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도서관, 쇼핑몰을 접수하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3 14:33
  • 호수 14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發 ‘리딩테인먼트’(Reading+Entertainment) 열풍, 국내 상륙

 

출판계에서는 좋은 책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서점과 도서관이 살아야 관련 산업이 살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 때문에 서점과 도서관을 어떻게 활성화할까 고민한다. 중소 서점들이 폐업하는 와중에도 서점들은 독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콘서트도 열고 각종 강연도 유치한다. 썰렁하기만 하던 도서관은 숍인숍 형태로 커피 전문점을 입점시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동참하기도 한다.

 

그런 작은 몸부림이 이제는 커다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긴 불황으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것 같던 서점이 오히려 중심에 서서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리딩(Reading)’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결합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리딩테인먼트(Readingtainment)’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즐기는 문화를 뜻하는 리딩테인먼트는 책을 매개로 문화가 만들어지고 각양각색의 문화 행위들이 책을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현상이다.

 

7월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日 쓰타야 서점과 다케오 시립도서관이 롤모델

 

대표적인 예로 떠오른 곳은 지난 5월30일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중심에 자리 잡은 별마당 도서관은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에 5만여 권에 달하는 다양한 책과 국내 최대 규모의 잡지 코너, 최신 e-Book 시스템을 갖췄다. 신세계그룹이 코엑스몰의 부활을 위해 60억원을 들여 만든 이곳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일본 다케오(武雄)시의 성공 모델을 본떠 코엑스몰에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도서관을 입점시켰다”고 설명했다.

 

리딩테인먼트 열풍은 일본에서 불어왔다. 다케오시(市)의 성공 모델이란 일본의 유명 관광지로 떠오른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중심에 둔 말이다. 일본 사가(佐賀)현에 있는 인구 5만 명의 다케오는 시립도서관을 리뉴얼하면서 연간 10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지역경제 기여 효과가 연간 200억원이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다케오의 히와타시 게이스케(樋渡啓祐) 시장은 2006년 당선 직후 시의 발전을 위해 도서관 공사를 밀어붙였다. 마을이 살아나려면 30~40대 기혼 여성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혼 여성들이 모이면 아이들과 남편이 자연스레 따라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87억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도서관 공사를 했는데, 25만 권에 달하는 책은 언제든지 펼쳐볼 수 있도록 진열했고, 유명 커피 전문점을 입점시켜 도서관 이용객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도서관을 시골답지 않게 크게 지은 것이 대박을 터뜨리자 일본 곳곳에서 ‘시골 마을의 도서관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도서관 혁명의 뿌리에 ‘쓰타야(蔦田) 서점’이 있었다.

 

도쿄 긴자(銀座) 한복판에 있는 초호화 쇼핑몰 ‘긴자 식스(Ginza Six)’는 241개 명품 브랜드로 가득한 건물이다. 이 건물의 맨 위층인 6층에 쓰타야 서점이 있는데, 6만 권이 진열된 책장 사이에 170개의 좌석을 마련해 책을 열람할 수 있게 배려했다. 도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꼽히는 이 서점은 도쿄 관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됐다.

 

쓰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은 일본의 오래된 불경기 속에서 홀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이목을 끌고 있다. 이 기업은 IT(정보기술)나 미래 산업과는 거리가 먼 사업 영역에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이뤄냈다. CCC는 온갖 악재 속에서도 책을 핵심으로 한 콘텐츠 산업과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홀로 ‘플러스 성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불과 10년 사이에 1만여 곳의 서점이 문을 닫았는데도, 기존 대형 서점들이 투자를 축소하며 맥을 못 추는데도 쓰타야 서점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쓰타야 서점을 기획하고 완성한 CCC의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增田宗昭)는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운영을 맡아 성공시켜 더욱 유명세를 탔다. 그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인터넷 플랫폼이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교통이 불편한 도심 외곽과 지방도시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숍인숍 형태로 커피 전문점을 입점시킨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 © 시사저널 박정훈

 

‘삶 자체’를 사려는 고객들이 모이는 곳

 

마스다 무네아키는 저서 《지적자본론》을 통해 “인터넷 플랫폼의 공세 속에서 오히려 실물 매장만의 매력, 특히 그중에서도 밀도 있는 ‘제안’(접객 담당자에 의한 컨시어지 서비스)과 리얼리티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감각’을 되살리고자 매진했다. 달라진 소비환경에서 고객들은 단순히 제품을, 부족한 물자를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잉된 상품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원하고, 특별한 의미와 감성을 바란다. 따라서 미래의 기업은 ‘제안’과 ‘기획’을 통해 고객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쓰타야 서점의 브랜드 파워다. 누군가에게 책과 음반, 영상 콘텐츠는 그저 평범한 상품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제안 덩어리, 즉 지적자본(기획하고 제안할 수 있는 능력)으로 판단했고, 그 점에 착안해 ‘삶에 필요한 물건’이 아닌 ‘삶 자체’(라이프 스타일)를 팔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올바른 시대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사회는 부족한 물자를 요구하는 ‘퍼스트 스테이지’, 안정된 상황 속에서 다종다양한 상품을 원하는 ‘세컨드 스테이지’, 그리고 넘쳐나는 물건과 서비스 속에서 고유한 취향(스타일)을 선망하고 ‘제안’을 필요로 하는 ‘서드 스테이지’로 차례차례 진전돼 왔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 산업 구조와 시장에서 과거의 전략이 통할 리 없다. ‘기획(디자인)’을 핵심으로 ‘제안’을 창출해 내야만 하는 ‘서드 스테이지’에서 서점과 도서관이 쫓겨났던 자리로 되돌아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리딩테인먼트의 열풍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