “백수라 신경 쓸 게 없어서 그런가 보다”며 우스갯소리로 답을 대신했다.

 

김 전 감독은 처음에 인터뷰를 완강히 거절했다. 자신의 얘기가 잘못 전달될 경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랜 설득 끝에 김 전 감독은 기자의 차를 타고 성균관대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청담동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차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김 전 감독은 운전면허증도, 차도 없다.

 

김성근 전 감독은 에어컨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태(KIA의 전신) 2군 감독 시절 호텔에서 틀어놓은 에어컨에 기관지를 상한 이후 에어컨 바람을 멀리하게 됐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기자는 30도가 넘는 무더위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김 전 감독을 ‘모시고’ 청담동으로 향했다. 다음은 김 전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사진=이영미 제공

 

울산에서 3주 넘게 머문 걸로 아는데 울산공고 야구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가.

 

“울산공고 감독이 정미효인데 그가 내 제자다. 도와달라고 해서 내려갔다가 어찌하다 보니 오래 머물게 됐다. 울산 공기가 아주 좋더라.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외출에 나선 후 1300원을 내고 버스에 올라탄다. 목적 없이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내리는데 그런 여정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얼마 전에는 울산대공원 입구에서 내려 태화강까지 23km를 걸었다. 오후부터는 아이들(선수들)을 봐줘야 하니까 오전에는 주로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아직까지 운전면허가 없는데 못 딴 건가, 안 딴 건가.

 

“반반이다(웃음). OB 감독(1984~88)을 그만뒀을 때 면허 따려고 학원에 등록까지 했다가 갑자기 태평양 감독(1989~90)을 맡게 되면서 다니지 못했다. 이후 삼성 감독(1991~92) 그만두고 다닐 계획이었는데 다시 해태 2군 감독으로 가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론 아예 면허 따는 걸 포기했다.”

 

한때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바 롯데에서 1, 2군 순회코치를 할 때(2006)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좁은 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를 피하려다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이후 SK 감독 시절(2007~11) 또다시 자전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아예 자전거와의 인연을 접었다. 내가 얽매이는 걸 싫어해서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두 번의 사고로 그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이제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내려와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는 인스트럭터의 신분이다. 이전 야인 신분이었을 때 했던 일들인데 오랜만에 어린 선수들을 대하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

 

“인스트럭터는 훈련에 깊이 개입하기가 어렵다. 감독, 코치들이 지도한 방식들이 있는데 내가 욕심내서 무리하게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어린 선수들을 보면 이 친구들이 나중에 어디에서 뛸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어린 선수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미래를 어른들이 준비해 줘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김 전 감독은 제자인 중앙대 야구부 고정식 감독 얘기를 꺼냈다. 어느 날 고정식 감독이 자신을 찾아와선 “감독님, 제가 왜 포수 한 줄 아세요?” 하고 물었다는 것. 포수를 한 이유가 뭐냐고 김 전 감독이 물었더니 “감독님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감독님께서 인스트럭터로 야구부를 방문하셔서 제가 야구하는 걸 보시더니 ‘넌 포수 하면 되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포수를 목표로 열심히 야구했고 프로 입단 후 프로 코치를 거쳐 대학 감독까지 오게 된 겁니다”라고 말했다는 것. 그럴 때마다 김 전 감독은 제자들한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말한 걸 흘려듣지 않고 결과로 만들어 내는 열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화 구단 측에 사의를 표명한 김성근 전 감독이 5월24일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kt 이진영 선수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SK 시절 김성근 감독을 만났을 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훈련 덕분에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도 야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려주더라.

 

“요즘 아이들은 이상은 높은데 현실에선 실천하지 않으려 한다. 고생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하는데 그걸 싫어하는 것이다. 조금만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하면 바로 아우성이다. 힘들어 죽겠다면서. 나이 먹을수록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훈련을 안 하면 근육은 점차 퇴보하고 선수 생활은 단축된다. 만약 어떤 선수가 훈련량을 줄여서 잘하고 있다면 그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연습이 잘돼 있는 팀은 그다음 해 감독이 바뀌어도 좋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모두가 성공을 원하지만 노력 없는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만히 쉬면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나. 남을 이기려면 두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놀면서, 쉬면서 훈련하는 선수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그런 신념 때문에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나이 먹은 선수들일수록 훈련을 더 시켰다. 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야 하니까. 고참이라고 훈련량을 줄이면 실력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난 선수를 써먹으려고 훈련시키지 그냥 데리고 있으려고 훈련시키지 않는다. 내가 SK 감독을 맡았을 때 삼성의 박진만을 데려왔는데 처음엔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난 허리 수술을 받아서 의사가 절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박진만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시합 후 500개의 펑고를 치면서 박진만을 훈련시켰다. 내 입장에선 나이 먹었다고 대우해 주는 건 선수 생활을 빨리 끝내라는 의미다.”

(2010년 시즌 후 삼성에서 입지가 좁았던 박진만은 당시 선동열 삼성 감독에게 자유계약으로 풀어줄 것을 요청했고 이후 고향팀 SK 와이번스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2010년 삼성에서 46경기 출전해 타율 2할3푼7리, 1홈런, 14타점에 그쳤던 박진만은 이적 후 곧바로 SK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100경기 출전에 타율 2할8푼, 6홈런, 39타점으로 뛰어올랐다. 수비에서도 합격점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베테랑 선수들의 훈련량과 관련해선 여전히 비난 여론이 높다.

 

“나이 먹어서 훈련량을 못 따라온다면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 승부의 세계는 그런 걸 따지면 안 된다. 스무 살의 선수와 마흔 살의 선수가 있다 치자. 그들은 나이로 싸우는 게 아니다. 일대일의 승부다. 즉 똑같은 선수이기 때문에 나이 먹은 선수를 더 대우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만두는 것이다. 생과 사의 싸움인데 다리 아프다고, 힘들다고 안 뛰고 못 뛴다면 어떻게 야구를 할 수 있겠나.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옛날 생각’으로 치부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이치로가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다섯 살인데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건 그만큼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이다. 일흔여섯인 나도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500개의 펑고를 친다. 3시간을 온전히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서른 살 넘은 코치도 힘들다고 하는 마당에 일흔 살 넘은 내가 버티는 것이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안 되는 게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티니까 문제다.”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희로애락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지난 시즌은 성적 부진으로 비난이 거셌다. 사퇴 압력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

 

“사실 작년 11월3일(박종훈 단장이 임명된 날)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싶었다. 회장의 오더가 아닌 구단의 결정이었다면 바로 그만뒀을 텐데 (박 단장 선임이) 회장의 지시라고 해서 참고 받아들인 것이다. 12월에는 우울증에 걸려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만큼 힘들었다. 단장이 교체된 후 표현 못할 모욕감이 들었다. 자존심이 상해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반면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2011년 8월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KIA에 승리한 SK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이 손을 마주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어떤 의리를 말하는 건가. 

 

“내가 그만두면 나와 함께 한화로 온 코치들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날 한화 감독에 앉힌 사람이 그룹 회장(김승연 회장)이다. 날 임명한 분도 그분이고, 날 놔줘야 할 분도 그분이다. 내 거취는 그분이 결정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남자의 의리이다. 언젠가는 얘기를 하겠지만 감독 생활하면서 작년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 경기 비디오를 너무 많이 봐서 눈이 안 보일 정도였다. 비밀리에 병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더그아웃에 있으면 외야수가 안 보일 정도로 심각했었다.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그런 어려움을 견디며 시즌을 마쳤다.”

(지난해 11월3일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과 계약 기간인 2017년까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선수단 체질 개선과 프런트 혁신을 통한 구단 전문성 강화 및 이글스 문화 재정립을 위해 야구인 출신의 박종훈 전 LG 트윈스 감독을 신임 단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구단은 김 전 감독에게 1군 감독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하고, 2군 운영과 유망주 발굴, 선수단의 효율적 관리를 박 단장과 프런트의 역할로 못 박았다. 김 전 감독의 역할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김 전 감독과 박 단장은 지난 마무리 훈련에서부터 잦은 충돌을 빚었고 두 사람의 골 깊은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파국으로 내달렸다.)

 

 

아들 김정준 전 코치도 결국엔 팀을 나왔다.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팀에 아들이 코치를 맡는 것과 관련해선 찬반양론이 있었다. 물론 전력분석으론 야구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지만 아버지의 그늘로 인해 그 실력이 폄하된 부분도 있지 않았나.

 

“내가 정준이한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얼마 전 울산으로 정준이가 찾아왔는데 생전 처음으로 아들과 골프를 쳤다. 둘 다 잘렸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웃음). 그때 정준이가 하는 말이 ‘이젠 아버지로 모실게요’였다. 내가 아들한테 짐이 되었다고 본다. 방송 해설가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날 돕겠다고 한화로 왔으니. 내가 SK 감독으로 갔을 때 정준이는 지바 롯데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옆에 있겠다면서 SK로 들어왔다. 한화로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코치들이 날 어려워해도 정준이는 내게 가장 많이 직언을 한 사람이었다.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서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이젠 둘 다 실업자니까 이렇게 인스트럭터로 아이들 봐주면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나왔지만 한화 감독 때의 모습보다 지금 얼굴이 훨씬 좋아 보인다.

 

“사람들이 다 그런 인사를 건넨다. 야구장에선 돈을 벌지만 여기선 돈을 안 버니까 얼굴이 편해 보이나 보다(웃음).”

 

김 전 감독이 나간 후 한화는 조인성, 송신영 등 고참 선수들을 정리했다. 직접 데려온 선수들도 포함돼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크겠다. 

 

“프로에서 19년, 20년씩 뛴 선수들을 시즌 이후가 아닌 시즌 중에 자르는 건 아니다. 이양기는 작년에 그만두려 했을 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버티라고 말했었다. 그 얘기 듣고 한참을 울더라. 다시 해보겠다고 말하고 나가선 열심히 했다. 야구선수는 유니폼을 벗으면 돈 벌기가 만만치 않다. 아직 실력이 있는 선수가 힘든 걸 못 참고 그만두는 게 아쉬웠다. 물론 세대교체의 중요성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 바꾸려 한다면 나이 먹고 2군에 내려가 있는 선수들로선 하루하루가 불안 초조할 것이다. 구단은 선수한테 어깨가 돼 줘야 한다.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세대교체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김성근이 데려온 선수라고 다 내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의 미래를 걱정해 주는 배려도 필요하다고 본다.”

4월27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롯데에 승리한 한화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화 선수들이 그립진 않나.

 

“잘하는 아이들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위태로운 아이들은 걱정이 된다. 이태양, 윤규진은 살아나야 한다. 심수창, 정우람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는데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더라. 배영수가 얼마 전 프로통산 2000이닝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가장 고생 많이 했던 선수였고 가장 많이 훈련한 선수였다. 일부러 냉정하게, 멀리하면서 무심한 척해도 튀지 않고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이겨내길 바랐는데 올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장하고 기특한 녀석이다.”

 

선수들로부터 연락은 오는지 궁금하다.

 

“나한테 야단맞지 않은 선수들한테는 연락이 안 오는데 야단 많이 맞은 선수들이 연락한다.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그래서 잘해라, 지켜볼 테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 준다.”

 

김성근 전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한때 자신의 퇴진을 바라며 플래카드를 내걸었던 일부 한화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냈다.

 

“LG 감독 시절에는 (퇴진) 플래카드가 컸는데 대전구장은 좁아서 플래카드가 크지 않더라.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나.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으리라 본다. 나도 아쉽고 미안한 게 많다. 한화 팬들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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