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들이 북한 TV에 출연한 이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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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북자 기자회견으로 추가 탈북 차단 취지…“남조선서 멸시와 천대받고 성매매도 강요당해” 주장

 

국내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발한 방송 활동을 벌이던 한 탈북여성이 최근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에 등장해 주목된다. 이 여성은 ‘반공화국 모략선전에 이용되었던 전혜성이 밝히는 진실’이라는 제목의 영상에 출연해 “2014년 1월 탈북했고 지난 6월 조국(북한)의 품에 안겼다. 평안남도 안주시 문봉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서 한국 종편 출연경위 등에 관해 설명했다. 

 

전씨는 국내 종편 프로그램에 ‘임지현’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면서 “시키는 대로 악랄하게 공화국을 비방하고 헐뜯었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벌기 위해 술집 등을 떠돌아다녔지만 돈으로 좌우되는 남조선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만 따랐다”고 주장했다. 전씨가 최근 재입북해 북한 매체에 출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정부는 전씨의 구체적인 입북 경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대외용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가 16일 재입북한 탈북여성 전혜성을 출연시켜 남한 종편TV들의 북한소재 프로그램들이 날조극이라고 비난했다. 사진은 임지현이라는 가명으로 종편에 출연한 전혜성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남한 생활 비방하고 재입북 받아 준 북한 찬양

 

탈북자가 재입북해 북한의 매체에 출연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2016년에도 3명의 탈북자가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다. 당시에도 우리민족끼리TV를 통해 이들의 좌담회 동영상이 공개됐다. 재입북한 이들은 “남조선에서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탈북자들은 천대와 멸시를 받기 때문에 자살률이 4배는 높다”고 비난했다. 또 “탈북 여성들은 대다수 성매매를 강요당한다”며 성매매 제안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 2012년에도 북한에서 남한으로 탈북했다가 재입북한 한 여성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2006년 3월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같은 달 국내로 들어왔던 박인숙씨였다. 박씨는 서울 송파구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활했다. 박씨는 “6∙25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간 아버지를 찾으러 탈북했다”면서도 “남한 정보원들의 유인전술에 걸려 남한으로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에는 남한에서 생활하던 탈북자 부부가 북한으로 귀환해 또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김광혁씨와 고정남씨는 “2008년 5월 괴뢰들의 간계에 넘어가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아내 및 아들과 함께 공화국 품으로 돌아왔다”며 “남한에 사는 내내 극심한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2013년에도 4명의 탈북자가 다시 재입북해 “남조선은 정말 더러운 세상이었다”며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남조선 땅에서 무진 애를 썼으나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험악한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괴뢰패당의 비열한 모략책동으로 남조선에 끌려갔던 우리 주민들이 남조선사회와 결별하고 공화국의 품으로 계속 돌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을 열었던 재입북자들은 하나같이 남한생활을 비방하고 재입북을 받아 준 북한을 찬양했다. 북한 매체들은 이들이 정보원의 마수에 걸리거나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끌러갔다고 주장했고, 한국 사회에 환멸을 느껴 재입북했다는 내용의 증언을 내세워 선전했다. 

 

이렇게 북한 매체들이 재입북자들을 통해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차단하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예전에는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갈 경우 엄중하게 처벌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한 당국이 재입북한 탈북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그들을 선전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5년과 2016년 북한에 남겨진 탈북자 가족들을 촬영한 ‘가족의 눈물영상’을 통해 탈북자들에게 재입북을 권유하기도 했다. 

 

북한이 기자회견을 통해 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한 시도는 또 있다. 2012년 북한에 재입북한 탈북자 전영철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남한 내 탈북자 단체와 미국의 사주로 김일성 주석 동상을 파괴하려다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남측 정보기관과 미국이 김일성 동상 파괴를 통해 체제를 흔들고 혼란을 조성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9월30일 "남조선에 갔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주민들"이라며 남한 사회를 비난하는 박진근·장광철씨의 좌담회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은 좌담회에서 인신매매꾼들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한국으로 끌려갔었다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가족 때문에 재입북 하는 사례 많아

 

탈북자들이 재입북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가족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박인숙씨 역시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된 아들을 위해 재입북한 케이스다. 대북 소식통 등에 따르면 박씨가 탈북한 사실이 북한에 알려진 뒤 평양음대 교원으로 있던 외아들과 그 가족들이 지방에 추방됐고, 박씨는 아들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북한 측과 사전에 연락을 취해 재입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박씨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장군이 죄인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평양음악대학 교단에 서있는 아들과 함께 평양에 모여 살도록 해줬다’고 주장한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후 아들을 인질로 잡은 북한 당국의 협박 때문에 재입북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에 남겨진 탈북자들의 가족들을 이용한 회유나 협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2004년 국내로 온 한 탈북자는 “북한 보위부를 통해 탈북자에게 협박 전화가 오곤 한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을 처벌하겠다며 월북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에 대한 대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재입북을 한 탈북자들이 다시 국내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2003년 국내에 들어온 국경경비대 출신 탈북자 이아무개씨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재입북했다가 북한 당국에 검거돼 교육을 받고 국내 탈북자 실태를 보고한 뒤 국내로 재입국했다. 이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탈북자동지회와 통일 관련 단체 등에 가입해 활동한 뒤 회원증을 증거물로 갖고 재입북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009년 재입북해 기자회견을 열었던 김광호∙김옥실 탈북자 부부는 다시 탈북해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한국으로 송환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북한으로 돌아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사회를 비난했던 강아무개씨가 다시 북한을 탈출해 국내에 입국했다.

 

 

“활용가치 떨어지면 다시 탈북할 것”

 

이번에 재입북한 것으로 보이는 전혜성씨 역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유의 공기를 마셔본 사람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감옥에서 나왔다가 다시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며 “뭔가 급박한 동기가 있어서 탈남을 했을지 모르지만 북한 사회에서 적응해 산다는 것은 사막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인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7월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탈북자 중에 재입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북한 TV에 나와 한동안은 대남비방에 활용되다가 활용가치가 떨어지면 북한 당국의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 다시 탈북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또 “임지현(전혜성)씨가 어떤 이유로 재입북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재탈북하여 한국에 오더라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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