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너, 넌 노예’ 비뚤어진 한국의 오너의식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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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오너들의 끊이지 않는 갑질로 인한 기업의 오너 리스크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갑(甲)질 행태를 폭로한 전직 운전기사는 “다시는 나와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언론에 전해왔다. 안타깝게도 이장한 회장의 갑질과 유사한 사례는 매년 우리 사회에 발생하고 있다. 2015년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은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했고 지난해에는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일선 현대BNG스틸 회장이 연이어 운전기사에게 만행을 저지른 후, 대국민 사과를 통해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접고 운전을 강요하거나 신호등이 빨간색인데도 멈추지 않고 달리라고 명령하는 등의 그들의 몰상식한 행태는 일반 국민들의 상식을 초월했다.

 

갑질 행위로 언론의 도마에 오른 오너들은 자신의 불찰이라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쏟아내지만, 여기에 대해 진정성을 느끼고 그 사과를 받아들인 피해자는 사실 별로 없다.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후, 회사 홍보팀을 통해 광고 및 기타 부수적인 조건으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애쓰다가, 급기야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됐을 때 사과를 표명하는 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대응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에 알려진 이들 오너 이외에 여전히 자신의 수행기사와 비서에 대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기업가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만드는 오너 리스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에 있다.

 

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 상습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7월14일 서울 충정로 본사 대강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만 유독 오너들의 갑질이 만연한 이유는 그들의 비뚤어진 오너의식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모진 애를 쓴 창업자들은 을(乙)의 위치에서 시작해 갑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을 보는 눈이 적지 않다는 점을 잘 느끼고 사업을 통해 일궈낸 성과를 사회공헌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창업자들의 자녀로 어릴 때부터 금수저를 넘어 금 자체로 도배를 한 2세들은 태생부터 황태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에 직원들에게 군림하길 좋아한다. 제왕학이라는 명분으로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교육을 받고 남과 다른 코스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직원들은 그저 사용가치가 떨어지면 버려야 하는 소모품일 뿐이다.

 

국내 기업가들에 관한 최근 홍보기사를 보면 낯 뜨거울 정도에 가까운 찬사가 이어진다. 그룹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오너가 직접 그렸다거나 회사의 전체적인 방향과 비전은 오로지 회장님만 만들 수 있다는 이른바 오너의 비전, 신념 등을 모든 임직원들은 교육받아야 한다. 주요 기업들은 오너는 애초부터 너희들과 다르다는 식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활발한 수평적 토론보다 맹목적인 충성과 헌신을 강요한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도로 억제해놓고서는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적인 인재가 기업 내에 없다는 푸념을 털어놓는다. 자조 섞인 웃음만 나오는 사례들이다.

 

모 기업가는 최근 해외 출장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고 필자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급변하는 트렌드와 무한경쟁 시대를 해외 현장에서 경험한 후 위기의식을 느껴서 나온 발언이라고 생각한 필자는 해당 기업가의 이어지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해외 출장을 가면 부하직원들이 빨리 퇴근하고 풀어질 수 있기에 매우 불안하다. 가장 늦게 오너가 퇴근하는 것이 부하직원들을 제대로 관리,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임직원들에 대한 예의와 존중, 배려 같은 기본적인 마인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난 오너, 넌 노예’라는 생각에서 그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 여름, 영화 《베테랑》이 1300만을 돌파하며 흥행을 거듭할 때 필자가 아는 모 대기업의 임원은 앞으로 영화 《베테랑》 그 이상의 얘기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국내 오너들의 횡포와 만행이 워낙 무궁무진하기에 웬만한 기업가들의 기행(奇行)과 같은 사례는 명함도 내밀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신의 수행 운전기사를 채용할 때 신원 조회를 다 거치고 정밀한 검증을 통해 선발하는 오너들이 정작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모습은 씁쓸할 뿐이다. 국내 상당수 대학생들이 취업난을 걱정하면서도 국내 사기업보다 공기업,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유도 노예로 자신을 간주하는 기업가 또는 오너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7월3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오너의 갑질 원인은 해마다 사건이 되풀이 될 때마다 반복된다.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나 언행을 규제해야 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사실상 총수 또는 오너의 거수기 논란을 하다 보니 사외이사가 오너의 잘못을 규제하기 어렵다거나 직(職)을 걸고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임원이 부족하다는 식의 지적이 계속돼왔다. 언론을 통해 내부고발자 또는 소비자들의 비판이 이어질 때마다 일부 부도덕한 오너들은 TV를 끄고 ‘노예들의 반발’이라고 이를 깎아 내린다. 우리나라에만 유독 퍼지고 있는 오너 리스크 때문에 국내 우수 인재들이 사기업에 발을 들여놓기 꺼린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다.

 

문제는 비뚤어진 오너의식에서 비롯된 오너 리스크를 규제하거나 대응할 대책을 앞으로도 수립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부정부패, 패악을 일삼는 당사자가 오너이다 보니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는 경우도 매우 드문 편이고 사전에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기업 내부 시스템 상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오너에게 과감히 비판하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오너의 모습은 드라마 또는 영화에나 존재할 뿐이다. 오너에게 직언을 했다가 그 다음 날 곧바로 짐을 쌌던 이들의 이야기는 국내 재계에 수없이 많다. 황태자로 태어나 황제처럼 군림하는데 익숙한 이들이 이른바 ‘아래 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어불성설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2010년 자신의 저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경영자의 위험에 대한 자기부정’ 단계를 몰락의 3단계라고 경고한 바 있다. 즉, 기업 성과가 좋을 때 나타나는 내부의 위험 시그널에 대해 경영자는 문제 원인을 임직원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고 그 결과 해당 기업은 빠르게 몰락 단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그 이후 위기의식을 느끼고 극약처방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이미 고객과 시장의 외면으로 기업은 생명이 끝나는 최종 단계에 다다른다는 것이 짐 콜린스의 주장이다. 오너 리스크를 반복해서 겪는 일부 기업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무분별한 갑질을 반복하는 일부 오너들은 국민통합을 이유로 정부가 쉽게 사면 및 복권에 나선다는 걸 이미 학습효과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도 시간이 지나면 갑질 사태를 잊어버리고 자사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는 점 역시 그들은 알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도 유독 자본 권력 앞에 취약하기에 이 악순환은 해마다 같은 사례로 되풀이되고 있다. 인성교육 강화 등 비현실적인 교훈보다도 법의 심판과 처벌이 먼저 선행돼야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강력한 법적 처벌과 정부의 감시가 경제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몰락을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이제는 오너에게 심어줘야 한다.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학습효과로 각인시켜야만 일부 부도덕한 오너들의 멈추지 않는 갑질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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