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아바타’ 우파 세력 결집에 도움 될까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8 15:57
  • 호수 14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洪, 혁신위원장에 류석춘 선임…‘친박’ ‘복당파’ 제압에 활용할 듯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극우 학자인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과)를 당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정부로 규정하며 극우 노선을 걷고 있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신을 대신해 극우 입장을 대변할 ‘정치적 아바타’로 류석춘 혁신위원장을 앉혔다.

 

홍 대표의 류 위원장 기용은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 전략으로 보인다. 19대 대선에서 24% 득표율을 올린 홍 대표가 당권을 장악했지만 여전히 당내 우호 세력이 많지 않다. 최근 당직 인선에서 지명직 최고위원과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된 이종혁 전 의원, 김대식 동서대 교수 등이 ‘친홍(親洪)’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원내외에 친홍 인사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홍 대표에 대한 반감이 강한 친박(친박근혜)계가 여전히 건재하다. 게다가 탄핵에 찬성했던 복당파 의원들도 홍 대표에 비우호적이다.

 

홍 대표는 이런 당내 권력지형을 감안해 친박과 복당파 제압에 류 위원장을 활용할 태세다. 류 위원장은 7월11일 기자회견에서 ‘인적 쇄신 대상이 친박뿐 아니라 탄핵에 찬성했거나 탈당했다가 복당한 의원들이냐’고 물었더니 “무엇이 더 (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든 데) 결정적이었는지 따져볼 문제”라고 밝혔다. 두 세력에 대한 인적쇄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단순히 친박계를 청산하겠다는 게 아니라 ‘배신자’를 청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7월11일 여의도 당사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류석춘, ‘배신자’ 청산 의지 강하게 피력

 

류 위원장의 이 같은 생각은 지난해 11월 조선일보 칼럼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팔아 국회의원, 장관, 수석 등 한자리씩 꿰차고 단물 빨던 인물들의 배신이 비록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순실 사건 터지고 나서의 배신은 더욱 꼴불견이다. …친박의 대명사인 서청원 의원 그리고 대통령을 누님이라 부르던 윤상현 의원은 왜 이 시점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는가? …최경환 의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고 친박 핵심 인사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탄핵을 당하도록 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던 책임은 박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친박들과 탄핵 찬성파, 탈당파 모두에게 있다”고 분명히 했다.

 

류 위원장은 또 ‘철학 없는 국회의원’이란 보고서를 통해 문제 의원 25명을 꼽았는데 한국당 18명, 바른정당 7명이 포함됐다. 한국당에서는 정우택 원내대표, 김태흠 최고위원, 홍문표 사무총장, 염동열 당 대표 비서실장 등 지도부 일부가 이름을 올렸다. 친박계인 서청원·박맹우·이우현 의원 등과 비박(비박근혜)계 중진 나경원 의원도 포함됐다. 당내에서는 인적쇄신을 위한 ‘살생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바른정당에선 김세연·박인숙·오신환·유승민·이학재·홍철호·황영철 의원 등이 문제 의원으로 꼽혔다.

 

류 위원장의 극우 행보는 대선 이후 극도로 위축된 우파 세력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게 홍 대표 측의 판단이다. 매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는 류 위원장은 현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바른정당과 보수 적통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류 위원장을 통해 태극기 부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극우 쌍둥이’로 불리는 홍 대표와 류 위원장을 주축으로 우파 색채를 강화해 개혁보수를 표방한 바른정당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런 과정에서 바른정당 소속 의원 20명 중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게 돼 흡수통합이 가능해진다. 홍 대표는 당 대표 경선 기간에 내년 지방선거 이전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주창한 바 있다.

 

하지만 당내에선 류 위원장의 극우 성향이 외연 확장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그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정치보복으로 표현하는 등 보수의 가치인 법치주의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혁신이 아니라 과거 극우정당으로 회귀하는 모양새여서 중도 확장은커녕 보수 재건에도 보탬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복당파인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당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극우화되는 것 같아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며 “국민 80% 이상이 찬성한 대통령 탄핵에 대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과 헌법재판소, 국회를 무시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위원장 개인의 이념이나 역사 인식이 당의 상징이 돼 당헌·당규나 정강 정책에 담겨서는 결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장 의원은 홍 대표를 향해서도 “유신독재를 미화하고 무력통일도 불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극우가 아니냐. 탄핵을 정치보복이며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혁신이냐”며 “당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극우 정당으로 가는 한국당 ‘해체론’ 나와

 

정우택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가 소리를 먼저 내면 군림하는 행태로 보일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 관계자도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핵심 친박 의원의 당원권을 정지시켰는데 지금 와서 또 친박을 청산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이중처벌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 위원장의 편협한 사고가 보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국당 정체성은 류 위원장 임명으로 ‘극우일베정당’임이 분명해졌다”면서 “중도우파 노선의 바른정당과 극우 노선의 한국당은 물과 기름처럼 명확히 구분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남은 것은 한국당은 자신의 극우 노선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것이고 우리 바른정당은 중도우파 노선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통합론에 선을 그었다.

 

당 안팎에선 극우 정당화의 길로 들어선 ‘한국당 해체론’도 제기된다. 청와대를 주사파 정권으로 보는 ‘시대착오적, 매카시즘 정당’, 법치를 무시하는 ‘반(反)헌법 정당’으론 적폐청산과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못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