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정치’ 하려다 딜레마 빠진 秋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6 19:04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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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대표, 서울시장 출마 염두에 두고 존재감 드러내려다 역풍 맞았다” 관측

 

당내 친문(親文) 세력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던진 ‘머리 자르기’란 말 한 마디로 인해 청와대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오히려 존재감에 생채기만 났다. 

 

사실 정국 경색의 원인을 제공했던 추 대표의 ‘머리 자르기’ 자체는 추 대표가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표현이었다. ‘머리 자르기’ 발언은 추 대표가 아닌 대표실 한 보좌관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보좌관이 추 대표의 라디오 인터뷰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인사는 “보좌관이 조금 더 ‘임팩트’ 있고 익숙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꼬리 자르기’를 살짝 바꿔 ‘머리 자르기’란 표현으로 사용한 것뿐이었는데, 이에 대해 국민의당이 날카롭게 반응하면서 일이 커졌다”고 말했다.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국민의당은 이 표현을 문제 삼아 7월7일부터 모든 국회 일정 참여를 거부했다. 추가경정예산 심의와 정부조직법 개편안, 장관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등 문재인 정부 현안과 관련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몽니’를 부리자 국회는 사실상 마비됐다. 

 

추 대표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다음 날 한층 더 발언 수위를 높였다. 판사 출신인 추 대표는 정치적 발언으로 공격당하자 이번에는 법조인의 시각에서 ‘미필적 고의’라는 카드를 꺼내들어 국민의당에 반격을 가했다. 그는 7월8일 충남 천안축구센터에서 열린 충남 세종 ‘민심경청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형사 책임은 반드시 수사가 돼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 사진=연합뉴스

 

‘머리 자르기’ 표현, 秋 본인 아닌 보좌관 아이디어

 

공교롭게도 7월9일 서울남부지검 공안부(부장검사 강정석)는 문준용씨 취업 특혜 제보조작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미필적 고의’를 적용했다. 국민의당은 이를 두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펄쩍 뛰었다. 

 

추 대표가 ‘미필적 고의’란 혐의를 언급하고, 검찰이 다음 날 이를 영장에 적시한 것은 사실 우연의 일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법률가적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 이 전 최고위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결국 비슷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추 대표가 굳이 언급하지 않았어도 검찰이 비슷한 결론을 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안 해도 될 말 한마디가 국민의당을 자극했다. 갈 길 바쁜 청와대 입장에선 당 대표의 한마디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 모양새였다. 결국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7월13일 추 대표 발언에 대해 국민의당 측에 ‘대리 사과’ 하면서 일단락됐다. 

 

가벼운 말 한마디가 본인에게 불러온 역풍은 생각보다 크다. 국민의당을 향한 추 대표의 발언은 사실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미리 계산된 발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머리 자르기’란 표현도 결국 사건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다 나온 것이고, ‘미필적 고의’ 발언은 법률가적 입장에서 이 전 최고위원의 혐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된 발언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깊이 연관돼 있다고 보는 것이 당내 정설이다. 당내에선 “추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려 한다”는 관측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결국 여당 대표직을 맡고 있는 동안 존재감을 드러내 서울시장 경선에서 한발 앞서 나가려는 것이 추 대표의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추 대표가 야당과 각을 세우는 모습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계의 지지를 염두에 둔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추 대표가 무리해서라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은 서울시장직을 두고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영선 의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박영선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한때 탈당까지 고려할 정도로 친문계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으나 현재는 관계가 상당히 회복됐다”며 “게다가 박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대중에게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추 대표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추 대표의 조급함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염두에 둔 조급함이 화를 불렀다”

 

이번 사태로 청와대와의 관계도 더 멀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대표는 이미 여러 차례 당청(黨靑) 화합을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정권 초 인사에서 물밑 불협화음이 불거졌고, 이번 일을 계기로 수면 위로 부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권에선 추 대표가 청와대와 관계가 소원해진 시점을 대략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언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김민석 민주정책연구원장의 청와대 입성 문제가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은 일정 부분 맞는 사실이다. 다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추 대표는 김 원장 이외에도 몇몇 당직자의 청와대행(行)과 관련해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측 의사소통 방식에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전언이다. 추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는 당직자 중 추 대표가 추천한 인사들 명단을 보내면 그중에서 필요한 사람을 쓰겠다는 입장이었다. 추 대표는 청와대가 민주당 몫의 자리를 정해 주면 거기에 맞는 사람을 보내겠다는 입장이었다. 추 대표 생각에 청와대가 당청 관계를 중요시한다고 하면서 과거 정권처럼 당을 하대(下待)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쓰겠다고 받아들인 것 같다.”

추 대표는 자신이 서울시장 당내 경선을 통과하려면 친문 세력의 지지가 필수적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사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했다. 친문 세력의 지지를 받기 위해선 결국 청와대와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친문 세력의 지지 기준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의 협조 여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여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다. 여기에 추 대표의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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