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벼랑 끝 전략에 한국 대응 카드는?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0 16:17
  • 호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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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재협상 둘러싼 한·미 양국 신경전 격화

 

“한·미 FTA 폐기 카드를 던질 것이다.” “그래도 동맹인데,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벌어지는 논란이다. 청와대는 한·미 정상회담 후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합의는 결코 없었다”고 해명하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합의 외 이야기”라고 일축했지만, 이미 트럼프는 자신의 칼을 빼든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지지 기반인 미국 노동자층에게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30일 문재인 대통령과 첫 만남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문 대통령이 미국 노동자, 사업가, 그리고 자동차 업계를 위해 함께 같은 수준으로 노력(work)하겠다는 확신에 고무됐다”고 언급했다. 자신의 지지층인 미국 노동자들을 위해 ‘보따리’를 풀라는 의미다. 실제로 당시 한·미 확대 정상회담에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등이 한·미 FTA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있다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30일 오전(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부인에도 ‘FTA 재협상’ 밀어붙인 미국

 

청와대의 부인에도 미국 백악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재협상 및 협정 개정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한·미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 관한 한 확실하게 더 나은, 그리고 최상의 협상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라면서 자국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해 참모진들이 아예 ‘대못 박기’에 나선 형국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전략은 무엇일까. 트럼프는 ‘사실(fact)’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주장’을 ‘사실화’하고, 협상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궁지’로 몰아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전략이다. 트럼프식 ‘벼랑 끝 전략’인 셈이다.

 

트럼프는 서로 협상이 잘 안 된다고 판단될 때는 완전히 기존 협정의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든다. 두 개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협상에 임한 상대방은 판을 완전히 깨는 트럼프의 ‘후려치기’에 당황해 다섯 개를 내주면서 관계 파기는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이것이 트럼프의 ‘벼랑 끝’ 노림수다. 트럼프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과 멕시코 등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 바 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NAFTA 협정을 폐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멕시코 등은 어쩔 수 없이 ‘재협상’에 동의하고 이를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NAFTA를 폐기하겠다고 나서자 멕시코는 당황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모른 척 뒤로 빠지고 자신의 사위이자 최측근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해결사로 나섰다. 관계의 파국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며 멕시코 등에 재협상을 권유하는 중재안을 마련한 것이다. 

 

 

‘한·미 FTA 폐기’ 선언 시 대응할 대비책 강구해야

 

트럼프의 이러한 협상 전략은 한·미 FTA 협상에서도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이에 관해 한국의 통상정책 당국자는 “트럼프가 내일이라도 한·미 FTA의 폐기를 선언하고 이를 문서로 통보하면, 끝이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그건 맞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렇다면 트럼프가 얼마든지 한·미 FTA 폐기 카드를 전략적인 이유에서라도 써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그건 맞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 내에서 현재 한·미 FTA에 관해 긍정적인 분위기가 많은데, 그렇게 꼭 극단적인 방법까지는 동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당국자는 현재 미국이 공식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폐기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양측의 실무자들이 실제적인 논의를 해 봐야 ‘재협상’ 등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에 관해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합리적이지 않고, 예측 불가한 트럼프의 기질상 누구도 앞길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인 노동자층에게 무언가 결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하다”면서 “우리 정부의 기존 한·미 FTA를 고수하겠다는 전략은 오히려 트럼프의 전략에 말려 들어갈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외교 전문가도 “한국 정부가 ‘설마’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대처한다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면서 “트럼프가 던질 최악의 카드를 대비하고 이에 대해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5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도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세계 역사상 최악의 무역협정들을 일부 체결했다”며 “우리가 왜 우리를 돕지 않는 나라들과 이런 무역협정을 계속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는 무역협상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NAFTA와 한·미 FTA에 총구를 겨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들 무역협정이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재정적자까지 엄청나게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상대방이 아무리 이러한 주장이 ‘근거 없고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1987년 트럼프의 자서전인 《협상의 기술》을 함께 펴낸 토니 슈워츠는 최근 이에 관해 “트럼프는 특히, 그가 방금 말한 것이 거짓(false)으로 드러나도, 그가 도전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갑절로 대응한다(double down)”고 말했다. 이 평가가 말해 주듯이 문재인 정부가 참으로 괴로운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은 사실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만약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책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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