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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시론] 참사(慘事)의 여섯 가지 조건

남인숙 작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9(Sun) 17:01:00 | 1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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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4일, 최대 600명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불타는 장면을 보았을 때에는 런던에서 운 나쁘게도 끔찍한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후 이와 관련해 겹겹이 쌓이는 소식들은 이것 역시 인재(人災)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메이 총리의 태도 논란에 이어, 6월26일에는 영국 정부가 그렌펠타워 참사 이후 전국의 고층 공공 주거지를 대상으로 긴급 화재안전 점검을 실시한 결과 적격 판정을 받은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기사가 나왔다. 8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의 3배까지 희생자가 불어날 수도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또 어떤 부실함이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사는 한 가지 원인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회과학에서는 최소 여섯 가지의 원인이 복합 작용해 ‘드디어’ 사고가 난다고 본다. 사회의 여느 구조가 그렇듯 웬만한 구멍은 제대로 된 다른 요소들에 의해 메워지거나 덮어진다. 아주 많은 실수들이 있고, 그중 여섯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는 순간, 그 일들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래서 누군가의 실화(失火)나 하필 새벽에 불이 났다는 것 이상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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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공짜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꽤 비싸다. 그래서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을 돈과 바꾸려는 이들의 무지와 욕망은 늘 빈틈을 노리게 되어 있으며, 체질이 허약해진 사회일수록 그들이 빠져나갈 그물눈은 크고 넓다. 타자화(他者化)된 미래의 생존 위협보다는 당장 나 자신의 이익과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힘을 얻는다. 그에 따라 악재가 겹쳐 여섯 개를 채울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이번 그렌펠타워 화재참사에서처럼 가연성 외장재 규제 전무, 안전검사 부재, 정부의 무관심, 관리 인력의 무책임, 소방 인력 대규모 감축 등 이미 너덧 개의 악조건이 준비된 가운데 한두 개의 우연만 슬쩍 더해지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예전과 같은 영화를 누리지는 못해도 여전히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고 정치·군사·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나라다. 그런 영국이 요 몇 년 민주주의와 복지의 후퇴, 테러, 브렉시트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참사가 그런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만 같아 안타깝다.

 

한국에서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비극들이 전조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되었다. 그 자체로 지옥도(圖)의 일부인 그렌펠타워의 잔해는 우리가 20여 년 전 고도성장의 끝자락에서 목격한 일련의 시련과 그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 굳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몰락’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 사회 나름의 숙제가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근대 이후 항상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 있던 한 나라의 그림자는 선진국 문턱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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